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로마 ‘리비어 구리 공장’에 구리 박판이 놓여있다. 게티이미지
핵심 원자재인 구리 가격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3일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해 말 구리 가격은 t당 1만2000달러(약 1600만원)를 넘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2024년 말만 해도 구리 가격은 약 8900달러(약 1281만원) 수준이었는데, 지난해 구리 가격 인상률이 전년보다 35%가량 증가한 겁니다.
업계 부담도 늘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말 전국 2208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1분기 경기 전망 결과를 발표하며 “전기 업종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구릿값 상승 여파로 전기장비 업체들의 채산성 악화가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전기 업종의 전망지수(BSI)는 기준치(100)에 못 미치는 72로 예상됩니다.
문제는 높은 구리 가격이 올해도 유지된다는 예측이 우세하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공급은 줄었기 때문입니다.
구리 수요 상승의 세 가지 원인, 그 끝은 미국?
끊어진 전기차 충전기 전선 내부에 구리 선이 박혀있다. 게티이미지
구리 수요 상승을 주도하는 주요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인공지능과 전기차 등으로 막대한 전기선이 필요해졌습니다. 전기선은 주로 구리로 만듭니다. 제품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전선 제조원가 중 60~90%는 구리 가격입니다.
특히 인공지능 데이터센터(AI DC)에는 막대한 구리가 들어갑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 DC의 경우 일반 DC 2배 수준인 메가와트(㎿)당 27~33t 구리가 필요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신규 하이퍼스케일 AI DC의 경우 500~1000㎿가 건설되고 있는데, 적게는 1만3500t에서 많게는 3만3000t에 달하는 구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유럽 정보통신기업 카고슨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DC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전 세계에서 약 45%를 차지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으름장’도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지목됩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구리 관세에 부과한다는 소식이 확산하면서 미국 수입업체들이 앞다퉈 구리를 미리 사두었기 때문인데요.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미국의 구리 수입량은 재고가 20만t까지 늘었습니다. 반면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 유럽 재고는 10만t으로 감소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2월 무역법 232조에 근거해 구리 수입에 관한 국가안보 조사에 들어간 뒤 그해 8월1일부터 5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기간입니다.
세계적인 ‘재무장’ 추세도 구리 수요를 늘리고 있습니다. 세계적 자원개발·광물 탐사 기업인 아이반호 마인스 공동설립자인 로버트 프리드랜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구리 수요의 상당 부분은 숨겨져 있다”며 “군사 부문의 구리 수요는 공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스웨덴 군사정보 연구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전 세계 국방비 지출 내용을 보면, 전 세계 국방비는 2023년 2조4774억달러(약 3566조원)에서 2024년 2조7181억달러(약 3912조원)로 급증합니다. 매년 증가 폭이 1000억달러(약 144조원) 내외였는데, 2024년엔 2707억달러(약 390조원)로 늘어난 것입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6월 지정학적 긴장 장기화로 인해 주요국이 첨단기술 도입과 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실제 미국 의회는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2.34% 늘린 9006억달러(약 1303조원)로 편성하기도 했죠.
세계적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리 공급
칠레 안토파가스타주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대규모 노천 광산 에스콘디다의 모습. 게티이미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지만 공급은 따라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발생한 세 가지 사고로 세계 구리 공급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카모아-카쿨라 광산의 홍수 피해(5월), 칠레 엘테니엔테 광산 터널 붕괴(7월), 인도네시아 그라스버그 광산 산사태(9월) 입니다. 세 곳은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약 7%를 차지하는데, 이들 사고로 구리 생산량이 예상량 대비 6% 감소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특히 그라스버그 광산 산사태는 구리 가격 상승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라스버그 광산을 운영업체인 프리포트 맥모란은 지난해 9월24일(현지시간) 구리 공급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밝혔는데요. 이때부터 국제 구리 가격(LME 기준)은 t당 9000달러(약 1295만원) 선을 넘어 1만달러(약 1439만원)에 진입했습니다. FT는 이 광산이 사고 이전의 생산량을 회복하는 시점을 2027년으로 예상합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애리조나에 북미 최대 규모의 구리광산을 개발하는 것을 승인했습니다. 구리 개발을 통해 수요를 따라잡겠다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각종 인허가와 환경오염, 물 부족으로 인한 지역 사회 반발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인허가와 지역 반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제3국에서 새로운 구리 광산을 추가로 발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5월 발간한 ‘글로벌 핵심광물 전망’에 따르면, 1990년에서 2023년까지 발견된 구리광산 239개 중 지난 10년 동안 발견된 곳은 14개에 불과합니다.
글로벌 에너지 전문 시장 조사기관인 블룸버그NEF는 지난달 19일 발간한 ‘2025년 전이 금속 전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2050년에 약 1900만t에 달하는 구리 부족을 겪게 될 겁니다. 10년 이내에 새로운 광산과 재활용 설비를 짓지 않는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