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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하고 회사도 경영자도 변하므로 강약점과 기회·위협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유능한 경영자는 먼저 변화를 읽고 유리한 판을 만든다”


TV 프로야구 토크에서 강점·약점·기회·위협(SWOT) 분석을 봤다. 각 팀의 강약점과 기회·위협을 정리해서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TV 예능에서도 SWOT가 나왔다. 경영학이 대중의 삶에 친숙하게 자리 잡은 것인데 경영학 용어 몇 개 외워서 떠들면 전문가 대접 받던 시절과 달라진 모습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고 필요없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말만 많아서 돌팔이 지식 장사꾼이 등치기에 더 좋다. SWOT 분석의 이면에 숨은 경영자의 진짜 고민과 함께 얼치기 학자들이 대충 편 갈라 우겨댄 한심한 속사정도 알아보자.

◆150kg 체중, 씨름과 발레

제법 오래전 기업체 임원 세미나에서 겪은 일이다. 쉬는 시간에 보니 다른 과정의 팀별 과제를 얘기하고 있다. 2개의 팀으로 나누어서 회사의 강약점과 기회·위협을 찾은 후 함께 전략대안을 만들어 보는 과제라고 한다. 회사경력 20년이 넘은 분들이 헤매기에 물어보니 강약점과 기회·위협이 서로 엉켜서 힘들다고 한다. 엉터리 과제이고 여러분 생각이 맞다고 말했다가 이를 전해들은 운영팀이 난감해하던 기억이 있다.

강약점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체중이 많이 나가면 씨름에는 강점이고 발레에는 약점이다. 기회·위협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무사가 되려는 농민에게는 기회이고 가을걷이 준비하는 경우엔 위협이다. 강약점과 기회·위협이 엉킬 수밖에 없다. 경쟁자가 달라지면 강약점과 기회·위협도 전혀 다르게 정의된다. 시속 150km 빠른 볼은 국내 리그에선 강점이 되지만 강속구 투수가 많고 타자가 부족한 팀에선 트레이드 대상이다. 메이저리그에 가면 오히려 구속을 줄여 변화구와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어야 버틴다.

SWOT 분석으론 전략대안을 만들 수 없다. SWOT 분석은 고민과 실험을 통해 마련한 전략이 강약점과 기회·위협에 비춰 타당함을 보이고 더 살펴볼 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보완할지 토론하는 기초자료로 의미가 있다. 기회로 제시된 내용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강점은 언제까지 어떤 조건에서 유효한지 따져보는 데 쓰인다. 위협요인이 과연 받아들여야 할 제약조건인지 극복할 대상인지 판단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다.

현실의 경영자는 구상과 실험을 계속해서 전략을 만들어간다. K 사장은 ‘차(tea) 전문 카페’를 구상하고 있다. 차 한잔으로 일상의 작은 행복을 찾는 트렌드를 기회로, 유럽에서 경험한 다양한 차와 디저트, 인테리어 감각을 나름의 강점으로 삼는 전략이다. 그러나 원재료 수입선, 직원 고용, 주차단속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K 사장은 확보한 공간에 스터디 카페를 열고 저가의 커피와 차를 제공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차 한잔 주문하고 2~3시간 작업하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대안이다. 곳곳에 있는 카페, 사람들이 음료의 차이를 따지지 않는 점도 생각했다.

K 사장이 사업을 시작할 때 생각한 강약점과 기회·위협은 구체적인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바뀐다. ‘카공족’의 트렌드가 위협에서 기회가 되고 그들의 학업과 일상에 대한 이해가 강점이 된다. 교과서에 나오는 전략계획은 환경과 역량을 분석하고 전략대안을 도출해서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sequence)이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반복하며 답을 좁혀가는 순환과정(loop)이다.

◆경쟁전략과 핵심역량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산업 경제학의 틀을 활용한 ‘경쟁전략’으로 전략경영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 기존의 경영학, 특히 전략계획이 ‘XX 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반해 포터는 어떤 사업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포터의 산업분석은 SWOT에서 기회요인에 해당된다.

포터 이전에 SWOT 분석을 했던 사람들도 산업과 시장의 특성에서 기회를 찾았다. 1960~70년대 전략계획 자료에도 경쟁자의 능력이나 공급선의 위협요인을 검토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아둔한 학자들이 같은 얘기를 말만 바꿔서 ‘나는 다르다’고 떠들고 이에 짜증 난 사람들이 포터의 ‘돈 되는 사업’ 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포터의 경쟁전략은 기회가 없는, 안되는 사업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올 리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 ‘XX 잘하기’를 배우는 경영학은 별 쓸모가 없다. 아무리 좋은 사업도 능력이 없으면 허망할 뿐이라는 반론이 나오는데 그 대표적 예가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다. 기초적 기술과 이를 조합해서 구현하는 역량이 뿌리라면 이것이 튼튼해야 잎과 열매에 해당되는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이긴다는 해석이다.

기업 고유의 조직적 역량(organizational capability)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업활동을 구현하는 고유의 과정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본다. 포터의 제자들은 핵심역량을 나름의 틀로 재해석했는데 기업활동을 다양한 활동(activity)의 집합으로 해석하고 어디에 기업 고유의 차별적인 경쟁우위(competitive advantage)가 있는지 보이려 했다. 핵심역량, 고유의 조직적 역량, 경쟁우위는 모두 SWOT에서 강약점에 해당된다.

◆무작정 외워서 떠들면 망한다

경영자는 당연히 기회·위협을 강약점과 함께 생각한다. 상황 변화와 경쟁 여건에 따라서 다시 판단하고 구상과 실험을 통해 답을 만들고 수정한다. 그런데 산업과 시장의 기회를 중시하는 분들은 기업 고유의 사정과 경영자의 역할에 주목하지 않는다. 경제학 고유의 시각이다. 핵심역량, 조직적 역량을 주로 연구한다는 분들은 ‘자원준거이론(Resource Based View)’이라며 고유의 학문적 정체성을 주장한다. 학문적 배경이 다르니 따로 모여 일하고 그래서 더 멀어지니 더욱 남다름을 주장한다. 결국 쓸모없는 공허한 이론만 늘어난다.

현실의 경영자는 때론 기회에 몰입하고 다른 한편 능력에 천착한다. 비전(vision)이 현실적 구속요인을 넘어 미래를 그려본 것이라면 포터의 경쟁전략은 산업과 시장의 현실적 제약을 인정하면서 기회를 찾는다. 핵심역량, 조직적 역량은 기업과 경영자의 내부적 조건에 더 구속되는 개념이다. 어느 하나가 더 맞고 혹은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회·위협과 강약점을 따지면서도 더 멀리 가야 할 길도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세상이 변하고 회사도 경영자도 변하므로 강약점과 기회·위협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나의 강점이 알려지면 상대는 맞춰서 준비하니 계속 강점일 수도 없다. 유능한 경영자는 먼저 변화를 읽고 유리한 판을 만든다. 가솔린 엔진에서 최고를 따라잡기보다 전기자동차의 시대를 먼저 준비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병력에서 열세인 군대는 상대의 보급선을 끊어서 그들의 머리 수가 짐이 되게 만든다.

되는 사업에는 돈과 사람이 모인다. 사람을 조직에 묶어 놓을 수도 없고 돈이 많아도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돈을 노린 적대적 인수합병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조직적 역량을 강조하는 분들은 변화를 읽고 기회를 만드는 고유의 체제를 가장 본원적인 강점으로 본다.

핵심역량 외치며 한 우물만 파지 말고 다양한 실험적 시도로 기회를 만들라는 일시적 우위(transient advantage), 전략계획에 수정과 변화를 담으라는 애자일(agile) 경영도 눈앞의 강약점과 기회·위협에 그치지 말라는 얘기다. 무작정 외워서 떠들면 망한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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