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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모어

하이난성, 러시아 방문객 11배 폭증
중·러 인적 교류, 역대 최대치 근접
항공 노선 전년비 57% 늘어
“결제 시스템·물가 경쟁력 확보"

중국 최남단 하이난성 산야의 한 호텔 연회장. 2026년 새해 전야를 앞두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간에 맞춰 잔을 부딪쳤다. 중국 현지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선 시각이었다. 이들은 러시아어로 고국 도시 이름을 연호하며 새해를 축하했다. 8일(현지시각)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뉴욕타임스(NYT)가 전한 러시아인들의 중국 관광 모습이다.

유럽 해변을 누비던 러시아 관광객들이 이제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서방 제재로 유럽행 하늘길이 막히고, 카드 결제마저 차단되자 러시아인들은 정치적 거부감이 없고, 물가가 저렴한 중국을 새로운 안식처로 삼는 양상이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의 싼야 국제 면세점. /연합뉴스
중국 하이난성 싼야의 싼야 국제 면세점. /연합뉴스

러시아 여권으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는 지난해 기준 116개국에 달한다. 190개국과 무비자 협정을 맺은 우리나라보다 적지만, 중국(85개국)이나 태국(82개국), 필리핀(67개국) 혹은 인도(58개국)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현실적 관광 장벽은 이들 국가보다 훨씬 높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연합(EU)은 러시아 항공기 영공 통과를 금지했다. 이후 러시아에서 EU 본토로 향하는 직항 노선들은 전부 사라졌다. 현재 러시아 국적으로 유럽 여행을 가려면 튀르키예나 아랍에미리트, 세르비아나 카자흐스탄 같은 비제재 국가를 거쳐 환승해야 한다.

입국 심사 문턱도 높아졌다. 과거처럼 한 번 비자를 받아 여러 차례 유럽을 오가는 방식이 막혔다. 결제 인프라도 발목을 잡았다. 비자카드를 포함한 글로벌 결제 수단이 러시아 내 운영을 중단하면서, 러시아에서 발급한 신용카드로는 해외 결제도 불가능해졌다. 사실상 관광 목적으로 서방 국가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번거로워졌다는 평가다.

중국 하이난성 싼야의 해변에서 춘절과 음력 설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 /연합뉴스
중국 하이난성 싼야의 해변에서 춘절과 음력 설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 /연합뉴스

이런 틈새를 중국이 파고들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러시아 일반 여권 소지자를 대상으로 30일 무비자 입국 시범 정책을 도입했다. 이에 화답하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같은 해 12월 중국인들이 비즈니스 목적으로 러시아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정책 효과는 즉각 수치로 나타났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26년 1월 1일부터 7일까지 러시아 국경에 인접한 헤이룽장성 수이펀허 항구를 통해 출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은 1만명이 넘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급증한 수치다.

항공편도 대폭 늘었다. 2025년 4월 한 달 동안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항공편은 1903편을 기록했다. 2024년 4월과 비교하면 57% 증가했다. 특히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휴양지인 하이난 산야는 2024년 방문객이 약 18만 명에 달해 직전보다 11배 폭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인들이 제재와 따가운 시선을 피해 산야의 해변으로 대거 피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인들이 중국은 가격 경쟁력에서 유럽을 압도한다. 러시아 루블화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전 1달러 당 75루블 선에서 거래됐다. 3년여가 지난 지금은 1달러에 120~135 루블을 오간다. 화폐 가치가 거의 반토막 난 상황에서 유럽 여행 비용은 러시아 중산층에게 큰 부담이다. 반면 중국은 직항 노선이 많아 항공료가 저렴하고 체류 비용도 유럽 절반 수준이다.

심리적 안정감도 무시 못 할 요소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중국은 환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산야 다둥하이 지역은 이미 러시아인 전용 상권이 형성될 정도로 현지화가 진행됐다. 이 지역 식당과 상점에는 러시아어 메뉴판과 간판이 즐비하다. 호텔 직원들은 러시아어 인사를 배우고,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육류 중심 식단과 보드카를 구비했다. 한 러시아 관광객은 NYT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유럽인들처럼 우리를 향해 침을 뱉지 않는다”며 “중국인은 지정학적 상황에 신경 쓰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고 전했다.

중국 헤이룽장성 쑤이펀허시 기차역에서 내린 러시아 관광객들이 일제히 호텔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헤이룽장성 쑤이펀허시 기차역에서 내린 러시아 관광객들이 일제히 호텔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와 인접한 중국 동북부 접경 지역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러시아인들은 접경지 헤이룽장성을 찾아 당일치기나 1박 2일 일정으로 쇼핑에 집중한다. 경제 제재로 러시아 현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가전제품, 의류, 자동차 부품 등을 대거 사간다. 식사 메뉴로는 중국식 만두인 샤오롱바오와 맥주를 즐기며, 중국 현지에서 생산한 저렴한 공산품을 대량으로 사간다. 그 덕에 과거 국경 무역과 소규모 관광에 의존하던 빈약한 지역 경제는 단기 쇼핑과 관광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단순한 관광 수요 증가를 넘어 양국 경제 밀착을 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는 유럽 대신 아시아를 향한 ‘동방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러시아 큰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중이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는 환승 관광과 친지 방문 수요까지 겹치며 러시아인 방문객이 꾸준히 늘어는 추세다.

파벨 키파리소프 러시아·중국 상공회의소 회장은 차이나데일리 인터뷰에서 “무비자 정책은 두 나라 사이 높은 상호 신뢰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전통적인 무역을 넘어 심층적인 기술·산업 협력으로 전환하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측은 올해 두 나라 사이 무역량과 인적 교류가 늘어나면 합작 투자법인 설립 건수도 함께 뛸 것으로 예측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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