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버섯 핀 얼굴의 연쇄살인마 고현정
감정 폭발 이영애, 추격·액션 소화도
"중년에도 스펙트럼 넓히는 두 배우,
자극적 장르물 일색 선택은 아쉬워"
감정 폭발 이영애, 추격·액션 소화도
"중년에도 스펙트럼 넓히는 두 배우,
자극적 장르물 일색 선택은 아쉬워"
고현정 주연의 SBS 드라마 '사마귀'와 이영애 주연의 KBS 드라마 '은수 좋은 날'의 캐릭터 포스터. SBS·KBS 제공
남자 다섯을 죽인 연쇄살인범, 마약 판매상이 된 가정주부.
1971년생 동갑내기 톱배우 고현정과 이영애가 4년 만에 나란히 안방극장을 두드린다. 오랜만의 지상파 복귀인 데다, 두 사람 모두
‘범죄자이면서 엄마’로 이중적 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연기
한다는 점이 똑 닮았다.연쇄살인마 '사마귀'로 변신한 고현정
고현정은 지난 5일 첫 방송된 SBS 금토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에서 연쇄살인마 정이신으로 서늘하게 변신했다. SBS 드라마 출연은 2018년 ‘리턴’ 이후 7년 만이다. 이신은 여성과 아동에게 범죄를 저지른 남성 5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교미 후 수컷의 머리를 먹는 곤충인 '사마귀' 별칭을 얻은 인물이다. 잡힌 지 23년이 지나 모방 범죄가 발생하자, 교도소 밖 비밀 수감 시설에 머무르며 형사인 아들과 공조 수사를 하게 된다. 애틋한 모자 상봉은 없다. 이신은 살인의 기억을 떠올리며 황홀해하고, 아들을 돕는 건지 이용하려는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드라마 '사마귀'에서 연쇄살인범 정이신을 연기하는 고현정. SBS 제공
“고현정이 맡으면 상상해 본 적 없는 얼굴이 나올 것 같았다”는 변영주 감독의 말처럼 이신은 고현정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파격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2년 전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서 살인을 저질러 교도소에 갇힌 김모미 역을 선보인 적 있지만, 한 역할을 세 배우가 나눠 맡아 분량이 크지 않았다. 고현정은 “눈빛과 표정으로 진심을 전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시청자가 의심의 늪에 빠질 수 있도록 이신만의 미묘한 지점을 짚어내려 했다
”며 “외형적 꾸밈도 최대한 덜어내고, 오래 수감되어 있던 사형수 설정에 맞게 검버섯과 주름 등 분장도 더했다”고 설명했다.'이영애스럽지 않은' 은수 좋은 날
이영애는 20일 시작되는 KBS2 토일 미니시리즈 ‘은수 좋은 날’로 1999년 ‘초대’ 이후 26년 만에 KBS 드라마 주연을 맡는다. 그는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였던 강은수 역으로, 남편의 병세 악화와 경제적 위기 속 우연히 손에 넣은 가방을 계기로 마약 유통이라는 금기의 세계로 빠져든다. 범죄 심리극에 '마약' 키워드까지 더해진 점에서 KBS 주말극으로는 이례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드라마 '은수 좋은 날'에서 마약 유통이라는 금기의 세계에 발 들이는 가정주부 강은수로 분한 이영애. KBS 제공
은수는 초반 담백한 엄마의 모습으로 그려지다 점점 내적 갈등과 체념, 공포 등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이영애는 “가정 안에서 사랑과 행복을 찾는 평범한 꿈이 있기에 은수의 변화 과정이 설득력 있다”며 “잔잔하던 은수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으면 한다”고 했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추격·액션 장면도 선보인다.스펙트럼 넓힌 연기 반갑지만... "장르물 일색 아쉬워"
두 배우는
2021년 하반기에도 비슷한 시기 다른 드라마로 선의의 경쟁
을 펼쳤다. 고현정은 JTBC ‘너를 닮은 사람’, 이영애는 같은 방송사의 ‘구경이’에서 각각 주연을 맡았다. 최고 시청률이 2~3%대에 머물렀던 그때보다 이번엔 시청자 기대감이 더 크다. 먼저 방송을 시작한 사마귀는 2회 만에 수도권 기준 시청률 7.3%, 순간 최고 시청률 10%로 일찌감치 상승 곡선을 탔다.과거 여배우는 중년에 접어들며 ‘주인공 엄마’로 비중이 줄고, 연기 또한 주변적 모성을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두 배우는
‘엄마’ 캐릭터에 또 다른 서사와 이미지를 덧대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영향력이 커지면서 드라마 업계의 장르적 실험이 활성화한 것과도 타이밍 좋게 맞물렸다.도전의 방향이 범죄·스릴러 등 장르물에만 기우는 건 아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다양한 역할을 포용하는 모습이 반갑지만, 계속 변신을 추구하다 보면 자극적인 방향으로 가기 쉽다”며 “연기를 더할 나위 없이 잘하는 두 배우가 최근의 콘텐츠 트렌드만 따라가기보다 보다 일상에서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도 폭넓게 선택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