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와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풀어사이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13~14일 일본 나라(奈良)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정상 회담을 갖는다. 취임 후 첫 일본 방문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에 이어 중국의 대일 희토류 수출 통제로 중·일 관계가 날로 악화하는 가운데 한·일 정상이 만나는 만큼 국제 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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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닌 '안방'으로 초대한 다카이치
정상회담이 열리는 나라는 일본의 고도(古都)이자 다카이치 총리의 출신지다. 다카이치는 1993년 총선 때 이곳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래 지금까지 10선을 했다. 말하자면 자신의 '안방'으로 초대한 셈이다.
국제 사회에서 이처럼 정상회담 장소로 수도 대신 '안방'을 선택하는 것이 전례 없는 일은 아니다.
10년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도 2016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지역구인 야마구치(山口)현 나가토(長門)에서 열었다. 또, 시진핑 주석은 2015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베이징(北京)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시안(西安)으로 초대했다.
외교가에선 이런 '안방' 초대가 상대 정상에 대해 친밀감이나 특별 대우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아베 전 총리는 2023년 출간된 회고록에서 "식당이 아니라 집으로 초대를 하면 상대 측에선 '마음을 얻었다'고 느낀다"며 "푸틴 대통령을 내 본적지이자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나가토로 부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아베 신조, 시진핑, 베냐민 네타냐후 등 각국 정상과의 만남을 백악관 대신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별장 마러라고에서 가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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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이 함께 만든 도다이지(東大寺)
나라시의 사찰 도다이지(東大寺)에서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 중앙포토
그런 가운데 또 다른 관심사는 정상회담 장소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나라의 고찰 도다이지(東大寺)를 유력 후보로 꼽고 있다. 나라 시대(710~794)라 불리던 8세기에 일본의 수도였던 나라에는 불교 문화 관련 문화재가 많이 조성됐는데, 이 중에서도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도다이지다. 도다이지는 쇼무(聖武) 천왕 때 건립된 거대 사찰인데, 특히 대형 대불전과 이곳에 앉혀진 16m의 거대 청동대불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회담 장소로 도다이지가 거론되는 건 유명 문화재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도다이지는 백제계 도래인(渡來人)과 관계가 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도래인은 고대에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기술과 문화를 전파한 사람들을 뜻한다.
실제로 한일 학계에선 도다이지의 건립, 특히 청동대불 조성은 백제계 도래인들이 맡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자료가 12세기 편찬된 『도다이지 요록(東大寺要錄)』이다. 이 책에는 도다이지와 청동대불 조성 관련 기록들이 수록됐는데, 특히 "대불사(大佛師) 종4위하 쿠니나카노 키미마로(國中公麿)는… 본래 백제국(百濟國) 사람이다.(大佛師從四位下國中公麿者, 元百濟國人)"라는 대목이 주목을 받았다.
대불사(大佛師)는 대불 제작의 총책임자, 종4위하는 당시의 품계(신분)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문장은 '대불 제작을 지휘했던 종4위하 쿠니나카노 키미마로가 백제 출신'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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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제인이 만들었을까
도다이지 청동 대불(왼쪽)과 하단 연꽃잎에 그려진 조각(오른쪽)
도다이지가 건립된 745년(학계 추정)은 백제가 멸망(660)하고 수십 년이 지난 때였다. 나라를 잃은 상당수의 백제인들은 배를 타고 일본으로 이주했다. 송완범 고려대 교수는 논문 「나라 시대(奈良時代)의 '백제왕(‘百濟王)씨' 사회와 문화적 성격」에서 "도래인 집단은 기술계, 지식계, 토목계 등의 직능 집단으로 분류됐다"며 당시 백제계 출신들이 일본 사회에서 고급 기술자 집단으로 활동했다고 설명한다. 이들 다수가 정착한 곳은 나니와(難波 ·지금의 오사카)였다. 도다이지 건립 자금을 시주 받는 권진(勸進)을 맡았던 승려 교기(行基)도 나니와에서 668년 태어났다. 교기는 백제 왕인 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또, 도다이지의 불상에 입힐 황금 900냥을 조정에 바친 쿠다라노고니키시 교후쿠(百濟王敬福)도 백제계 출신이다. 무쓰(陸奥)의 지방관이던 그는 백제계 주금 장인들을 동원해 황금을 캤다고 한다.
그가 백제 출신이라는 것은 이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쿠다라노고니키시 교후쿠의 성(姓) '쿠다라노고니키시(百濟王)'를 우리식으로 독음하면 백제왕(百濟王)', 이름 교후쿠(敬福)는 경복이다. 즉, '백제왕 경복'이 된다. '쿠다라'는 당시 일본인들이 백제를 부르는 명칭이었다. 815년 일본에서 편찬된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 따르면 백제왕(百濟王)씨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선광(扶餘善光)이 귀화하면서 691년 일본 조정으로부터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최은영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논문(「도다이지(東大寺)를 통해 본 고대 일본 속의 백제계 도왜인(渡倭人)-백제왕 경복(百濟王 敬福)의 황금 헌상을 중심으로」)을 통해 '이때의 황금은 일본 최초로 산출된 황금으로, 도다이지 대불 도금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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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역사 외교' 세일즈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7일 오후 상하이(上海市) 임시정부청사 기념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100년 기념식에서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시진핑 주석은 6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옳은 편에 서서 올바른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시 주석은 "80여년 전 한국과 중국은 큰 민족적 희생을 치르고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면서 "오늘날 더욱 손잡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 성과를 지키고 동북아 평화·안정을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7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건물을 방문한 데 대해서도 "임정 청사는 항일전쟁 시기 한·중 국민들이 서로를 힘껏 도왔던 역사적 우의의 증거이며, 오늘날 양국이 더욱 손을 맞잡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결과를 지켜야 한다"(중국 국제문제연구원의 양시위 연구원)는 반응을 내놨다.
사실상 역사를 매개로 중·일 갈등에서 한국이 중국과 연대해 줄 것을 제안하면서, 최소한 한·미·일 3각 연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시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이 근현대사로 공세를 펴자, 일본은 백제와 일본의 협력을 상징하는 '도다이지' 카드를 통해 고대사로 맞불을 놓은 셈이 됐다. 당나라(중국)에 의해 멸망한 백제계 이주민들과 일본 정부가 함께 쌓아 올린 도다이지를 무대로 한·일 정상이 만남을 갖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