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임시국회 본회의를 산회하며 여야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진행 방법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날 여당의 잇단 ‘수정안 입법’을 두고 “몹시 나쁜 전례”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도 5년 전 수정안 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회 상임위원회를 거친 법안을 본회의에서 수정해 통과시키는 방식은 국회의 입법 심의 구조를 형해화하고 졸속입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취지다.
25일 확인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보면, 2019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가결한 것이 자신들의 입법권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이 개정안은 여야 의원들이 참여한 정개특위에서 안건조정위원회 심사를 거쳤고,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에 부의됐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본회의가 열리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야가 합의한 원안과는 다른 수정안이 가결됐다. 원안과 달리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는 기존대로 유지됐고, 석패율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도 제외됐다. 이러한 수정안 입법에 대해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은 “원안과 수정안의 직접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2020년 합헌 선고했다. 다만 수정 범위가 원안의 취지를 뛰어넘는다고 판단한 재판관도 4명에 달해, 찬반이 팽팽하게 갈렸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수정안 입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이들은 “우리 국회는 본회의에서 거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심사·의결된 내용대로 가부 표결만 하는 ‘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며 “위원회 심사는 법률 제정 등 국회의 의사결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수정안은 위원회 심사가 생략된 채 본회의에서 형식적인 제안 설명과 질의·토론을 거쳐 가결돼 국회의 최종적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본회의 심의 단계에서 수정안 제출이 제한 없이 허용될 경우 소관 위원회 심사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회부되는 국회법상 입법 심의 구조가 형해화될 수 있다”며 “개정안에 대한 집중적인 심사와 토론, 전문가 및 이해관계인의 의견 수렴, 법적 체계 또는 자구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질 수 없어 졸속 입법의 폐해를 불러오게 된다”고 밝혔다.
재판관들은 그러면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범위 내에서 수정동의를 통해 발의되는 수정안의 범위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국회법 95조는 본회의 수정동의 요건을 ‘원안의 취지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헌재 판단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행보와 맞물려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된다. 민주당이 추진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법사위 수정 과정에서 위헌 논란에 휩싸였고, 당 지도부는 본회의 상정 직전인 23일 수정안을 마련했다. 수정안 내용은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여당 의원들과 언론에 공개됐다. 우 의장은 전날 본회의 산회 직전 “법사위 설치 목적에 반할 뿐 아니라 국회라는 입법기관 자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라며 수정안 입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수정안 입법이 “막판 미세조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박지원 의원은 이날 BBS 라디오에서 우 의장의 비판과 관련해 “본회의에서 수정을 계속한 것은 국민 의견과 전문가들 의견을 좇아서 낸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각계 우려를 수렴했어야 할 상임위가 심사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