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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진 감독의 '마부', 김기영 감독의 '하녀',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만추',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유현목 감독의 '순교자'와 '오발탄',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김수용 감독의 '안개' 등 한국영화는 1960년대까지 나름의 수작과 문제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월 유신' 이후 정부의 검열이 강화되면서 1970년대 한국 영화는 시들어갔습니다.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삼포 가는 길, 바보들의 행진, 겨울여자 등이 눈에 띄지만 한국영화는 1960년대와 같은 역동성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당국의 검열을 피하기 쉬운,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나 10대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하이틴 영화'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반공 영화'도 많이 제작됐습니다. 텔레비전 수상기 대량 보급으로 본격화된 'TV 시대'도 한국영화 쇠락에 한몫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1970년대와 80년대의 한국영화, 당시 이름으로 이른바 '방화(邦畵)'는 외국 영화보다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압도적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 할리우드 영화나 예술성 있는 유럽 영화가 훨씬 인기 있었습니다.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안성기와 김수철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영화 '고래사냥'에 출연한 안성기와 김수철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천재 아역'에서 '국민배우'로

배우 안성기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천재 아역'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출연한 영화가 70여 편에 이른다고 합니다. 1970년대 대학 진학과 군 복무 등을 하며 영화계를 떠났던 그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에서 주인공 '덕배' 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였습니다. 도시화와 개발의 시대, 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계층 갈등을 날카롭게 지적한, 사회 고발 성격이 강한 영화였습니다. 그는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역 배우가 성인 배우로 화려하게 귀환한 장면이었습니다.

다음 출연작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 해탈을 갈구하는 구도승 '법운' 역을 맡았습니다.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초청됐고, 제2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할 정도로 나라 밖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안성기는 어수룩한 상경 청년 '덕배'에서 '구도승'으로 완벽하게 변신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습니다. 그는 이후 '어둠의 자식들', '적도의 꽃', '안개마을',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등 소위 '사회성 짙은 영화'를 잇따라 선택했습니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의 시대, 배우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영화 '투캅스'의 안성기와 박중훈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영화 '투캅스'의 안성기와 박중훈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KMDb]

'배우' 안성기, 1980년대 한국영화를 이끌다

그의 얼굴을 처음 본 건 길거리 담벼락의 영화 포스터였던 것 같습니다. '만다라'. 흔히 '3류 극장'이라고 얘기했던 서울 변두리 '재개봉관'의 선전 포스터였을 겁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젊은 남자의 얼굴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흑백 포스터에 인쇄돼 있었습니다. 1981년에서 1982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는 신문 하단에 실렸던 영화 광고에도 심심치 않게 나왔습니다. 무릎과 무릎 사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어우동, 깊고 푸른 밤, 이장호의 외인구단, 겨울나그네, 내시, 황진이, 기쁜 우리 젊은 날, 달빛 사냥꾼, 칠수와 만수, 성공시대, 개그맨 등… 1980년대 이미 그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습니다. 헤아려 보니 1980년대 흥행작과 문제작에 그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출처: 씨네21]
영화 '남부군'의 한 장면 [출처: 씨네21]

1990~2000년대, 장르와 역할을 가리지 않다

1990년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개그맨, 남부군, 꿈,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베를린 리포트, 천국의 계단, 그대 안의 블루, 하얀전쟁, 투캅스, 태백산맥, 그 섬에 가고 싶다, 영원한 제국, 남자는 괴로워, 말미잘, 천재 선언, 헤어드레서, 축제, 박봉곤 가출사건, 퇴마록,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아름다운 시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코미디와 정치, 드라마, 역사, 판타지 등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도 킬리만자로, 무사, 취화선, 피아노 치는 대통령, 실미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묵공, 한반도, 라디오스타, 화려한 휴가, 마이 뉴 파트너, 신기전, 7광구, 부러진 화살, 타워, 찌라시: 위험한 소문, 신의 한 수, 화장, 사냥, 사자, 아들의 이름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 등에 큰 역, 작은 역을 마다하지 않고 출연했습니다.


안성기가 바꾼 한국영화의 '관행과 금기'

1980년대 무너진 한국영화 재건을 위해 애쓴 영화인들 맨 앞에 '배우 안성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는 당시 관행이었던 '겹치기 출연'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기 배우들은 여러 영화를 한꺼번에 찍는 '겹치기? 출연'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안성기는 한 편의 영화 촬영을 마치기 전에는 다른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집중력을 갖고 연기에 몰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안성기' 이후, 한국영화계에서는 '겹치기 출연' 관행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또 당시 '문제의식'을 갖고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장호, 배창호 등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 기꺼이 출연했습니다. 출연료나 대우보다는 영화 자체의 품질이나 밀도에 더 신경을 쓴 듯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성공시대', '개그맨',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와 같이 사회 고발성 요소가 진한 영화 출연을 거듭했고, '남부군', '하얀전쟁', '태백산맥' 등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라는 금기를 깨는 영화적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많은 영화를 찍은 만큼 맡은 역할도 다양했습니다. 상경 청년, 구도승, 공장 노동자, 윤락 여성의 기둥서방, 스토킹 범죄자, 시골 노총각, 소매치기 출신 택시 기사, 걸인, 자객, 미국 영주권을 노리는 비열한 남자, 야구 감독, 내시, 갖바치, 순진한 회사원, 뇌성마비 청년, 신문기자, 코미디언, 빨치산,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월남전 참전 병사, 비리 형사, 조선 시대의 왕, 한국전쟁 시기의 지식인, 헤어디자이너, 작가, 흥신소 대표, 가톨릭 사제, 킬러, 변호사, 국회의원 보좌관, 검사, 고려시대 무사, 조선 시대의 양반, 정보부대 준위, 도사, 가수 매니저, 대통령, 시민군, 석유시추선 선장, 해직 교수, 국회의원, 재야 바둑 고수, 임진왜란 당시의 무장 등 무수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한국영화 최초로 1천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 설치된 안성기 추모 공간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 설치된 안성기 추모 공간

'한국인'을 연기한 큰 배우, 큰 사람

배우 안성기의 연기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설픈 듯 단호했고, 연기라기보다는 얼굴과 몸에서 맡은 역할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목소리에는 맑음과 탁함이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누군가는 "배우 안성기는 70년 가까운 세월, 한국인을 연기했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맡았던 연기와 폭이 너무 다양하고 넓어 달리 표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적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한국영화는 '안성기 이전'과 '안성기 이후'로 나뉠지도 모르겠습니다. 1980년대 '방화 재건'에 앞장섰고, 1990년대 한국영화 산업화의 1등 항해사였으며, 2000년대 이후엔 영화계의 큰형님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배우이기 이전에, 그는 진실한 삶의 자세로도 유명했습니다. 40년 이상 유니세프 사업에 관련하며 친선대사로 활동했고, 영화계의 크고 작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는 '한국영화 지키기' 운동 선두에 섰고, 지난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직전에는 "지나치게 높은 배우들의 출연료가 영화 발전에 장애가 된다"며 출연료를 자진 삭감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큰 사람'이었습니다.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 씨가 지난 9일 장례미사 직후 故 안성기 씨의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있습니다.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 씨가 지난 9일 장례미사 직후 故 안성기 씨의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있습니다.

배우 안성기가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허전해졌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는 '국민배우'라고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출연작을 훑어보니 그는 그냥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아니라 '한국영화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인간으로 따뜻했고, 직업인으로선 철저했습니다. '큰 배우 안성기'가 한국 사회와 영화계에 남긴 유산이 앞으로 더욱 커지고 단단해지길 바랍니다. 그의 명복을 빕니다.




《뉴스인사이트팀 전영우 논설위원》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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