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 위치한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뉴스1
지난 10월 경주에서 치러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공식 행사를 둘러싸고 대한상공회의소(상의)가 내홍에 휩싸였다. 행사 담당 주무 부서에서 임직원의 비위 혐의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상의는 법정 민간경제단체로,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사업 계획·예산 집행 등을 산업통상부에 보고하고 있다. 20만 기업의 회비로 운영되는 상의가 부정 의혹에 휘말리자 안팎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호텔비 부풀려 정산한 뒤 “내 계좌로 입금해줘”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월 31일 경북 경주시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마지막 특별 세션에서 연설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29일 재계에 따르면 상의 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추진단 소속 A팀장은 지난 19일 대기발령 조치 후 내부 감사를 받고 있다. A씨는 이달 초 APEC 행사 관계자의 숙박비를 정산하면서 호텔 측에 실제 숙박비(4500만원)보다 수백만원 많은 금액을 결제한 뒤 개인 계좌로 차액을 요구한 것이 외부 제보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비록 제보로 횡령은 미수에 그쳤지만, 형법 제359조에 따르면 횡령·배임 미수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상의 측은 “아직 서밋 정산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 초가 돼야 감사 결과를 알 수 있을 것”라는 입장을 밝혔다.
상의 내부에서는 대행사 선정을 놓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APEC 서밋을 총괄 진행한 대행사가 행사 종료 후 당초 입찰가(28억5000만원)보다 약 100억원 많은 128억원을 사업비로 청구해서다.
상의는 예산이 크게 초과돼 적자 가능성이 커지자 행사 종료 두 달이 지나도록 정산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대행사와 최종 금액을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상의 관계자는 “저가 입찰 뒤 임의로 세부 활동을 늘리고 추가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조달 분야 감사에서 자주 나타난다”며 “대행사가 저가 입찰 후 사업비를 부풀려 청구한 것은 아닌지, 서밋 추진단 차원에서 이를 용인하고 리베이트를 받은 것은 아닌지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상의가 지난 10월 28일부터 나흘간 경주에서 개최한 APEC CEO 서밋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경제 포럼이다. 상의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밋 의장으로 행사를 주재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가 총출동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인 1700여명이 참석했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이 연사로 참여했다.
━
상의 직원들 “조직적 비위 우려”
상의 직원들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올린 게시물. 커뮤니티 캡처
상의 직원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통해 APEC 서밋 추진단 차원의 조직적 비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서밋 추진단을 이끄는 임원(상무)이 지난 2022년 ‘베트남 특별입국 대금 미지급 사건’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어서다.
상의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당시 베트남 정부가 외국인 입국을 차단하자 정부와 합동으로 기업인·교민 등 4000여명에 대한 특별입국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상의 용역을 받은 대행사는 베트남 현지 여행사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최태원 회장이 취임한 2021년 3월 들어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상의 담당자들은 이 사실을 1년 가까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고 현지 대행사에 대금 인하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주베트남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 베트남) 측을 통해 2022년 뒤늦게 공개됐다. 당시 코참 베트남 측은 특별입국 대금 수취 구조·대행사 선정에 문제가 있다며 상의에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상의는 대금 연체 과정에 상당한 의혹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베트남 특별입국 담당자(현 APEC 서밋 추진단 소속)를 감봉 처분했지만 직위는 유지했다. 당시 문제를 일으킨 대행사는 이번 APEC CEO 서밋에도 사명과 대표자만 바꿔 또 참여했다.
━
“상의는 철밥통”…투명성 높여야
상의 직원들은 “특정 임원과 업체의 유착 의혹이 반복되고 있다” “대기업이었으면 잘렸을텐데 상의는 철밥통” “주인없는 회사라 그런지 비도덕성 심각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간 외부 대행사를 낀 행사 진행 과정에서 횡령·유착 의혹이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솜방망이’ 징계로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한상의는 국내 최대 경제단체이자 정부의 예산 감사대상”라며 “그 어느 기업보다 공정하게 자금을 집행하고 이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직 내부의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비위 행위를 엄정하게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며 “예산을 다루는 직책을 순환 보직으로 운영하고 수시 감사로 회계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