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현장 하청업체
11개월 일한 뒤 한 달 쉬고 재입사 관행
현장소장 “퇴직금 때문도···” 녹취 확인
영동대로 등 공공 발주 현장도 예외 아냐
11개월 일한 뒤 한 달 쉬고 재입사 관행
현장소장 “퇴직금 때문도···” 녹취 확인
영동대로 등 공공 발주 현장도 예외 아냐
용인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관리자에게 한달 퇴사 뒤 재입사 지시를 받은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일부 건설현장에서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1년 가까이 근무한 건설노동자들을 일괄적으로 퇴사하게 한 뒤 한달 후 다시 고용하는 ‘꼼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윤종오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SK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 일부 노동자들은 11개월간 근무한 경우 한 달을 쉰 후 다시 재입사를 해야했다. 근로기준법상 주 15시간 이상씩 1년 이상 일한 노동자에게는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풀이된다.
원래도 고용 불안이 심각한 건설노동자들은 열심히 일하고도 퇴직금은커녕 한달 간 강제로 실직 상태에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 하청업체에서는 근무한 지 10개월이 지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별도로 단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퇴사를 지시한 정황이 확인됐다. 해당 업체의 관리자는 지난해 12월 20여명의 노동자들을 따로 초대한 카톡방에서 “2026년 1월, 2월달에 한달 동안 나갔다 들어오셔야 한다”며 “나가는 건 달을 따로 정할 수 없다. 제가 정하는대로 나갔다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장 소장이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에서 “여러분들 퇴직금 때문에 나가라 그런 것도 있지만”이라고 언급한 녹취 내용도 확인됐다.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하청업체와 근무 10개월째 맺은 계약. 다음날에는 근로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있다.
이는 해당 건설현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부 노동자들도 입사한 지 11개월째에 형식상 계약이 종료된 뒤 재계약을 반복해야 했다. 한 하청업체는 한달 단위로 매달 노동자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하다가 10개월째 계약서에는 다음달은 근로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후 11개월째에는 실제로 계약을 하지 않았고, 12개월째에 다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이 업체에서 일한 건설노동자 A씨가 지난해 5월 회사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귀하와의 근로계약이 금번(5월달)까지만 연장하는 것으로 하되, 2024년 6월달은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것임을 고지드린다”고 적혀있다. 이후 7월부터는 다시 근로계약을 작성하고 근무를 했다. 이런식으로 단기간의 경력 공백이 생긴 A씨는 2022년 6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실제로는 3년 이상 일했지만, 퇴직금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그는 퇴사 뒤 부당해고 및 퇴직금 미지급으로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공공 발주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시 영동대로 지하화 공사 제4공구(롯데건설) 현장에서도 퇴직금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에게 한달간 다른 현장에서 근무하고 오도록 시킨 사례가 확인됐다. 이곳에서 일했던 건설노동자 B씨는 “일부 노동자들이 퇴직금 때문에 지난해 11월 중순 퇴사한 뒤 12월 중순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고용노동부는 이같이 형식적인 고용 단절로 퇴직금 지급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들에 대한 퇴직금 인정 여부는 개별 근로감독관의 판단에 따라 상황별로 다른 판정이 나오고 있다.
송주현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정책실장은 “건설 경기가 매우 안좋고 고용 불안이 심한 건설노동자들이 회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직접 문제를 제기하는 어렵다”며 “노동부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고용이 공정이 마무리될 때까지 유지되지 않으면 시공의 품질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미 발생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 퇴직금이 애초에 발생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악용하는 행위는 더 큰 문제”라며 “‘1년 이상 연속 근무’라는 형식적 요건에만 매몰된 퇴직금 제도를 개선하고, 꼼수로 퇴직금 발생을 회피하는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제재 기준과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