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 도서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타스 연합뉴스
미국이 친러시아 국가인 벨라루스와 정치범 석방 관련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벨라루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살 빼는 약’을 협상 수단으로 삼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24일 미국의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은 존 콜 벨라루스 특사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수차례 면담 끝에 벨라루스는 미국인을 포함한 정치범을 석방하고, 미국은 대 벨라루스 제재를 해제하는 상호 합의를 타결했다고 보도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불리는 인물로, 1994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뒤 야권·시민사회와 언론 탄압을 이어가며 재선에 성공해 30년 넘게 대통령직을 역임 중인 인물이다. 2020년 부정 선거 논란 뒤, 시위대 3만명 이상을 투옥시키면서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외교적으로도 고립됐다.
콜 특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 출신으로, 특사로 임명된 뒤 루카셴코 대통령을 여러 차례 면담하며 신뢰를 쌓았다. 그 과정에서 지난 6월 루카셴코 대통령이 콜 특사가 두달 전 만났을 때보다 살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 묻자, 콜 특사는 일라이 릴리 사의 비만 치료제인 젭바운드를 사용했다며 브로셔를 건네줬다고 한다. 일흔한살로 몸무게가 꽤 나가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살을 빼야 한다는 측근의 권유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비만 치료제가 전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정부가 루카셴코 대통령 개인을 위해 젭바운드를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전했다.
일련의 비공개 협상 끝에 콜 특사는 벨라루스에 수감된 정치범의 대규모 석방과 제재 해제를 주고받는 합의를 성사시켰다. 트럼프 행정부는 벨라루스가 바라는 대로 벨라루스가 생산하는 칼륨의 수출 제재를 풀었으며, 벨라루스 국영 항공사가 미국 항공기 제조사인 보잉으로부터 항공기 부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 제재 완화 조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해 러시아를 설득하기 위한 새로운 외교적 통로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실제로 지난 여름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데도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협상을 본보기삼아, 벨라루스와 친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데 대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분석했다. 한 미국 쪽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은 결국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그가 잘 알고 신뢰하는 인물이 이번 거래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럽·벨라루스에선 일단 정치범 석방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인질을 팔아 제재를 푸는 위험한 선례”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비아틀라나 치하놉스카야는 “루카셴코에게 정치범 석방은 거래 수단일 뿐이다. 회전문처럼 계속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콜 특사는 “이게 트럼프식(외교)이다. 상대가 누구든, 미국이 원하는 걸 줄 수 있다면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