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사저에서 미 해군의 ‘황금함대’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바로 옆에 자신의 이름을 딴 ‘트럼프급 전함’ 상상도가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급 전함’ 초도함 건조가 2030년대 초반에야 시작될 것, ‘황금함대’는 매우 먼 미래의 일”(더워존·TWZ) “필요성은 불분명하며 건조 일정은 비현실적”(내셔널 시큐어리티 저널·NSJ)
“전체 비용과 일정이 공개되면 ‘황금함대’ 프로그램은 거의 확실히 취소될 것”(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도박과 같은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아시아타임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발표한 ‘황금함대’ 구상을 놓고 최근 미 외교안보 싱크탱크와 군사안보 전문 매체 등에서 쏟아지고 있는 싸늘한 경고음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 해군 주력함인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보다 서너 배 정도 크고 극초음속미사일 등 최신 무기가 탑재된 트럼프급(Trump Class) 전함을 20~25척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공개했다. 하지만 황금함대 프로젝트의 핵심으로 전투력이 100배 더 강해질 거라는 ‘트럼프급 전함’ 건조 계획이 발표 직후부터 거센 논란에 직면했다. 미 싱크탱크 CSIS가 지난 23일 ‘황금함대 전함들은 결코 출항하지 못할 것’이라는 제목의 비판적 보고서를 낸 데 이어, 군사 전문 매체 NSJ와 TWZ, 아시아타임스 등에서 트럼프급 전함의 기술적·재정적 한계와 여러 현실적 난관을 지적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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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미 해군 작전 개념과 충돌
우선 군사적 효용성 측면에서 맞지 않다는 비판이 많다. 현대 해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사일과 드론으로 타격하는 ‘분산형 작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급 전함은 이와 반대로 최고급 무기 자산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과거 모델이다. 오늘날 미 해군의 작전 수행 콘셉트와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아시아타임스는 “장거리 정밀 타격 무기, 특히 중국이 개발한 무기로 미 대형 항공모함의 생존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트럼프급 전함도 같은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거대화한 전함은 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쉬운 고가의 표적이 될 뿐이라는 의미다.
트럼프 ‘황금함대’ 구축 어떻게 그래픽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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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준비되지 않은 무기 기술
트럼프급 전함은 배수량 3만~4만 톤급 선체에 극초음속 미사일, 전자기 레일건, 고출력 레이저, 핵탄두 탑재 크루즈 미사일 등 최신 무기체계를 집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들 기술 상당수는 아직 미 해군 주력 무기로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레일건의 경우 미 해군이 기술적 한계로 이미 실전 배치를 포기한 상태다. 레일건은 막대한 전력 소모와 포신 과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폭발·화재 등 사고로 전함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NSJ는 “트럼프급 전함에 탑재될 것이라는 무기 시스템 중 상당수는 기술적으로 미성숙 상태이거나 신속한 통합이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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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비용의 늪…1척당 13조원
천문학적 비용 문제는 황금함대 구상의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CSIS는 기존 9000톤급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한 척에 28억 달러(약 4조원)가 드는 점을 감안할 때 서너 배 크기의 트럼프급 전함은 한 척당 91억 달러(약 13조2000억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신형 군함의 초도함은 설계·개발 비용을 포함해 평균보다 50% 더 드는 만큼 트럼프급 전함의 초도함이 될 ‘디파이언트’(USS Defiant)함은 약 135억 달러(약 19조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최첨단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급과 맞먹는 비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디파이언트를 포함한 트럼프급 전함 2척을 우선 도입한 뒤 10척으로 늘리고 궁극적으로 총 20~25척을 확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CSIS는 미 해군이 배수량 1만5000톤의 줌왈트급 구축함을 본래 18~24척 건조할 계획이었지만 사업을 포기하고 3척 건조에 그치면서 줌왈트급 1척의 평균 건조 비용이 개발 비용 포함 91억 달러에 달한 점을 들어 “트럼프급 전함 확보 계획은 위험한 전략”이라고 경고했다. 처음부터 확실한 양산 체제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초기 물량이 적으면 줌왈트급 구축함의 실패 사례처럼 천문학적 개발 비용만 날릴 거라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 사저에서 ‘황금함대’ 구축 계획을 발표한 지난 22일(현지시간) 회견장 한쪽에 ‘트럼프급 전함’의 초도함이 될 ‘디파이언트함’ 상상도가 전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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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인프라 취약…“2030년대 건조 시작”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충분한 조선 인프라를 갖췄는지도 의문이다. 미 조선업계 전반에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공급망이 원활하게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디파이언트함 건조는 거의 즉시 시작돼 2년 반 걸릴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NSJ는 “실현 불가능한 일정”이라고 지적했다. TWZ는 미 해군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급 전함은 2030년대 초반까지는 건조를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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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명명 관례 어긋난 ‘트럼프급 전함’
전함에 트럼프 대통령 이름을 직접 붙인 것은 정치적 우상화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CSIS는 “생존 인물 이름을 군함에 붙이는 것은 명명 관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했다. 황금함대 프로젝트가 해군력 증강이라는 본질적 목표보다 정치적 메시지 성격이 강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NSJ는 “미국 조선소, 공급망, 예산 현황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전함 건조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라며 “트럼프급 전함은 어쩌면 영원히 건조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불리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한화 필라델피아 조선소는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건조 추진 의사를 공개 표명했다. 톰 앤더슨 한화디펜스USA 조선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22일 기자 간담회에서 “필리조선소에서는 미국의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하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최고 수준으로 건조할 역량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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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조선소 “미 핵잠 건조 준비중”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황금함대 구상을 발표하면서 신예 호위함 건조 협력 파트너로 한화를 콕 집어 언급한 가운데 군함 건조를 넘어 원잠 건조 협력의 거점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앤더슨 사장은 “미 해군 핵잠 건조를 위한 준비 작업을 이미 진행 중”이라며 “인력 확충, 생산 효율 개선, 시설 투자, 한국 조선소의 모범 사례와 기술 이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백악관 국가안보수석부보좌관을 지낸 알렉스 웡 한화그룹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CSO)도 참석했다. 그는 “미 대통령은 조선업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제시했고, 필리조선소를 중심으로 핵잠을 포함한 여러 선박을 건조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필리조선소가 원잠 건조를 본격화하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미국 내에서 원잠 건조가 가능한 조선소는 아직 두 곳 뿐이며, 필리조선소 역시 전용 도크와 전문 인력 확보 등이 시급한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