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회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등 사법부의 대선개입 의혹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 및 참고인으로 출석한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부터), 이준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석호 변호사, 이성민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 등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파기환송 결정 이후 민주당 주도로 사법개혁 입법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국내 양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역학 관계를 흔들 수도 있는 법안이 속속 제기됐다. 해당 법안이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 등을 충분히 보장할 방안인지를 놓고 우려 섞인 시선이 나온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헌법연구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내놨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4일 법원 판결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재판소원’ 관련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에 회부했다. 모두 헌법재판소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대법원에 대해서는 대법관 정원을 현재 14명에서 30명 등으로 증원하자고 주장하는 등 권한을 분산시키려 하고 있다.
현재 헌재의 헌법소원 심판 대상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 등에 한정된다. 그런데 이 대상을 법원의 판결까지 넓히게 되면 사실상 재판 확정 권한이 대법원이 아닌 헌재로 오게 된다.
헌재는 1997년 소득세법 사건을 시작으로 법률·법 해석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한정위헌 결정을 통해 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수차례 내렸다. 여기에 맞서 대법원은 이 결정의 기속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처럼 헌재와 대법원은 최종심 권한을 놓고 오랫동안 갈등을 이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 주도로 재판소원 논의에 다시 불이 붙으면서 두 기관의 갈등 양상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헌재에선 이번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헌재는 최근 재판소원 법안과 관련해 국회에 의견서를 내고, 제도에 찬성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지난 22일에는 재판 취소 사건 후속인 KSS해운의 행정부작위 위헌 확인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는 사실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지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대법원은 반대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판소원은 사실상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명시적으로 반대 의사를 내놨다.
법조계 “제도 바뀌면 법적 안정성 흔들릴 수 있어 우려”
일선 판사들을 비롯한 법조계 안팎에선 재판소원 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지방법원 한 부장판사는 “지금 상황이 마치 대법원과 헌재 어느 한쪽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알력 다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제도가 바뀌면 국민 권리 구제가 오히려 늦어질 수도 있다”며 “최종심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추진 방향을 보면 ‘법적 안정성’이라는 중요한 사법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도 최근 ‘사법부 신뢰 위기와 사법개혁 방향 모색’ 긴급좌담회를 열고,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재판소원으로 국민 기본권이 확대되고, 법률에 대한 규범 통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법원과 헌재 간 사법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 헌법상 대법원이 최고 법원으로써 재판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도록 하고 있어, 재판소원이 사실상 제4심 역할을 하면 위헌 소지가 있다. 헌법을 바꿔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장재하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기준 헌재의 평균 심판 처리 기간이 724.7일이었다”며 “만약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재판 확정이 평균 2년 정도가 더 지연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헌재가 대법원 위에 있는 구조로 바뀌게 될 경우 헌법연구관 숫자도 대폭 늘려야 하는 등 현실적인 한계가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장 조사관은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헌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심사 범위를 제한하거나 헌재 인력과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