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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호매실연세이비인후과 원장

김수현 | 호매실연세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교실 안에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짓는 아이, 선생님이 여러 번 불러도 반응이 느린 아이, 때로는 갑자기 활발해졌다가 금세 짜증을 내는 아이. 이런 모습이 반복되면 교사와 부모는 흔히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아이의 문제는 주의력이나 성격이 아닌, 수면의 질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ADHD 아닌 ‘소아 기면증’의 가능성

소아에게도 나타나는 기면증(narcolepsy)은 뇌의 ‘각성 조절 체계’가 불안정해지는 신경계 질환이다. 특징적인 증상은 낮 동안 참기 힘든 졸림, 웃거나 화날 때 근력이 갑자기 풀리는 탈력발작(cataplexy), 수면 중 환각 또는 가위눌림 등이다.

성인에게는 비교적 잘 알려진 질환이지만, 아이들에게서는 전형적인 증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수업 중 멍한 표정, 잦은 하품, 졸음을 참기 위한 과잉행동, 짜증과 감정기복 증가 등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ADHD로 오인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졸음을 ‘주의력 문제’로만 보면 아이는 더 힘들어진다

실제 진료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밤에 충분히 자도 아침 기상이 어렵고 낮 시간 졸림이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ADHD 검사 전에 수면다원검사(PSG)나 다중수면잠복기검사(MSLT)를 시행하면, 수면 구조의 불안정성이나 렘(REM)수면의 비정상적 빠른 진입이 확인되는 사례가 존재한다. 이는 기면증의 대표적인 진단 소견이다. 이때 기면증 아동이 보이는 ‘멍함’과 ‘과잉행동’은 사실 졸음을 억제하려는 뇌의 보상 반응이다.

아동이 집중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뇌가 깨어 있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아이를 “산만하다”, “게으르다”라고 꾸짖는 것은 병의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ADHD와 기면증, 증상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처럼 ADHD와 기면증은 외형적 행동이 닮았지만, 뇌의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르다.

따라서 ADHD 약물은 기면증의 졸림을 완화하지 못하며, 오히려 증상을 가릴 수 있다. 정확한 감별 진단 없이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오진과 부작용의 위험을 키운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이를 더 지치게 한다

기면증은 단순히 ‘잠이 많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기의 뇌에서 각성 조절 체계가 변형된 상태로, 만성적인 경과를 보이는 신경계 질환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학업 수행과 정서 발달 모두에 영향을 준다.

낮 시간 졸림과 행동 변화가 지속된다면 반드시 수면 전문의의 정확한 평가가 필요하며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학업과 사회성 발달 모두 개선될 수 있다.

아이의 집중력 문제, 단순한 성격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집중력 저하=훈육의 문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아이의 집중력 저하가 태도 부진이나 성격 탓은 아니다.

수면 부족, 뇌 각성 시스템 이상, 환경적 스트레스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아침마다 힘들게 일어나고, 낮에 졸리거나 멍한 아이가 있다면 그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아이의 학습력은 결국 ‘얼마나 오래 공부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자느냐’에 달려 있다.

소아 기면증은 흔치 않지만, ADHD와 혼동하기 쉬운 만큼 부모와 교사의 인식이 중요하다.

아이의 졸음 뒤에는 단순한 나태함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구조적 신호가 숨어 있다.

그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아이의 내일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김수현  호매실연세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김수현 호매실연세이비인후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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