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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그레이스 M. 조 '유령 연구'
2023년 1월 16일 경기 파주시 캠프 하우즈 미군기지 부지와 인근 기지촌 모습. 이한호 기자
2023년 1월 16일 경기 파주시 캠프 하우즈 미군기지 부지와 인근 기지촌 모습. 이한호 기자


#. 꿈자리가 연신 사납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팍을 치는 장면이 반복된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냐"고 거듭 여쭤도 생전 그러셨던 것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만 중얼거리신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 없어 무당을 찾았더니 "한을 풀지 못해 자식들 꿈에 나오시는 게야"라고 말한다.


국내 문학작품이라면 이런 식의 서사는 한 가정에 얽힌 사연의 연원을 추적하고 마주하는 방식으로써 우리에게 제법 익숙하다. 한국계 미국인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가 쓴 '유령 연구'가 다루는 이야기는 일면 이와 유사하지만, 스토리텔링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역사학적 독해의 재료로 쓰인다. 이 책을 거칠게 규정하자면 한국 근현대사의 광풍 속에 은폐된 수난의 역사가 어떻게 개인적 트라우마로 굳어지고 대를 이어 무의식에 자리 잡는지 그 흐름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가 주목한 대상은 '양공주', 바로 자신의 어머니다. 미국 상선원 남편을 따라 1970년대 미국에 정착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가족사에서 출발해 ①기지촌 성노동자가 한미 양국에서 '유령' 취급을 받게 된 구조를 짚는다. 한국 가부장제 규범하에선 '오염된 여성'으로 지워지고, 미국에선 ‘군사화된 폭력’의 증인으로 삭제됐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괴담에 의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유령처럼 ②'양공주'가 타자로부터 프레이밍된 역사도 헤집는다. 기지촌에서 살해당한 이는 윤금이가 처음이 아니었음에도 '반미 민족주의적' 관점이 덧씌워지면서 "체제 저항적인 순교자의 지위"를 갖게 된 일이나, 주류 사회학이 '미군 신부'를 위시한 한국계 미국인들을 '성공적으로 동화된 명예 백인'으로 상정하는 것에 저자는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다만 전술했듯 저자의 목표는 전통적 논증 방식으로 '양공주'를 개념화하는 것보다는, 이들의 트라우마가 '유령이 배회'하듯 대물림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다. 특히 이들에 대한 객관적 자료가 빈약하고 당사자들 기억조차 왜곡된 상황에서, 저자는 구술사와 자신의 개인적 경험, 픽션을 뒤섞은 삽화(揷話)를 중간중간 들려주는 것으로 '트라우마란 무엇인지'를 독자에게 느끼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책을 펼친 이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그래서 도대체 저자의 가족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말미에 간략히만 서술된다. 그레이스 조가 모친의 생애와 가족사를 회고록 형식으로 쓴 '전쟁 같은 맛'이 '유령 연구' 이후에 출간된 점을 고려해보면, 저자가 의도적으로 ③이 책 전체를 통해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트라우마를 재현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④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조현병을 트라우마를 독해할 수 있는 단서로 보고자 한다. 환각·환청을 병리적 증상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감춰진 과거의 기억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비록 저자가 해석의 구체적 틀까지 제시하진 않았으나 "비밀에 부쳐진 말을 발화하는 행위는 무의식을 해방시킨다"는 그의 관점에 따르면 주요한 인식의 전환이다.

유령 연구·그레이스 M. 조 지음·동녘 발행·396쪽·2만5,000원
유령 연구·그레이스 M. 조 지음·동녘 발행·396쪽·2만5,000원


그레이스 조는 책 중간중간에서 6·25전쟁의 그림자가 어머니 세대의 기지촌 성노동자에게 국한되지 않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한국인 양공주'가 떠난 자리를 필리핀 러시아 중국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선 한국에 마지막으로 남은 성병관리소 철거를 둘러싼 여성인권단체와 지방자치단체의 갈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제기는 한국사회가 또 다른 유령의 출현을 막기 위해 갖춰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기지촌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예술흥행비자(E-6) 발급을 통해 이들에 대한 성착취를 묵인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한국이 제3세계 여성을 상대로 구조적 폭력을 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오명으로 굳어질지 누명으로 밝혀질지 지켜봐야 할 문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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