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이공계 엘리트] <중> 인재적자 원인은
만명 배출해도 일자리 1.6만개
中유학생 자국 취업은 19% 늘어
만명 배출해도 일자리 1.6만개
中유학생 자국 취업은 19% 늘어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으로 일하고 있는 박동우(가명·34)씨는 국내 대학에서 학부와 석박사까지 마친 뒤 미국행을 택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지만 미국에 정착하면 한국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다. 박씨는 25일 국민일보에 “미국에서 교수직이나 국책연구원 연구직을 알아보고 있다. 여의치 않으면 일반 기업에 갈 생각도 있다”며 “미국은 한국보다 박사급 연구자가 좋은 대우를 받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고 말했다.
국내 이공계 대학원생이 한국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는 주된 이유로는 부족한 일자리가 꼽힌다.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 박사 학위를 따더라도 전공을 활용할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2021년 박사인력활동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들이 해외 이주를 계획하는 이유 중 ‘일자리 관련’(복수응답)을 꼽은 비중이 31.4%로 가장 많았다. 직업·경제적 이유라는 답변은 25.1%였다.
반면 정부 차원의 ‘인재 리턴’ 정책을 펴는 중국은 유학 후 귀국을 택하는 인력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중국 취업 전문기관인 즈롄자오핀에서 발표한 ‘2024년 중국 해외 유학생 취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졸업한 유학생의 중국 내 취업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해외에서 유학한 뒤 귀국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2018년 대비 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다.
중국 유학생의 귀국 행렬은 정부와 기업 차원의 막대한 투자 덕분으로 분석된다.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AI), 항공우주, 의약 등 분야를 전략적 우선 육성 산업으로 지정해 기업과 연구자에게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최근에는 유학 중인 일부 분야 포닥 연구자들에게 연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의 급여를 주겠다며 귀국을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국내에서 이공계 박사 학위에 걸맞은 일자리는 박사 인력 배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16~2020년 이공계 박사 배출 대비 박사급 과학기술 인력 일자리 증가 규모는 54%로 절반 수준이었다. 이 기간 이공계 박사 인력은 3만1020명 배출됐지만 일자리는 1만6804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공계 박사의 59.3%가 최소 학력 조건이 박사에 미치지 못하는 일자리에 종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일자리 ‘미스 매치’의 대표적 분야는 양자과학 기술이다. 정부가 국내 양자 기술력 제고를 위해 인재 양성에 나서고 있지만 그에 맞는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 IBM, 아이온큐 같은 양자컴퓨팅 기업이 기술 상용화에 앞장서는 데 비해 한국은 대표적 양자 기술 관련 기업이 없어 박사 과정을 마치더라도 교수나 연구원을 제외하고는 취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양자 분야 핵심 인력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532명이 근무 중인 반면 기업 고용 창출은 63명에 불과했다.
신희득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는 “10년 뒤에는 양자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대기업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아직은 일반 기업에 취직해 관련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며 “학생들이 양자대학원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불안정하다고 느끼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