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자 테니스
편집자주
‘누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인가’는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해묵은 논쟁거리입니다.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팀에서 뛴 선수들을 한 줄로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기에 각자의 의견도 다릅니다. 오직 한 명만 존재할 수 있는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여러분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5월 25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의 메인코트 필리프-샤트리에에서 열린 라파엘 나달의 은퇴식에 모인 세기의 라이벌들. 왼쪽부터 앤디 머리, 로저 페더러, 나달, 노바크 조코비치. 파리=AFP 연합뉴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 프로테니스 ‘빅3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로저 페더러(45·스위스)와 라파엘 나달(40·스페인)이 코트를 떠난 가운데, 노바크 조코비치(39·세르비아)만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았다. 투어의 중심축 역시 세계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23·스페인)와 2위 얀니크 신네르(25·이탈리아)가 이끄는 '알-신 대전'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빅3'의 경쟁이 종착역에 다다르자, 역설적으로 누가 남자 테니스계의 최고인지를 가리는 ‘고트(GOAT·역대 최고 선수) 논쟁’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논쟁 당사자인 페더러 역시 은퇴를 앞둔 2022년 한 인터뷰에서 이 논쟁을 이렇게 정리했다. “솔직히 재미있는 논쟁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나? △노장의 우승이냐, 젊은 피의 우승이냐 △클레이 코트냐, 잔디 코트냐 △수년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는 것과 부상에서 복귀하는 것, 이 중에 뭐가 더 위대한지 따지기는 정말 불가능하다.(impossible to grasp)”
페더러의 말처럼 하나의 기준만으로 '최고'를 재단할 수는 없다. 어떤 팬들은 페더러를 역대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려놓고 ‘테니스 황제’라 부른다. 다른 이는 클레이 코트를 초토화한 ‘흙신’ 나달을, 또 누군가는 ‘현재진행형 기록 제조기' 조코비치를 '고트'로 꼽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기준과 철학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고트 논쟁은 승패보다 더 뜨겁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테니스 삼대장’ 중 누가 GOAT인가.
노바크 조코비치가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2025 US 오픈 남자 단식 8강에서 미국의 테일러 프리츠를 꺾은 뒤 세리머니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GOAT는 기록이다"... '무결점' 조코비치
논쟁을 한 번에 끝내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개인 취향과 감정을 걷어내고 기록표를 펼치면 된다.
'빅3'가 남자 단식 세계랭킹 1위를 지킨 기간을 모두 합치면 무려 947주, 햇수로 18년에 달한다. 이 중 조코비치가 428주로 1위고, 페더러(310주)와 나달(209주)이 그 뒤를 따른다. 세계 정상에 얼마나 오래, 꾸준히 머물렀는지를 묻는 말 앞에서 조코비치는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논쟁의 핵심 지표인 ‘그랜드슬램 트로피 개수’도 마찬가지다. 조코비치는 4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역대 최다인 24회 우승을 달성했다. 1960~70년대 여자 단식 마거릿 코트(호주)와 같다. 나달은 22회, 페더러는 20회다.
‘시즌 왕중왕전’인 남자프로테니스(ATP) 파이널스에서도 조코비치는 7차례 정상에 올라, 빅3 가운데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랜드슬램 바로 아래 등급 대회인 마스터스 시리즈에서는 무려 40회나 우승했다. 올림픽과의 악연마저 끊어냈다. 2024년 파리 대회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빅3' 중 나달에 이어 두 번째 ‘커리어 골든 그랜드슬램’을 완성했다. 4개의 빅 타이틀(그랜드슬램, ATP 파이널스, 올림픽, 마스터스) 우승 횟수를 모두 합치면, 조코비치는 72회다. 나달(59회), 페더러(54회)와는 격차가 분명하다.
노바크 조코비치가 미국 뉴욕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2023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에 입 맞추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조코비치는 폭발적인 강서브를 앞세운 선수도, 강철 체력의 소유자도 아니다. 하지만 리턴, 수비, 랠리, 멘털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는 ‘무결점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11월 통산 101번째 ATP 투어 우승으로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증명했다. 우승 직후 "2028년 세르비아 국기를 들고 내 커리어를 끝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혔다. 그의 시선은 이미 LA 올림픽을 향해 있다는 뜻이다. 목표대로라면, 기록과 성취 등 모든 영역에서 나달과 페더러를 더 멀찌감치 따돌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조코비치는 지난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금은 호주오픈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주오픈은 그가 10차례나 정상에 오른 ‘텃밭’. 이곳에서 ‘메이저 대회 25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이정표를 세운다면, ‘고트 논쟁’을 끝내기에 충분한 한 방이 될지도 모른다.
라파엘 나달이 파리 스타드 롤랑가로스에서 열린 2019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오스트리아의 도미니크 팀을 상대로 득점한 뒤 환호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GOAT는 지배력이다"... ‘흙신’ 나달
나달의 커리어를 설명하는 데 숫자는 출발점일 뿐이다. 진짜 논점은 ‘얼마나 지배했느냐’다. 프랑스오픈(롤랑 가로스)에서만 14승을 쓸어 담았고, 파리에서 치른 116경기 가운데 단 4번만 패했다. 특정 메이저 대회를 이 정도로 지독하게 독점한 사례는 없다. 가히 불멸에 가까운 기록이다.
클레이 코트 지배력은 ATP 투어 전체로도 확장된다. 클레이 코트에서만 63회 우승을 차지했고, 승률은 무려 90.5%에 이른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ESPN은 "나달은 테니스의 수학을 깨뜨렸다. 23년 동안 테니스를 정의하는 숫자들을 완전히 무의미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한국 팬들은 '흙신'이라고 불렀다.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상대할 때마다 "나달의 뒷마당에 들어온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지난해 10월 방한한 나달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클레이 코트가 내 플레이스타일에 잘 맞았다. 이겨가면서 자신감이 쌓였고, 상대는 그곳에서 나를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력 위에 심리적 우위까지 더한 ‘완전 지배’였다.
스포츠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나달은 ‘테니스 신동’이었다. 3세 때 라켓을 잡았고, 9세 때 선수의 길에 들어섰으며, 15세에 프로에 데뷔했다. 이어 데뷔 이후 불과 3년 만인 2004년, 세계랭킹 1위 페더러(당시 23세)를 꺾으며 테니스계에 충격을 안겼다.
2005년 19세의 나달은 부상을 털고 돌아와 클레이 코트인 프랑스 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일궈내는 등 그해에만 무려 11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흙신 시대’의 서막이었다.
라파엘 나달이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2019 US 오픈 남자단식 16강에서 크로아티아의 마린 칠리치를 6-2로 꺾고 8강에 진출한 뒤 기뻐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그러나 치명적인 시련이 뒤따랐다. 왼발에 뮬러 와이즈 증후군(족부 주상골이 붕괴되는 퇴행성 희귀질환)이 발병한 것이다. 이는 선수생활 내내 그를 괴롭혔다. 나달은 "의사는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19세에 은퇴를 고민해야 했다”며 절망적이던 시기를 회상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특수 제작된 신발과 진통제에 의존한 채, 매 경기 몸을 깎아내듯 버텼다. 그렇게 싸워낸 결과가 ‘메이저 대회 22회 우승’이다. 아울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앤드리 애거시(미국)에 이어 테니스 역사상 두 번째 ‘커리어 골든 그랜드슬램’도 완성했다.
코트 위의 나달은 투사였다. 원초적인 운동신경과 비상한 체력, 그리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으로 상대를 질식시켰다. 그의 상징은 단연 강력한 ‘포핸드’다. 테니스 분석가들에 따르면, 나달은 그라운드 스트로크의 55%를 포핸드로 구사했다. 이는 페더러(48.8%), 조코비치(48.9%)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나달의 은퇴 때쯤 이렇게 평했다. "처음에는 ‘클레이 코트용’ 선수로 여겨졌지만, 테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올코트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진화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영역을 만들어낸 선수, 그가 바로 GOAT다.
로저 페더러가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19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마테오 베레티니를 3-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한 뒤 기뻐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GOAT는 품격이다"… ‘황제’ 페더러
스포츠 각 종목에서 ‘황제’란 별명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그렇다. 그리고 현재 테니스에서 황제의 칭호를 얻은 선수는 20년 넘게 남자 테니스 정점에 군림한 페더러다.
페더러의 플레이에는 늘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신체 조건이 월등하거나 강력한 힘을 앞세우진 않았지만, 교과서적이면서도 우아한 플레이로 남자 테니스를 지배했다. 여자 테니스의 전설 나브라틸로바는 페더러를 두고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공을 친다. 모든 완벽한 스트로크가 모여 결국 하나의 걸작을 만들어낸다"고 표현했다. “스페셜리스트들의 시대에서 당신은 클레이 코트 스페셜리스트거나, 잔디 코트 스페셜리스트거나, 하드 코트 스페셜리스트거나, 아니면 로저 페더러일 것이다”. 1970년대 테니스 스타, 지미 코너스의 이 한마디는 페더러의 테니스가 어떤 경지에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페더러가 1998년 프로 전향 후 써 내려간 역사는 경이롭다. 2003년 윔블던을 시작으로 2018년 호주오픈까지 남자 테니스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 20회를 달성했다. 여기에 윔블던(2003~2007년), US오픈(2004~2008년) 동반 5연패를 달성하며 역대 유일의 두 개 메이저 대회에서 남자 단식 5연패를 달성한 선수로도 남아 있다. 특히 ATP 투어 통산 우승(103회)과 프로 통산 승수(1,251승)는 은퇴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빅3’ 가운데 1위다.
로저 페더러가 영국 런던 O2 아레나에서 열린 2022 레이버컵 대회에서 자신의 마지막 현역 경기를 마친 뒤 동료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그러나 페더러를 ‘황제’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이유는 압도적인 실력에 더해 매너와 인성까지 갖춘 품격이었다.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나 6세 때 테니스를 시작한 그는 1992년과 1993년 ATP 투어 스위스 인도어 바젤 대회에서 볼 보이를 하며 선수의 꿈을 키웠다. 코트 위를 굴러다니는 공을 주우며 손 감각을 익혔고, 스타들의 숨소리를 곁에서 들으며 내공을 쌓았다.
이 시절 초심은 선수 생활 내내 이어졌다. 특히 경기 중 볼 보이에게 공을 건네야 할 때 라켓으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배려의 모습은 은퇴 후에도 회자된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스캔들에 휘말린 적이 없으며, 팬들에겐 늘 친절했다. 상대를 비방하지 않고, 자신을 이긴 선수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스포츠맨십의 정석이었다. 한국 팬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8년 호주오픈 4강전을 앞두고 부상으로 기권한 정현의 SNS에 “멋진 여정을 축하한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직접 남겼다.
이런 행보에 페더러는 2003~21년까지 무려 19년 연속 ATP 팬들이 뽑은 최고 인기상을 받았다. ATP 스테판 에드베리(스포츠맨십상)상도 13번이나 차지했다. 나달은 5번, 조코비치는 단 한 번도 받지 못한 상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테니스 선수 수입 순위에서도 17년 연속 1위를 지켰다. 부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시즌에도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경기력은 물론, 이미지까지 좋아 세계적인 기업들이 페더러를 후원한 덕분이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자신의 이름을 딴 '로저 페더러 재단'을 통해 아프리카 말라위를 방문, 소외 지역 아동들에게 교육지원 등 사회 공헌 활동도 펼쳤다. 그리고 지난해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이 모든 공로를 인정받았다.
기량과 품행, 기록과 영향력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페더러, 그를 ‘테니스 황제’이자, '고트'라고 부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