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으로 칭하겠습니다." (1차 공판기일, 검찰 공소사실 발표) 검찰총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지낸 윤석열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로 대통령에서 파면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 윤 전 대통령의 재판을 따라가 봅니다. |
지난 8일 내란 혐의 결심공판에 출석한 피고인 8명과 변호인들
1996년 내란 수괴 등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게 사형이 구형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약 30년 만인 지난 8일, 같은 장소에서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고려해 평소보다 40분 일찍 시작된 재판은 자정을 넘겨서야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특검팀의 구형과 윤 전 대통령의 최후진술은 시작도 못 했습니다.
지난 5일, 내란 혐의 재판에서 지귀연 재판장이 김용현 전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에게 발언하고 있다
■ '일침' 지귀연 "프로는 징징대지 않아"…김용현 측 변론만 8시간이날 결심공판은 특검팀과 변호인들이 추가로 제출한 서류 증거에 대한 조사(서증조사), 특검팀의 최종의견과 구형, 피고인들의 최후진술 순으로 진행될 계획이었습니다.
결심은 시작부터 삐걱댔습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이 서증조사 자료 복사본이 부족해 기다려달라고 요청했고, 특검팀은 "준비가 된 피고인부터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김 전 장관 측은 "그럼 자료 없이 구두로 변론하겠다"고 맞섰고, 특검팀은 "저희는 어제 먼저 시나리오부터 제출했다"며 "준비를 해왔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결국 재판부가 나섰습니다. 지귀연 재판장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징징대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준비가 안 됐으면 (특검팀에) 양해를 구한다고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이 "하루 동안 준비한 것이다. 저희가 징징댄 건가"라며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반문했습니다. 지 재판장은 "그 말씀이 징징대는 것이죠. 이해하기 힘든 게, 말할 기회 드린다고 전날 기일 한 번 더 드린다고 했는데 그건 다 거절하셨잖아요"라며 "오늘 끝나는 일정이니까 프로답게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시면 된다"고 재차 지적했습니다.
| 지귀연(내란우두머리혐의 재판장)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프로는 징징대지 않는다는 겁니다. 준비가 안 됐으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해야죠"(1월 9일) "남의 말 막으시는 분들이 무슨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이야기합니까?"(1월 5일) |
김용현 전 장관 측이 특검팀과 재판부 사이 대화에 재차 끼어들자, 여러차례 제지하던 지귀연 부장판사는 "재판부는 계속 같은 이야기 했어요. 아까 민주주의 자유주의 실컷 이야기했잖아요. 남의 말 막으시는 분들이 무슨 민주주의 자유주의를 이야기합니까?"라며 이례적으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이에 김 전 장관 측은 "결례했다면 용서해 주시는데 이건 전략적 윽박이라 부득이 말씀드렸다"고 설명했습니다.
■ 비상계엄 = 마두로 체포 작전?
김 전 장관 측은 수백 쪽 분량의 서류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씩 릴레이로 의견 진술을 이어간 변호인단.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5시 40분쯤까지, '1차로' 의견을 밝히는 데만 약 8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의 '호칭'을 또다시 문제 삼았습니다.
특검팀이 윤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 부르는 것을 두고 "변호인과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며 "호칭마저 가볍게 부르는 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검사들이 얼마나 권력을 이용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엄 선포 조건을 충족하는지 여부는 대통령이 판단하는 것이며, 검찰에겐 권한이 없단 기존 주장도 반복했습니다. 김 전 장관 측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검사들이 훔쳐 갔다"며 "특검의 특수 절도"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비상계엄을 미국의 '마두로 체포 작전'에 빗대기도 했습니다.
"마두로를 체포하기 위한 군사 작전은 대통령의 고유한 통치 권한이라 사법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검사들이 하는 수사는 그런 경우에 명령을 거부하라는 것인데, 그러면 작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8일 결심공판에서 증거 의견을 밝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이하상 변호사
■김용현 측 "빨리하면 말 꼬여"…"尹과 한 팀" 발언도김 전 장관 측의 이런 '필리버스터식' 변론이 이어지는 동안, 재판부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4시쯤이 돼서야 "5시까지 하고 다른 피고인들 증거조사를 진행한 뒤 다시 돌아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여기 반발한 건 김 전 장관 측이 아닌 윤 전 대통령 측이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검찰에서 서증조사를 7시간 반을 했는데, 모든 피고인이 7시간 반씩 걸린다고 생각한다"며 "다른 피고인들의 변론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휴정 중에 김 전 장관 측은 박억수 특검보에게 "그냥 다음 주에 (추가로) 하자"고 말하자 박 특검보가 "그쪽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게 아니냐" 따졌습니다. 김 전 장관 측이 여기에 "(윤 전 대통령 측과) 한 팀이잖아요"라고 응수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조지호 전 경찰청장(1시간)-윤승영 전 국가수사본부 수사조정기획관(1시간)-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20분) 순으로 서증조사를 이어간 뒤, 다시 김 전 장관 측 조사가 이어졌습니다.
밤 9시를 넘기자 특검팀은 "읽는 속도만 조금 빨리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요청했습니다. 여기에 김 전 장관 측은 "제가 빨리하면 혀가 짧아서 말이 꼬인다"고 받아쳤습니다.
■尹 구형 13일로 연기…'반쪽' 된 결심공판
피고인석에 앉은 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은 고개를 떨군 채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암 투병 중인 조 전 청장은 재판 중간 법정 밖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밤 9시 10분쯤 '추가 기일을 잡을지 여부를 논의하겠다'며 휴정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여름 무렵부터 원래 12월 말경에는 종결한다고 했다"며 "될 수 있으면 이렇게 모인 김에 종결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측은 "지금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윤석열 대통령의 변론을 모두 비몽사몽인 상황에서 하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재판부는 "새벽까지 사람을 가둬놓고 강제로 조사하는 것과 다름없어, 재판부에서도 원하는 게 아니다"라며 오는 13일 한 차례 더 기일을 잡아 결심공판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 기일에는 무조건 종결하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한다"며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끝내야 된다"고 못 박았습니다. 이날 재판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50분)-김용군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대장(50분)의 서증조사를 끝으로 밤 12시 10분쯤 마무리됐습니다.
조은석 내란 특검은 결심공판 전날인 지난 8일, 수사에 참여한 특검보들과 부장 검사들을 소집해 6시간에 걸쳐 구형량을 정하는 회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초유의 '필리버스터식 변론'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결심 절차는 시작도 못 한 채 무산됐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내란 혐의 재판에서 김용현 전 장관에게 직접 질의하고 있다
■ '남 탓' 윤석열 "아무도 안 말려 답답…오히려 발목 잡혔다고나 할까?"| 윤석열 전 대통령 (1월 5일 내란우두머리혐의 재판) "좀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오히려 대통령에게 외교니 민생이 어쩌니 이야기할 게 아니라, 계엄 선포해 봤자 이거 하루이틀이면 야당이 달려들어서 계엄 해제할 텐데, 그러면 대통령님만 그야말로 좀 유세 떠는 게 되고, 좀 창피스러울 수 있고 오히려 야당한테 막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사실은 나도 좀 기대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 |
윤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열린 내란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김용현 전 장관에게 "당시 여소야대가 심하고 또 야당이 기세가 등등하니 계엄이 오래갈 수 있나 상식적으로 충분히 관저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않았나?"라며 직접 질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무회의 때 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와가지고 사실은 좀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오히려 대통령에게 외교니 민생이 어쩌니 이야기할 게 아니라, 계엄 선포해 봤자 이거 하루이틀이면 야당이 달려들어서 계엄 해제할 텐데, 그러면 대통령님만 그야말로 좀 유세 떠는 게 되고, 좀 창피스러울 수 있고 오히려 야당에 막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를 사실은 나도 좀 기대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이야"라며 계엄 날 국무위원들이 자신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고 나무랐습니다.
김 전 장관을 향해서는 "증인은 나하고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우리 관저에서. 그 옆에 총리나 장관들 그런 얘기를 안 꺼내는 거 보고 좀 답답해하지 않았어요?"하고 물었고, 김 전 장관은 "네 아무도 그런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하고 화답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은 이어 "총리나 외교부 장관이 차라리 '국회 민주당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거 금방 해제될 텐데 이런 거 뭐 하려 합니까' 이런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고 경제가 어떻고 민생이 어떻게 이런 소리를 계속하기 때문에 그 말 상대하고 대꾸해 주느냐고 나머지 국무위원에 대해 연락하는 시간이 좀 지체된 것 맞지 않느냐"며, "오히려 나를 설득하는 이 사람들한테 좀 발목이 잡혔다고나 할까?"라고 또다시 책임을 넘기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19일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김용현 장관이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꽃 등에 군을 보내야 한다고 보고해서, 제가 절대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지난해 10월 30일 자신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에게 "질서유지 하러 그냥 국회에 들어갔다는 게 머릿속에 있는 거네?"라며 자신이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이유가 국회의원 체포가 아닌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곽 전 사령관은 "말씀하시는 질서 유지는 도저히 제가 수긍할 수가 없고 질서 유지, 시민 보호라는 말 제차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13일엔 '사형' 혹은 '무기징역' 구형될까
결심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보강된 공소장 변경을 허가했습니다. '노상원 수첩' 등이 추가로 포함됐는데, '방어권이 침해된다'는 윤 전 대통령 측의 거센 반발에도 재판부가 이를 인정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구형과 최후진술이 이루어지는 결심은 오는 13일 오전 9시 30분 진행됩니다. 이날 재판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선고는 예정대로 2월 중순쯤 이뤄질 전망입니다.
오는 16일에는 윤 전 대통령의 '공수처 체포 방해 혐의' 재판 1심 선고도 이루어집니다.
[화면 제공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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