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범행 장소 건물 관리인’…10년 전 사망
방송에서 ‘엽기토끼 납치 사건’과 연관성 제기
동일 범인 사건들로 알려졌으나 다른 것으로 확인
방송에서 ‘엽기토끼 납치 사건’과 연관성 제기
동일 범인 사건들로 알려졌으나 다른 것으로 확인
경찰이 보강수사를 위해 범행 장소였던 서울 양천구의 한 빌딩 지하 1층을 수색하는 모습. 서울경찰청 제공
2005년 서울 양천구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20년 만에 범행 장소였던 건물의 관리인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찰청 형사기동대(대장 백승언)는 장기미제 사건으로 관리해오던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ㄱ(범행 당시 60대)씨로 특정했다고 21일 밝혔다. 다만 ㄱ씨가 이미 10년 전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종결될 예정이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1차 사건 피해 여성 ㄴ씨는 2005년 6월6일 신정동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가 출구를 찾던 중 건물 경비원 ㄱ씨의 말에 속아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ㄱ씨는 ㄴ씨를 지하 창고로 끌고 가 금품을 빼앗고 성폭행한 뒤 양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고, 시신 상·하부에 쌀포대 두 개를 씌워 노끈으로 묶은 뒤 한 초등학교 노상 주차장에 유기했다. 2차 사건 피해 여성 ㄷ씨 역시 그해 11월20일 1차 범행이 일어난 같은 건물을 방문했다가, 지하 1층 창고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1·2차 사건 직후 대규모 전담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나섰다. 현장 증거물 감식, 유전자 감정, 전과자 대조는 물론 수배 전단까지 만들어 배포했으나,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2013년 6월28일 미제사건으로 전환했다.
그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유전자 분석기법의 발전으로 재수사의 실마리를 찾았다. 2020년 1·2차 사건 증거물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을 확인하면서 다시 피의자 특정에 나섰고, 수사대상자 23만여명을 뽑아낸 뒤 전국을 순회하며 1570명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경찰은 이들 중 동일수법 전과, 범행 당시 신정동 빌딩 관리인 근무 사실 등을 근거로 유력 용의자 ㄱ씨를 특정했다.
그러나 이미 숨진 ㄱ씨가 화장 처리된 탓에 검체 확보가 쉽지 않았다. 생전 작성한 서류나 접촉 물건도 시간이 흘러 디엔에이(DNA) 대조가 불가능했다. 다행히 한 병원에서 ㄱ씨의 검체(인체 유래물)를 보관하고 있었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ㄱ씨의 디엔에이와 두 사건 증거물 디엔에이가 같다는 점을 확인했다. 1570명의 디엔에이를 대조한 끝에 ㄱ씨를 최종 피의자로 특정한 것이다.
현장 증거물. 서울경찰청 제공
경찰은 ㄱ씨를 특정한 뒤 보강수사를 벌였다. 근무처 18곳을 탐문해 시체 유기 장소 주변에서 관리원으로 근무한 경력을 알아냈다. 범행 장소였던 건물 지하를 압수수색하고 합동 감식한 결과, 피해자 시체에서 발견된 곰팡이·모래 성분과 환경 유사성도 확인했다. ㄱ씨는 두번째 살인 3개월 뒤인 2006년 2월 같은 장소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강간치상 혐의로 3년간 복역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알고싶다’ 신정동 엽기토끼편 방송 화면. SBS 갈무리
다만 이 사건은 비슷한 시기인 2006년 5월 신정동에서 발생한 '엽기토끼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에스비에스(SBS)의 '그것이 알고싶다'는 신정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발생한 납치미수 사건의 범인이 이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사건은 당시 피해 여성이 탈출 전 몸을 숨긴 곳에서 엽기토끼 스티커가 붙은 신발장을 봤다고 증언하면서 '엽기토끼 살인사건'으로 불렸다. 하지만 ㄱ씨는 2006년 5월 당시 이미 수감된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미제 사건의 진실을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끝까지 규명하겠다”며 “오랜 시간 경찰을 믿고 기다려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