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자금 끌어들인 빅테크
FT “SPV 세워 데이터센터 투자금 조달”
보이지 않는 빚…AI 수요 꺾이면 연쇄 충격 우려
인공지능(AI)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특수목적법인(SPV)을 활용해 1200억달러(약 170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재무재표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빅테크는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는 등 빚을 내면서까지 AI 데이터센터, 고성능 반도체, 클라우드 설비 등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런 비용이 재무재표상 부채로 잡히지 않도록 월가 투자은행과 운용사를 동원한 것이다. 월가와 빅테크가 자금 조달로 얽히면서 향후 AI 수요가 감소하거나 AI 거품이 터질 경우 그 충격이 테크 업계를 넘어 미국 금융업계에도 확산할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 메타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AI 스타트업 xAI, 오라클, 데이터센터 운영사 코어위브가 이런 복잡한 금융 거래를 활용해 AI 투자 관련 부채를 재무제표 밖으로 이전했다고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이 SPV를 만들면 핌코, 블랙록, 아폴로, 블루아울, JP모건 등 월가 금융사들이 이들 SPV가 발행한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재무제표 외 금융 거래(off-balance-sheet financing deals)는 기업의 재무재표상 실적도 실제보다 좋아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빅테크 입장에서는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AI 투자 위험을 숨기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또 향후 AI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 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미국 금융계도 확산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월가 한 고위 임원은 FT에 “18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데이터센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가 SPV로 흘러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고 말했다.
FT가 자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오라클이 이런 복잡한 금융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오라클은 SPV를 통해 AI 관련 자금 660억달러(약 96조원)를 차입했다. 오라클은 블루아울, 밴티지, 크루소, 릴레이티드 디지털 등 건설사·금융사와 협력해 미국 텍사스, 위스콘신, 뉴멕시코 등에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들 데이터센터는 각 SPV가 소유하고, 오라클은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방식이다.
돈을 빌려준 투자자는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하면 데이터센터 부지, 설비, 반도체 등 실물 자산에 대해서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시설 관리 주체인 오라클에는 상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FT는 설명했다.
메타는 지난 10월 루이지애나주에 지을 예정인 하이페리온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베녜 인베스터(Beignet Investor)’라는 SPV를 설립했다. 이 SPV는 핌코, 블랙록, 아폴로 등으로부터 270억달러의 대출을 받았고, 30억달러는 블루 아울의 자기자본으로 조달해 총 300억달러(약 44조원)를 조달했다. 메타가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해 사실상 300억달러를 차입했지만, SPV를 통한 거래 덕에 해당 부채는 당장 재무재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xAI도 별도 SPV를 거쳐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매에 필요한 200억달러(약 29조원)를 마련했고, 코어위브는 오픈AI와의 계약 이행 자금을 위해 SPV를 통해 26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빌렸다.
AI 붐을 타고 등장한 새로운 형식의 차입은 관련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위험도 크다고 FT는 평가했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빅테크 사모대출 시장에서 빌린 자금은 약 4500억달러(약 650조원)로, 1년 전보다 1000억달러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만 1250억달러(약 181조원)가 데이터센터 건립과 같은 인프라 장기금융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유입됐다고 UBS는 분석했다.
FT는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은 약 1조70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한 사모대출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이 시장은 자산 가치 상승, 유동성 부족, 차입자 집중 등의 리스크로 점철됐다”고 전했다. 또 “당장은 빅테크의 재무 여력과 신용등급이 탄탄해 위험 부담이 크진 않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V 부채가 동시에 확산하면 금융시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복수의 AI 회사들이 SPV로 차입을 할 경우 작은 시장 충격도 사모대출펀드로 동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AI 투자 붐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등 소수 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개별 회사의 부진이 업계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오픈AI만 해도 1조4000억달러가 넘는 장기 컴퓨팅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를 비롯한 AI 기업은 AI 관련 전력난, 규제 변화, 핵심 담보 자산인 AI 칩의 빠른 노후화 등의 불확실성에도 직면했다.
데이터센터 금융 거래에 정통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FT에 “사모 대출 시장에는 이미 위험한 대출과 잠재적 신용 위험이 쌓여 있다”며 “여기에 AI 투자 관련 불확실성 대출의 부실화라는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향후 몇 년간 매우 흥미롭고도 걱정스러운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빅테크가 SPV 부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은 데이터센터 건립과 확충을 위해 내부 현금을 쓰거나 직접 돈을 빌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FT “SPV 세워 데이터센터 투자금 조달”
보이지 않는 빚…AI 수요 꺾이면 연쇄 충격 우려
아일랜드 클로니 소재 메타 데이터센터. / 메타 제공
인공지능(AI)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특수목적법인(SPV)을 활용해 1200억달러(약 170조원)에 달하는 부채가 재무재표에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빅테크는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는 등 빚을 내면서까지 AI 데이터센터, 고성능 반도체, 클라우드 설비 등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런 비용이 재무재표상 부채로 잡히지 않도록 월가 투자은행과 운용사를 동원한 것이다. 월가와 빅테크가 자금 조달로 얽히면서 향후 AI 수요가 감소하거나 AI 거품이 터질 경우 그 충격이 테크 업계를 넘어 미국 금융업계에도 확산할 클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모회사 메타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AI 스타트업 xAI, 오라클, 데이터센터 운영사 코어위브가 이런 복잡한 금융 거래를 활용해 AI 투자 관련 부채를 재무제표 밖으로 이전했다고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이 SPV를 만들면 핌코, 블랙록, 아폴로, 블루아울, JP모건 등 월가 금융사들이 이들 SPV가 발행한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런 재무제표 외 금융 거래(off-balance-sheet financing deals)는 기업의 재무재표상 실적도 실제보다 좋아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어 빅테크 입장에서는 신용등급 하락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AI 투자 위험을 숨기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또 향후 AI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을 겪을 경우 이 위기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미국 금융계도 확산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월가 한 고위 임원은 FT에 “18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데이터센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수백억 달러가 SPV로 흘러 들어가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고 말했다.
FT가 자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오라클이 이런 복잡한 금융 구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오라클은 SPV를 통해 AI 관련 자금 660억달러(약 96조원)를 차입했다. 오라클은 블루아울, 밴티지, 크루소, 릴레이티드 디지털 등 건설사·금융사와 협력해 미국 텍사스, 위스콘신, 뉴멕시코 등에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들 데이터센터는 각 SPV가 소유하고, 오라클은 데이터센터를 임대하는 방식이다.
돈을 빌려준 투자자는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하면 데이터센터 부지, 설비, 반도체 등 실물 자산에 대해서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시설 관리 주체인 오라클에는 상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FT는 설명했다.
메타는 지난 10월 루이지애나주에 지을 예정인 하이페리온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베녜 인베스터(Beignet Investor)’라는 SPV를 설립했다. 이 SPV는 핌코, 블랙록, 아폴로 등으로부터 270억달러의 대출을 받았고, 30억달러는 블루 아울의 자기자본으로 조달해 총 300억달러(약 44조원)를 조달했다. 메타가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해 사실상 300억달러를 차입했지만, SPV를 통한 거래 덕에 해당 부채는 당장 재무재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xAI도 별도 SPV를 거쳐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매에 필요한 200억달러(약 29조원)를 마련했고, 코어위브는 오픈AI와의 계약 이행 자금을 위해 SPV를 통해 26억달러(약 3조7000억원)를 빌렸다.
AI 붐을 타고 등장한 새로운 형식의 차입은 관련 수요가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위험도 크다고 FT는 평가했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올해 초 기준 빅테크 사모대출 시장에서 빌린 자금은 약 4500억달러(약 650조원)로, 1년 전보다 1000억달러 증가했다. 올해 들어서만 1250억달러(약 181조원)가 데이터센터 건립과 같은 인프라 장기금융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유입됐다고 UBS는 분석했다.
FT는 “빅테크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은 약 1조7000억달러 규모로 급성장한 사모대출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이 시장은 자산 가치 상승, 유동성 부족, 차입자 집중 등의 리스크로 점철됐다”고 전했다. 또 “당장은 빅테크의 재무 여력과 신용등급이 탄탄해 위험 부담이 크진 않지만, 상황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V 부채가 동시에 확산하면 금융시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복수의 AI 회사들이 SPV로 차입을 할 경우 작은 시장 충격도 사모대출펀드로 동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AI 투자 붐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등 소수 기업이 주도하고 있어 개별 회사의 부진이 업계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오픈AI만 해도 1조4000억달러가 넘는 장기 컴퓨팅 계약을 체결했다. 오픈AI를 비롯한 AI 기업은 AI 관련 전력난, 규제 변화, 핵심 담보 자산인 AI 칩의 빠른 노후화 등의 불확실성에도 직면했다.
데이터센터 금융 거래에 정통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FT에 “사모 대출 시장에는 이미 위험한 대출과 잠재적 신용 위험이 쌓여 있다”며 “여기에 AI 투자 관련 불확실성 대출의 부실화라는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향후 몇 년간 매우 흥미롭고도 걱정스러운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모든 빅테크가 SPV 부채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은 데이터센터 건립과 확충을 위해 내부 현금을 쓰거나 직접 돈을 빌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