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는 내가 정한다, 경량 문명이 만든 미래
천재들 작은 기업에 몰려, 인당 시총 따진다
AI의 비서가 될지, AI의 에이전트가 될지
증강된 개인은 다 넘사벽, 경쟁 더 치열해져
AI와 일하면서도 내가 AI 아닌 것 입증해야
2026년이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시선의 위치가 높은 데이터 과학자 송길영과 한 해를 여는 ‘디지털 토정비결’의 시간을 가져왔다. 여러 사정으로 휴지기를 갖다가 2년 만에 재회했다. 그동안 송길영은 긴 호흡으로 다음을 준비하는 ‘시대 예보’ 시리즈를 내놓았다.
‘핵개인의 시대’와 ‘호명 사회’를 거쳐 이번에 출간된 ‘경량 문명의 탄생’은 AI 기술 격동의 시대를 담대한 언어로 돌파해 낸다. 송길영은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의 시대를 선언했다.
빅테크 전쟁과 대량 해고의 칼바람이 예보된 가운데, 막 AI와 동거를 시작한 인류는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고 있다. AI 구조화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몸을 가진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AI가 나의 비서일까? 내가 AI의 에이전트일까? ‘AI 효율화 복음’은 내 직업과 삶의 효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수많은 통계와 지수로 한 사회의 다음 장면을 제시했던 송길영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부터 메가폰을 쥐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큰 허리케인이 옵니다. 생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듯 인간은 AI의 센서가 되어서 감각과 지식을 제공할 운명이라는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AI가 인간의 거의 모든 걸 전수할 거라는 송길영의 단정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반복된 메시지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다.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가치를 잃지 않을 거라고 첨언하며.
겨울 아침, 통창으로 햇빛이 부서지는 그의 새 작업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고즈넉하고 프라이빗한 주택은 지혜를 공유하고자 찾아오는 젊은 도반과 관록 있는 리더들로 적당히 북적거렸다. 이곳에선 다도와 명상을 할 수 있고, 밤이면 하늘 가까운 곳에서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
-뭘 보고 있나요?
“AI로 만든 영상들이요. 이젠 현장 스태프 없이도 상업 영상물이 나와요. ‘범죄도시’ 1편 만들었던 강윤석 감독도 ‘중간계’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 개봉했습니다. 연기와 연출은 인간이 하고 세트와 크리처는 거의 AI가 했어요.
티켓으로 돈 벌 수 없으면 코스트 줄이는 게 맞아요. 배우 출연료를 건드릴 수 없으니 포스트 프로덕션을 건드린 거죠. 펀딩 200~300억 받고 한 작품 만들려면 5년, 10년까지 걸리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제작 환경이 경량화되고 있어요.”
-감독 데뷔도 빨라지겠군요.
“이제는 중학생도 손쉽게 영화를 만듭니다. 청소년 감독들은 스타일이 다양하고 창작 동기도 분명해요. 현장 연출부 10년 이상 해야 감독 입봉하던 시절은 끝났어요. 방송 PD 되고 싶으면 국·영·수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는 게 먼저였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기존의 도제 문법, 고학력 해법, 이제는 안 통합니다.”
-경량 문명은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바꿉니까?
“무거운 문명의 시대엔 만리장성 지으려고 국민 다 끌어다 노역시켰어요. 산출물이 인건비에 비례했죠. 지금은 가벼운 게 경쟁력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작은 기업을 선호해요. 10명이 100억 벌면 10억씩은 받을 수 있으니까. 큰 기업에 들어가서 n분의 1 받을 이유가 없죠. 능력자들이 작은 기업을 선호하면서 투자자도 규모를 따져요.
투자자는 구성원 수가 많으면 싫어합니다. 예전엔 시가총액만 물었어요. 지금은 인당 시총을 물어요. 인당 시총이 10억이냐, 2천 억이냐로 따집니다. 매출 늘리는 건 CFO가 못 하니 압력받으면 사람 줄이는 걸 택해요,”
-자동적으로…
“네. 모든 게 구조화돼요. 다 줄일 거예요. 무서운 건 동시에 온다는 거. 동시에 나오면 힘들어요. IMF가 힘들었던 것도 동시에 와서잖아요. AI가 책상머리 일들을 다 쓸고 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고등교육 수혜자들에게 ‘네 직업 정리해’ 그러니 다들 소스라치는 거예요.
게다가 한국은 마지막 연공서열의 수혜자들이 많아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보고 섬뜩해졌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들 보기에 번듯한 대기업 부장이라도 당사자는 백척간두였던 거죠.”
-두 실직 가장의 이야기가 SNS를 뜨겁게 달궜었어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류승룡… 마지막에 이병헌은 자동화된 공장을 혼자 거닐고, 류승룡은 관계와 직업의 대전환으로 다른 삶을 살지요. 내게도 곧 닥칠 일들이라 미래가 시뮬레이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맞아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회사를 그만두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점점 상호관계성이 기능으로 대체돼요. 과거엔 옆집 형이 좀 모자라도 깍두기로 끼워줬어요. 아픈 손가락을 인정하고 품었죠. 지금은 모두가 육각형이 돼야 해요. 외모도 성격도 자기 관리도 교양도 다 높이도록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요.
예전엔 나의 성취보다 집단의 성취가 우선해서, 잘나든 못나든 좋은 집단에 끼어 있으면 비슷하게 보상이 됐어요. 애덤 스미스의 분업과 막스 베버의 관료제가 믹스된 구조였어요. 공채 23기, 순환 보직 이런 것들로 무마가 됐다고요. 그런데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핵개인이 등장하고 갑자기 AI까지 나오면서 가치체계가 바뀌고 있어요.”
원맨 유니콘 한 명이 1조를 버는 시대. 손오공이 자기 털 뽑아 분신술 하듯 ‘증강된 개인들’이 활공하는 시대에, 과연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며 참아내던 시스템을 우리는 계속할 수 있을까.
-임원 사원 막론하고 우리 모두 취약한 항상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삶이 너무 위태롭고 깨지기 쉬워요.
“대기업 다니는 임원 한 분이 강의 중에 저한테 그러더군요. 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올해부터 구성원이 슬슬 미워지더랍니다. ‘맘대로 일도 못 시키고 술 마시며 정이 쌓이는 것도 아닌데, 굳이 회사가 사람을 키워야 하나? 거대 집단이 지닌 영향력도 막 떨어지는 마당에…’ 임원도 사원도 각자 치열하게 느껴요.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어쨌든 드라마에서 김 부장은 끝까지 버티려고 하지요.
“한국인들은 스위칭하면서 급여가 깎이는 걸 못 견뎌 해요. 받던 액수 그대로 수평 이동하려고 하면 초이스가 없어요. 라이프를 단출하게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됐어요.
생애 스테이지마다 레이스를 늘려왔으니까. 같은 부장도 반포 아파트 사는 부장, 구축 아파트 사는 부장, 계속 줄 세우면 안 불행해지는 게 더 이상하죠. 그러니까 빨리 그 레이스에서 빠져나와서 다른 중력의 우주로 가야합니다.”
학벌, 직급, 타이틀… 몸에 지닌 각종 무게를 가볍게 해서 빠르게 간결하게. 목에 힘주던 방송국 국장님도, 그 방송국 들어가려고 밤새워 시험 준비하고 학벌 쌓던 청년도, 이제 유튜브 우주에서 동일한 자격으로 경쟁하게 될 거라고.
-2023년 코로나 때도 2025년이 훅 당겨왔다고 했어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갑자기 일어났다고요. 그렇게 먼저 온 미래가 우리 멱살을 쥐고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놀랍게도 두 번의 우연이 동시에 겹쳤어요. 젠슨 황이 만든 GPU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지만, 엄청난 속도의 계산 엔진이었습니다. 기술이 먼저 준비된 상황에서, 갑자기 코로나로 디지털 가속화가 시작되면서 데이터와 계산 수요가 폭증한 겁니다. 그렇게 두 가지 사건이 만나면서 AI가 일상으로 순식간에 튀어나왔어요.
어느 날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혀서 환경 변화로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갑자기 AI가 우리 삶을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거죠. 일단은 노동을 안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1935년에 니콜라 테슬라가 그랬어요. ‘로마 시대에는 노예가 노동을 대신해 줬기 때문에 시민들은 우아하게 살았다. 앞으로 100년 이내 AI나 로봇이 나와서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테니, 그때는 좀 멋진 일을 해보라.’ 1935년도에 예언을 했는데, 90년 만에 정말 AI가 나온 거예요.
그럼, 이분 말대로 우리는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음유시인이 되거나 등반가가 되거나. 문제는 그게 인류의 좋은 미래지만 그게 내 미래인지는 모른다는 거죠. 매일 출근해서 동료들과 부대끼고 아파트 대출금 갚으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인류가 멋져질 테니까 네 직업은 없애자’ 그러면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 전환기를 어떻게 먹고 살며 삶을 유지할까요? 상황이 그러하니 생업 있는 분이라면 무조건 ‘AI와 협업하시라’는 겁니다. 춘궁기를 잘 통과하시라고요.”
-가령 동네에서 작은 식당 하는 노인도 AI와 잘 지내야 하나요?
“그럼요. 옆 식당에서 결제 키오스크 쓰는데 나는 안 쓰면 인건비 올라가고 음식값 올라갑니다. 옆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로봇 쓰는데 나는 안 쓰면 커피값 경쟁에서 밀려요. 그런 일이 사방에서 벌어질 겁니다. 요즘엔 번역가들에게 번역 의뢰할 때 클라이언트가 그냥 AI 쓰라고 한답니다. 다만 책임은 당신이 지라고. AI에이전트가 되라는 거죠. ‘내가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곧 퇴직하니까 괜찮아’ 이런 50대 사무직들도 정신 차려야 해요
제가 얼마 전에 뉴욕에 강연 갔다가 우버 택시 탔는데, 겨우 5㎞ 달렸는데 70불에 팁까지 줬어요.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심해요. 저출생 저성장에 원화 가치가 지켜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가진 자산으로는 남은 50년 감당하기 힘들어요. 생산 가능성은 계속 유지돼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엔 꼭 변화하셔야 해요.”
-AI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인간 소비자가 구매 여력이 없다면 AI 효율 시스템이 지속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건 나중 일입니다. ‘사람 줄이면 네 발등 찍는 거’라고 기업에 경고해도 그건 사회가 해결할 문제예요. 당장 옆에 있는 월마트랑 싸워야 하고 주주로부터 매출 압력을 받는데, 안 줄일 수 없어요. 결국 해고는 전방위적으로 닥칩니다. 금융권도 인원 감축한 지 5년이 넘었어요.
아마존도 AI로 사무직 노동을 구조화해 본 후에, 3만 명 정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어요. 내부 문서에는 2030년까지 최대 60만 명 감축을 목표로 자동화 추진 중이라고 돼 있어요. 60만 명이 해고되는 겁니다.
기업도 인간도 이기적인 선택을 해요.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물론 공공 영역에서의 의사결정은 멀리 보겠지만, 경제 시스템은 대부분 프라이빗 섹터에서 만들어지죠. 여기서 못 줄이면 국경을 넘어가요. 다른 나라 가서 기업 하겠다고. 전환기에 기회를 못 잡으면 순식간에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닐 하우라는 역사학자는 금융 위기에서 시작해 코로나와 AI로 깊어진 지금의 혼돈과 위기가 2035년 즈음에 끝날 거라고 예견했어요. 100년 주기로 반복해 온 역사의 패턴을 예로 들면서요. 만약 X세대가 특유의 생존 감각으로 이번 겨울 시즌의 어른 역할을 잘 해낸다면, 이후 MZ세대가 더 건강한 사회 시스템으로 봄의 리부트를 끌어낼 거라고요.
“세대 역할론은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다만 특이점은 과거와 달리 지금 젊은 세대는 AI와 스마트폰 때문에 늘 항진돼 있고 지루한 걸 조금도 참지 못한다는 거죠. 어쨌든 지금의 혼란 상황도 저는 네거티브하게 보지 않아요.”
-해체기는 창조적 파괴의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IMF를 겪으면서 대기업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다음 세대가 알아버렸잖아요. 그래서 네이버와 다음 같은 기술 스타트업들이 나왔죠. 패러다임 시프트가 될 때는 늘 새로운 기회가 생겨요. 제가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가 경량 문명의 시대가 꿈을 펼치기 좋다는 거예요.
성공한 기술 기업에 투자해 온 세쿼이아 캐피털에 따르면 요즘엔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펀딩을 거부한다고 해요. 5명이 돈 벌고 있으면, 매출이 늘어도 더 키우지 않고 5명이 운영을 해요. 예전엔 투자받아서 규모 키우고 비싸게 팔고 나갔지만, 지금은 안 팔아요.
‘돈도 벌고 재밌는 데 왜 팔아?’…. 그 태도의 뿌리가 몇백 년 이어온 패밀리 기업이거든요.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같은. 내가 시작했고 유지할 수 있고, 무리하게 키우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 청년들이 지금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한가요?
“그렇죠. 가상 화폐로 돈 번 사람들이 꼭 건물 산다고 하잖아요. 언제 버블이 터질지 모르니까. 하기 싫은 것, 불안한 것을 할수록 더 많이 바라고 더 많이 무리해요.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지속성을 갖는 거예요. 무리하지 않아도 자족을 느끼는 거죠.”
경량 문명의 즐거운 바이브에 올라타려면 지금부터 계속 AI 협업을 시도해 보라고 했다.
-책에서 부지런한 지능과 거대한 지능을 경공술과 축지법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부지런한 지능은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기에 빨리 달리는 ‘경공술’이고, 거대한 지능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에 땅을 접어서 달리는 ‘축지법’입니다.. 부지런한 지능은 시간을 단축하고 거대한 지능은 무수한 데이터 속 패턴을 찾아서 우리가 모르던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진짜 고민은 그거예요. 오랫동안 천천히 똑똑해진 인간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AI와 어떻게 일을 나눠야 할까? AI를 부지런한 지능으로 쓸까, 거대한 지능으로도 쓸까… 다 가능해요. 인간이 하기 싫은 거 귀찮은 거 다 시킬 수 있지만, 사실 저는 AI에 좀 어려운 일을 시켜야 맞다고 봐요.
일례로 딥마인드 창업자 허사비스 선생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잖아요. 화학자들이 인간 몸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기 위해 50년간 노력해도 잘 안됐는데, 딥 마인드 팀 연구로 몇 년 만에 90% 이상 밝혀낸 거예요. 거대한 지능이 단번에 난제를 해결한 거죠.
AI와 잘 협업하기 위해서는 AI에 어려운 일을 시킬 만큼의 끈기와 지혜가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은 천재들이 AI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오펜하이머는 천재 물리학자였지만 그 시절에 그 머리로 원자 폭탄 만드는 일만 해야 했어요. 지금 천재들은 AI로 멀티를 할 수 있어요.
바둑에서 여러 사람과 동시에 두는 다면기(多面棋)처럼. 그러면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거예요. 그러면 범인들은 그런 증강된 천재를 보고 절망할까? 아니요. 예를 들어 생명공학 분야에 그런 천재가 왔고 ‘어나더레벨’이라면, 나는 내가 더 하고 싶었던 일을 찾으면 돼요. 요리를 한다든가 분재를 한다든가.”
-확실히 빠른 추격자가 아닌 빠른 전환자의 시대군요.
“그럼요. 지금 바이오 제약 업계는 열기가 대단해요. 단백질 구조도 밝히고 임상의 프로세스도 단축하고… AI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확 늘었어요. 천재들이 바이오로 가고 있습니다. 단백질 변성을 알아내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까지도 정복할 수 있어요.”
-반면 저는 요즘 오히려 AI의 계산 언어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물처럼 흘러온 인간의 고전 언어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차피 AI가 다 한다면’,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생생하고 불완전한 ‘시도들’, 시행착오와 축적의 시간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요. 수련과 서사와 깨달음 같은 것들은 어찌할까요? 실패를 건너뛰는 인간이 과연 인간일까요?
“제가 경계하는 건 ‘노오력의 신화’예요. AI는 생리적 한계를 뛰어넘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AI와 경쟁하면 탈진해요. 이겨도 숨이 끊어집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행착오’는 건너뛰고, 처음부터 될 수 있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서 꿈을 크게 꾸길 권하는 거예요.
실패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이냐고 했는데, 다 실패할 거예요. 그래도 내 꿈에 가까운 걸 하다가 실패하라는 거죠. 어차피 돈 되는 건 AI가 하니까, 안 해본 것, 더 큰 것, 미지의 여정을 시작해도 된다는 겁니다.”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인간다움’의 핸들을 놓고 싶지 않아 지푸라기 잡듯 ‘도덕경’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대규모 언어모델은 우리의 문장을 완성하지만, ‘도덕경’은 문장을 불완전하게 남겨두는 법을 가르칩니다. 더 많은 지식은 더 좁은 길로 인도할 뿐이니 텅 빈 채 열려 있으라고요. 전지전능한 AI의 태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길이지요.
“과거의 큰 지혜자들은 멀리 본 이야기를 비유로 말했어요. 그릇이 큰 것도 있지만 긴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것들이니 내공이 대단하지요. 그런 문장에서 영감과 위로를 얻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언어는 기계가 가장 잘합니다. 사유를 구조화하는 시간이 너무 짧으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죠.
어떤 교수는 학생들에게 화내고 울분을 터뜨리더군요. 생각하고 쓰는 걸 다 챗GPT에 미루면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그런데 자동차가 있는 마당에 세워두고 뛰는 게 맞는 걸까요? 결국 뛰기도 하고 운전도 해야 해요. 마라톤도 하고 카체이싱도 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이 뛰어난 지능을 손에 넣는 미래는 평등하지만 더 치열해지겠군요.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다 넘사벽이고 다 엄친아죠. 전 과목 우등생 이야기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패션 감각도 있고 소셜 센스도 좋아요. 그래서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 시대는 한 가지 기준만 기억하면 돼요. 생산의 도구로 살던 시절은 지났으니, 하고 싶은 거 하는 데 시간을 쓰라고. 학벌주의 따라가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탁월해지는 분야를 찾으라고요.”
AI로 증강된 청소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전환의 코스트는 기성세대가 더 크고 뼈아플 거라고. 어차피 ‘대량 고용의 시대’는 끝났으니, 넘어진 김에 추스르듯 자기 삶을 재정비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하지 말고 각자 바라던 꿈과 어울리는 곳을 찾아 즐겁게 흩어지면 됩니다.”
-제러미 리프킨도 인터뷰에서 그러더군요. ‘회복력 시대에 우리의 생태적 자아는 저마다 흩어지는 패턴’이라고. ‘시간의 안무에 맞춰서 적응성의 스텝을 밟으라’고요. AI가 나오기 전엔 ‘대퇴사 시대’의 은유로 읽혔는데, 이제는 ‘대량 해고 시대’의 보법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지금 만난다, 잠시 만난다, 다시 만난다.’ 경량 문명 시대의 만남의 캐치프레이즈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그렇죠. 이제는 다 느끼실 겁니다. 가르쳐주고 품어주는 따사로운 조직의 시대는 끝났어요. 지금 당장 만나서 3주간 함께 프로젝트 하고 헤어지는 패턴입니다. 친절하지 않고 탁월하지 않으면 업계의 풀에서 축출돼요. 블라인드와 평판이 워낙 촘촘해서, 배려와 두려움을 잊으면 자연 도태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만난다, 잠시 만난다, 다시 만난다’. 명령, 억압, 강제로는 관계의 점성이 유지되지 않아요. 지능의 범용화, 협력의 경량화가 어쩔 수 없이 공정하고 예의 바른 개인을 유도하고 있어요.”
-경량 문명이 ‘진선미’의 층위도 더 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미와 추의 경쟁이 아니라, 미와 미의 경쟁이 되고 있다는 부분도 신선했어요.
“요즘 웬만한 화장품 용기 보면 다 예쁘죠? AI 기술로 러닝 시키니까 이젠 다 멋있고 세련돼요. 예쁜 것끼리 싸우니 안 예쁜 건 망하죠. 예쁜 게 평균이 되면 이제 서사를 따집니다. ‘대표님은 어떤 인생을 살았나요?’를 묻습니다. 개인이 뚝딱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 결과물의 성분과 살아온 윤리, 표현의 아름다움까지 다 요구받는 거예요.”
-진선미의 컴비네이션에 따라 매력도 다 달라지겠군요.
“진선미의 블렌딩이 곧 캐릭터예요. 진짜 무서운 건 이제 인간이 하는 일은 매력이 없으면 가치 입증도 안 돼요. 소비자는 드립 커피 내리는 카페 주인의 매력을 따져요. 커피 맛은 기본이고, 입담도 매너도 옷도 다 감상하고 평가해요. 소비자는 그 사람의 매력을 사요. 힘들다고 자신만의 조예와 매력을 내려놓는 순간, AI가 옵니다.”
결국 내가 그 일을 사랑하고 상대가 그 바이브를 느껴야 그 직업이 유지된다고 했다.
-얼마 전 저는 연남동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봤어요. 장애, 불치병, 고학력, 임산부,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6분 동안 무대에 올라 신나게 농담하고 내려갔어요. 서울대 교수부터 레즈비언 직장인까지… 실제 자기 애환을 농담으로 던지니, 풍자가 폐부를 찌르면서 폭소가 터지더군요. ‘경량 문명’의 시그널처럼 보였어요. 자기 정체성을 경량화해서 자유를 누리는 모습, 6분간 가볍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다니는 풍경이… 경이로웠습니다.
“‘경량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아요. 인정의 대상을 자기가 정합니다. 큰 시장이 아니라 소수로. 원소윤 소설가도 서울대 나와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지요. 저는 이게 효율적이라고 봐요.
공채 개그맨은 시장의 파이를 제한해서 선발합니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들면 처우를 못 해주니, 진입 장벽을 높이죠. 하지만 장벽을 너무 높이면 시도도 못 하고 날개 꺾이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날개도 못 펴고 엉뚱한 일만 평생 한 뒤에 나오는 말이 ‘내가 이거 할 사람이 아니었는데’예요. 그러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이들이 미래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모른다고 하세요. 더 좋은 답은 ‘같이 찾아볼까? 배워 볼까 ?’입니다. 분명한 건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AI와 로봇 시대에도 건재할 거예요. 지금 직업이 없어지면 반드시 새 직업이 옵니다.”
-CEO는 Chief Entertainment Officer로 거듭나야 할까요?
“똑똑한 사람은 ‘쫀다’고 쫄지 않아요. 더 잘하지도 않죠. 즐겁게 격려해 주는 리더가 최고예요.
-마지막으로 개인의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기술이 좋아져도 인류는 갈 길을 갔습니다. 인상파, 추상 미술 이후에 현대 미술이 더 깊어졌듯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생존과 자존을 위해 늘 한계 너머 이상과 반대급부를 찾으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AI 동료와도 잘 지내야 하지만 인간 동료들과도 잘 지내야 해요.
AI와 잘 지내면서도, 동시에 내가 AI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야죠. 요즘엔 인간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작업 과정을 라이브로 올리기 시작했어요. 음악하는 사람도 그 분투의 과정을 다 업로드합니다. 콘서트, 연극, 뮤지컬, 북토크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퍼포먼스만이 아닙니다. 그 일을 끝내기까지의 과정에 동참하고 박수 쳐주고 싶은 거죠. 라이브와 응원 문화가 인간인 당신의 성장에 함께할 겁니다.”
천재들은 거대한 지능과 협력해 인류의 난제를 풀고, 범인들은 부지런한 지능에 일을 맡기고 취향과 꿈을 좇는 시대, 송길영이 말하는 AI 유토피아는 이루어질까. 한편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 글루는 ‘AI의 영향은 업계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작을 수 있다’며 향후 10년 동안 일자리의 5%만 AI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천재들 작은 기업에 몰려, 인당 시총 따진다
AI의 비서가 될지, AI의 에이전트가 될지
증강된 개인은 다 넘사벽, 경쟁 더 치열해져
AI와 일하면서도 내가 AI 아닌 것 입증해야
'거대함은 더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송길영. / 사진=김흥구
2026년이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 시선의 위치가 높은 데이터 과학자 송길영과 한 해를 여는 ‘디지털 토정비결’의 시간을 가져왔다. 여러 사정으로 휴지기를 갖다가 2년 만에 재회했다. 그동안 송길영은 긴 호흡으로 다음을 준비하는 ‘시대 예보’ 시리즈를 내놓았다.
‘핵개인의 시대’와 ‘호명 사회’를 거쳐 이번에 출간된 ‘경량 문명의 탄생’은 AI 기술 격동의 시대를 담대한 언어로 돌파해 낸다. 송길영은 빠른 추격자가 아니라 빠른 전환자의 시대를 선언했다.
빅테크 전쟁과 대량 해고의 칼바람이 예보된 가운데, 막 AI와 동거를 시작한 인류는 자세를 낮추고 숨을 고르고 있다. AI 구조화가 거듭되는 상황에서 몸을 가진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AI가 나의 비서일까? 내가 AI의 에이전트일까? ‘AI 효율화 복음’은 내 직업과 삶의 효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수많은 통계와 지수로 한 사회의 다음 장면을 제시했던 송길영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부터 메가폰을 쥐고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큰 허리케인이 옵니다. 생업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듯 인간은 AI의 센서가 되어서 감각과 지식을 제공할 운명이라는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AI가 인간의 거의 모든 걸 전수할 거라는 송길영의 단정에는 낙관도 비관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반복된 메시지는 ‘세상이 바뀌었으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라’였다.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가치를 잃지 않을 거라고 첨언하며.
겨울 아침, 통창으로 햇빛이 부서지는 그의 새 작업실에서, 긴 대화를 나눴다. 고즈넉하고 프라이빗한 주택은 지혜를 공유하고자 찾아오는 젊은 도반과 관록 있는 리더들로 적당히 북적거렸다. 이곳에선 다도와 명상을 할 수 있고, 밤이면 하늘 가까운 곳에서 쏟아지는 별을 볼 수 있다.
"경량 문명은 무게와 안정을 포기하는 문명입니다."/ 사진=김흥구
-뭘 보고 있나요?
“AI로 만든 영상들이요. 이젠 현장 스태프 없이도 상업 영상물이 나와요. ‘범죄도시’ 1편 만들었던 강윤석 감독도 ‘중간계’라는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 개봉했습니다. 연기와 연출은 인간이 하고 세트와 크리처는 거의 AI가 했어요.
티켓으로 돈 벌 수 없으면 코스트 줄이는 게 맞아요. 배우 출연료를 건드릴 수 없으니 포스트 프로덕션을 건드린 거죠. 펀딩 200~300억 받고 한 작품 만들려면 5년, 10년까지 걸리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제작 환경이 경량화되고 있어요.”
-감독 데뷔도 빨라지겠군요.
“이제는 중학생도 손쉽게 영화를 만듭니다. 청소년 감독들은 스타일이 다양하고 창작 동기도 분명해요. 현장 연출부 10년 이상 해야 감독 입봉하던 시절은 끝났어요. 방송 PD 되고 싶으면 국·영·수 잘해서 좋은 대학 나오는 게 먼저였던 시절은 끝났습니다. 기존의 도제 문법, 고학력 해법, 이제는 안 통합니다.”
-경량 문명은 기업의 가치를 어떻게 바꿉니까?
“무거운 문명의 시대엔 만리장성 지으려고 국민 다 끌어다 노역시켰어요. 산출물이 인건비에 비례했죠. 지금은 가벼운 게 경쟁력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작은 기업을 선호해요. 10명이 100억 벌면 10억씩은 받을 수 있으니까. 큰 기업에 들어가서 n분의 1 받을 이유가 없죠. 능력자들이 작은 기업을 선호하면서 투자자도 규모를 따져요.
투자자는 구성원 수가 많으면 싫어합니다. 예전엔 시가총액만 물었어요. 지금은 인당 시총을 물어요. 인당 시총이 10억이냐, 2천 억이냐로 따집니다. 매출 늘리는 건 CFO가 못 하니 압력받으면 사람 줄이는 걸 택해요,”
해고와 살인을 암시하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인상적인 오프닝.
-자동적으로…
“네. 모든 게 구조화돼요. 다 줄일 거예요. 무서운 건 동시에 온다는 거. 동시에 나오면 힘들어요. IMF가 힘들었던 것도 동시에 와서잖아요. AI가 책상머리 일들을 다 쓸고 있어요. 동시다발적으로 고등교육 수혜자들에게 ‘네 직업 정리해’ 그러니 다들 소스라치는 거예요.
게다가 한국은 마지막 연공서열의 수혜자들이 많아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보고 섬뜩해졌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들 보기에 번듯한 대기업 부장이라도 당사자는 백척간두였던 거죠.”
-두 실직 가장의 이야기가 SNS를 뜨겁게 달궜었어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류승룡… 마지막에 이병헌은 자동화된 공장을 혼자 거닐고, 류승룡은 관계와 직업의 대전환으로 다른 삶을 살지요. 내게도 곧 닥칠 일들이라 미래가 시뮬레이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맞아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이 회사를 그만두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점점 상호관계성이 기능으로 대체돼요. 과거엔 옆집 형이 좀 모자라도 깍두기로 끼워줬어요. 아픈 손가락을 인정하고 품었죠. 지금은 모두가 육각형이 돼야 해요. 외모도 성격도 자기 관리도 교양도 다 높이도록 사회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어요.
예전엔 나의 성취보다 집단의 성취가 우선해서, 잘나든 못나든 좋은 집단에 끼어 있으면 비슷하게 보상이 됐어요. 애덤 스미스의 분업과 막스 베버의 관료제가 믹스된 구조였어요. 공채 23기, 순환 보직 이런 것들로 무마가 됐다고요. 그런데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핵개인이 등장하고 갑자기 AI까지 나오면서 가치체계가 바뀌고 있어요.”
원맨 유니콘 한 명이 1조를 버는 시대. 손오공이 자기 털 뽑아 분신술 하듯 ‘증강된 개인들’이 활공하는 시대에, 과연 서로가 서로를 떠받치며 참아내던 시스템을 우리는 계속할 수 있을까.
-임원 사원 막론하고 우리 모두 취약한 항상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삶이 너무 위태롭고 깨지기 쉬워요.
“대기업 다니는 임원 한 분이 강의 중에 저한테 그러더군요. 작년까지는 괜찮았는데 올해부터 구성원이 슬슬 미워지더랍니다. ‘맘대로 일도 못 시키고 술 마시며 정이 쌓이는 것도 아닌데, 굳이 회사가 사람을 키워야 하나? 거대 집단이 지닌 영향력도 막 떨어지는 마당에…’ 임원도 사원도 각자 치열하게 느껴요.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넷플릭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한 장면.
-어쨌든 드라마에서 김 부장은 끝까지 버티려고 하지요.
“한국인들은 스위칭하면서 급여가 깎이는 걸 못 견뎌 해요. 받던 액수 그대로 수평 이동하려고 하면 초이스가 없어요. 라이프를 단출하게 만들어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됐어요.
생애 스테이지마다 레이스를 늘려왔으니까. 같은 부장도 반포 아파트 사는 부장, 구축 아파트 사는 부장, 계속 줄 세우면 안 불행해지는 게 더 이상하죠. 그러니까 빨리 그 레이스에서 빠져나와서 다른 중력의 우주로 가야합니다.”
학벌, 직급, 타이틀… 몸에 지닌 각종 무게를 가볍게 해서 빠르게 간결하게. 목에 힘주던 방송국 국장님도, 그 방송국 들어가려고 밤새워 시험 준비하고 학벌 쌓던 청년도, 이제 유튜브 우주에서 동일한 자격으로 경쟁하게 될 거라고.
-2023년 코로나 때도 2025년이 훅 당겨왔다고 했어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갑자기 일어났다고요. 그렇게 먼저 온 미래가 우리 멱살을 쥐고 끌고 가는 느낌입니다.
“놀랍게도 두 번의 우연이 동시에 겹쳤어요. 젠슨 황이 만든 GPU는 게임용 그래픽 카드지만, 엄청난 속도의 계산 엔진이었습니다. 기술이 먼저 준비된 상황에서, 갑자기 코로나로 디지털 가속화가 시작되면서 데이터와 계산 수요가 폭증한 겁니다. 그렇게 두 가지 사건이 만나면서 AI가 일상으로 순식간에 튀어나왔어요.
어느 날 소행성이 지구에 부딪혀서 환경 변화로 공룡이 멸종한 것처럼, 갑자기 AI가 우리 삶을 바꿔버렸어요. 어떻게 보면 억세게 운이 좋은 거죠. 일단은 노동을 안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니까요.”
고된 노동을 대신하는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 ‘미키 17’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1935년에 니콜라 테슬라가 그랬어요. ‘로마 시대에는 노예가 노동을 대신해 줬기 때문에 시민들은 우아하게 살았다. 앞으로 100년 이내 AI나 로봇이 나와서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테니, 그때는 좀 멋진 일을 해보라.’ 1935년도에 예언을 했는데, 90년 만에 정말 AI가 나온 거예요.
그럼, 이분 말대로 우리는 우아하게 살 수 있을까요? 음유시인이 되거나 등반가가 되거나. 문제는 그게 인류의 좋은 미래지만 그게 내 미래인지는 모른다는 거죠. 매일 출근해서 동료들과 부대끼고 아파트 대출금 갚으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인류가 멋져질 테니까 네 직업은 없애자’ 그러면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 전환기를 어떻게 먹고 살며 삶을 유지할까요? 상황이 그러하니 생업 있는 분이라면 무조건 ‘AI와 협업하시라’는 겁니다. 춘궁기를 잘 통과하시라고요.”
-가령 동네에서 작은 식당 하는 노인도 AI와 잘 지내야 하나요?
“그럼요. 옆 식당에서 결제 키오스크 쓰는데 나는 안 쓰면 인건비 올라가고 음식값 올라갑니다. 옆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로봇 쓰는데 나는 안 쓰면 커피값 경쟁에서 밀려요. 그런 일이 사방에서 벌어질 겁니다. 요즘엔 번역가들에게 번역 의뢰할 때 클라이언트가 그냥 AI 쓰라고 한답니다. 다만 책임은 당신이 지라고. AI에이전트가 되라는 거죠. ‘내가 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곧 퇴직하니까 괜찮아’ 이런 50대 사무직들도 정신 차려야 해요
제가 얼마 전에 뉴욕에 강연 갔다가 우버 택시 탔는데, 겨우 5㎞ 달렸는데 70불에 팁까지 줬어요. 인플레이션이 그렇게 심해요. 저출생 저성장에 원화 가치가 지켜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가진 자산으로는 남은 50년 감당하기 힘들어요. 생산 가능성은 계속 유지돼야 합니다. 그러니 이번엔 꼭 변화하셔야 해요.”
바이브컴퍼니를 나온 후 ‘시대예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 송길영. / 사진=김흥구
-AI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해도 인간 소비자가 구매 여력이 없다면 AI 효율 시스템이 지속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건 나중 일입니다. ‘사람 줄이면 네 발등 찍는 거’라고 기업에 경고해도 그건 사회가 해결할 문제예요. 당장 옆에 있는 월마트랑 싸워야 하고 주주로부터 매출 압력을 받는데, 안 줄일 수 없어요. 결국 해고는 전방위적으로 닥칩니다. 금융권도 인원 감축한 지 5년이 넘었어요.
아마존도 AI로 사무직 노동을 구조화해 본 후에, 3만 명 정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어요. 내부 문서에는 2030년까지 최대 60만 명 감축을 목표로 자동화 추진 중이라고 돼 있어요. 60만 명이 해고되는 겁니다.
기업도 인간도 이기적인 선택을 해요.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는. 물론 공공 영역에서의 의사결정은 멀리 보겠지만, 경제 시스템은 대부분 프라이빗 섹터에서 만들어지죠. 여기서 못 줄이면 국경을 넘어가요. 다른 나라 가서 기업 하겠다고. 전환기에 기회를 못 잡으면 순식간에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닐 하우라는 역사학자는 금융 위기에서 시작해 코로나와 AI로 깊어진 지금의 혼돈과 위기가 2035년 즈음에 끝날 거라고 예견했어요. 100년 주기로 반복해 온 역사의 패턴을 예로 들면서요. 만약 X세대가 특유의 생존 감각으로 이번 겨울 시즌의 어른 역할을 잘 해낸다면, 이후 MZ세대가 더 건강한 사회 시스템으로 봄의 리부트를 끌어낼 거라고요.
“세대 역할론은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다만 특이점은 과거와 달리 지금 젊은 세대는 AI와 스마트폰 때문에 늘 항진돼 있고 지루한 걸 조금도 참지 못한다는 거죠. 어쨌든 지금의 혼란 상황도 저는 네거티브하게 보지 않아요.”
-해체기는 창조적 파괴의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맞아요. IMF를 겪으면서 대기업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다음 세대가 알아버렸잖아요. 그래서 네이버와 다음 같은 기술 스타트업들이 나왔죠. 패러다임 시프트가 될 때는 늘 새로운 기회가 생겨요. 제가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가 경량 문명의 시대가 꿈을 펼치기 좋다는 거예요.
성공한 기술 기업에 투자해 온 세쿼이아 캐피털에 따르면 요즘엔 잘나가는 스타트업은 펀딩을 거부한다고 해요. 5명이 돈 벌고 있으면, 매출이 늘어도 더 키우지 않고 5명이 운영을 해요. 예전엔 투자받아서 규모 키우고 비싸게 팔고 나갔지만, 지금은 안 팔아요.
‘돈도 벌고 재밌는 데 왜 팔아?’…. 그 태도의 뿌리가 몇백 년 이어온 패밀리 기업이거든요.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같은. 내가 시작했고 유지할 수 있고, 무리하게 키우지 않으면 계속할 수 있다… 청년들이 지금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한가요?
“그렇죠. 가상 화폐로 돈 번 사람들이 꼭 건물 산다고 하잖아요. 언제 버블이 터질지 모르니까. 하기 싫은 것, 불안한 것을 할수록 더 많이 바라고 더 많이 무리해요. 반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지속성을 갖는 거예요. 무리하지 않아도 자족을 느끼는 거죠.”
기술 격동의 가파른 풍경을 따뜻한 어조로 품는 송길영의 문장들.
경량 문명의 즐거운 바이브에 올라타려면 지금부터 계속 AI 협업을 시도해 보라고 했다.
-책에서 부지런한 지능과 거대한 지능을 경공술과 축지법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부지런한 지능은 ‘하기 힘든 일’을 도와주기에 빨리 달리는 ‘경공술’이고, 거대한 지능은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기에 땅을 접어서 달리는 ‘축지법’입니다.. 부지런한 지능은 시간을 단축하고 거대한 지능은 무수한 데이터 속 패턴을 찾아서 우리가 모르던 깨달음을 전해줍니다.
진짜 고민은 그거예요. 오랫동안 천천히 똑똑해진 인간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AI와 어떻게 일을 나눠야 할까? AI를 부지런한 지능으로 쓸까, 거대한 지능으로도 쓸까… 다 가능해요. 인간이 하기 싫은 거 귀찮은 거 다 시킬 수 있지만, 사실 저는 AI에 좀 어려운 일을 시켜야 맞다고 봐요.
일례로 딥마인드 창업자 허사비스 선생이 노벨 화학상을 받았잖아요. 화학자들이 인간 몸의 단백질 구조를 밝히기 위해 50년간 노력해도 잘 안됐는데, 딥 마인드 팀 연구로 몇 년 만에 90% 이상 밝혀낸 거예요. 거대한 지능이 단번에 난제를 해결한 거죠.
AI와 잘 협업하기 위해서는 AI에 어려운 일을 시킬 만큼의 끈기와 지혜가 필요해요. 그래서 지금은 천재들이 AI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오펜하이머는 천재 물리학자였지만 그 시절에 그 머리로 원자 폭탄 만드는 일만 해야 했어요. 지금 천재들은 AI로 멀티를 할 수 있어요.
바둑에서 여러 사람과 동시에 두는 다면기(多面棋)처럼. 그러면 인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거예요. 그러면 범인들은 그런 증강된 천재를 보고 절망할까? 아니요. 예를 들어 생명공학 분야에 그런 천재가 왔고 ‘어나더레벨’이라면, 나는 내가 더 하고 싶었던 일을 찾으면 돼요. 요리를 한다든가 분재를 한다든가.”
천재들은 거대한 지능을 활용해서 인류의 난제를 풀 수 있다.
-확실히 빠른 추격자가 아닌 빠른 전환자의 시대군요.
“그럼요. 지금 바이오 제약 업계는 열기가 대단해요. 단백질 구조도 밝히고 임상의 프로세스도 단축하고… AI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확 늘었어요. 천재들이 바이오로 가고 있습니다. 단백질 변성을 알아내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까지도 정복할 수 있어요.”
-반면 저는 요즘 오히려 AI의 계산 언어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물처럼 흘러온 인간의 고전 언어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어차피 AI가 다 한다면’,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들만이 누릴 수 있는 생생하고 불완전한 ‘시도들’, 시행착오와 축적의 시간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되고요. 수련과 서사와 깨달음 같은 것들은 어찌할까요? 실패를 건너뛰는 인간이 과연 인간일까요?
“제가 경계하는 건 ‘노오력의 신화’예요. AI는 생리적 한계를 뛰어넘잖아요. 그래서 어떤 일이든 AI와 경쟁하면 탈진해요. 이겨도 숨이 끊어집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행착오’는 건너뛰고, 처음부터 될 수 있는 분야,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서 꿈을 크게 꾸길 권하는 거예요.
실패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이냐고 했는데, 다 실패할 거예요. 그래도 내 꿈에 가까운 걸 하다가 실패하라는 거죠. 어차피 돈 되는 건 AI가 하니까, 안 해본 것, 더 큰 것, 미지의 여정을 시작해도 된다는 겁니다.”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인간다움’의 핸들을 놓고 싶지 않아 지푸라기 잡듯 ‘도덕경’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대규모 언어모델은 우리의 문장을 완성하지만, ‘도덕경’은 문장을 불완전하게 남겨두는 법을 가르칩니다. 더 많은 지식은 더 좁은 길로 인도할 뿐이니 텅 빈 채 열려 있으라고요. 전지전능한 AI의 태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길이지요.
“과거의 큰 지혜자들은 멀리 본 이야기를 비유로 말했어요. 그릇이 큰 것도 있지만 긴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것들이니 내공이 대단하지요. 그런 문장에서 영감과 위로를 얻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언어는 기계가 가장 잘합니다. 사유를 구조화하는 시간이 너무 짧으니 어안이 벙벙할 정도죠.
어떤 교수는 학생들에게 화내고 울분을 터뜨리더군요. 생각하고 쓰는 걸 다 챗GPT에 미루면 앞으로 어떡할 거냐고. 그런데 자동차가 있는 마당에 세워두고 뛰는 게 맞는 걸까요? 결국 뛰기도 하고 운전도 해야 해요. 마라톤도 하고 카체이싱도 해야 합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한 장면.
-모든 이들이 뛰어난 지능을 손에 넣는 미래는 평등하지만 더 치열해지겠군요.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다 넘사벽이고 다 엄친아죠. 전 과목 우등생 이야기입니다. 똑똑한 사람이 패션 감각도 있고 소셜 센스도 좋아요. 그래서 지능의 범용화와 협력의 경량화 시대는 한 가지 기준만 기억하면 돼요. 생산의 도구로 살던 시절은 지났으니, 하고 싶은 거 하는 데 시간을 쓰라고. 학벌주의 따라가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탁월해지는 분야를 찾으라고요.”
AI로 증강된 청소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전환의 코스트는 기성세대가 더 크고 뼈아플 거라고. 어차피 ‘대량 고용의 시대’는 끝났으니, 넘어진 김에 추스르듯 자기 삶을 재정비하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하지 말고 각자 바라던 꿈과 어울리는 곳을 찾아 즐겁게 흩어지면 됩니다.”
-제러미 리프킨도 인터뷰에서 그러더군요. ‘회복력 시대에 우리의 생태적 자아는 저마다 흩어지는 패턴’이라고. ‘시간의 안무에 맞춰서 적응성의 스텝을 밟으라’고요. AI가 나오기 전엔 ‘대퇴사 시대’의 은유로 읽혔는데, 이제는 ‘대량 해고 시대’의 보법으로 이해됩니다. ‘우리는 지금 만난다, 잠시 만난다, 다시 만난다.’ 경량 문명 시대의 만남의 캐치프레이즈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그렇죠. 이제는 다 느끼실 겁니다. 가르쳐주고 품어주는 따사로운 조직의 시대는 끝났어요. 지금 당장 만나서 3주간 함께 프로젝트 하고 헤어지는 패턴입니다. 친절하지 않고 탁월하지 않으면 업계의 풀에서 축출돼요. 블라인드와 평판이 워낙 촘촘해서, 배려와 두려움을 잊으면 자연 도태됩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만난다, 잠시 만난다, 다시 만난다’. 명령, 억압, 강제로는 관계의 점성이 유지되지 않아요. 지능의 범용화, 협력의 경량화가 어쩔 수 없이 공정하고 예의 바른 개인을 유도하고 있어요.”
도달하는 삶이 아니라 늘 비상하는 삶, 비행이 곧 인생이기에 무게를 덜고 차분하게 고도를 유지하라고 조언하는 책 ‘시대예보;경량 문명의 탄생’.
-경량 문명이 ‘진선미’의 층위도 더 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미와 추의 경쟁이 아니라, 미와 미의 경쟁이 되고 있다는 부분도 신선했어요.
“요즘 웬만한 화장품 용기 보면 다 예쁘죠? AI 기술로 러닝 시키니까 이젠 다 멋있고 세련돼요. 예쁜 것끼리 싸우니 안 예쁜 건 망하죠. 예쁜 게 평균이 되면 이제 서사를 따집니다. ‘대표님은 어떤 인생을 살았나요?’를 묻습니다. 개인이 뚝딱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 결과물의 성분과 살아온 윤리, 표현의 아름다움까지 다 요구받는 거예요.”
-진선미의 컴비네이션에 따라 매력도 다 달라지겠군요.
“진선미의 블렌딩이 곧 캐릭터예요. 진짜 무서운 건 이제 인간이 하는 일은 매력이 없으면 가치 입증도 안 돼요. 소비자는 드립 커피 내리는 카페 주인의 매력을 따져요. 커피 맛은 기본이고, 입담도 매너도 옷도 다 감상하고 평가해요. 소비자는 그 사람의 매력을 사요. 힘들다고 자신만의 조예와 매력을 내려놓는 순간, AI가 옵니다.”
결국 내가 그 일을 사랑하고 상대가 그 바이브를 느껴야 그 직업이 유지된다고 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희극’이라고 했던 찰리 채플린. 경량 정체성의 시조라 할만하다.
-얼마 전 저는 연남동에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봤어요. 장애, 불치병, 고학력, 임산부,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6분 동안 무대에 올라 신나게 농담하고 내려갔어요. 서울대 교수부터 레즈비언 직장인까지… 실제 자기 애환을 농담으로 던지니, 풍자가 폐부를 찌르면서 폭소가 터지더군요. ‘경량 문명’의 시그널처럼 보였어요. 자기 정체성을 경량화해서 자유를 누리는 모습, 6분간 가볍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다니는 풍경이… 경이로웠습니다.
“‘경량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의 인정을 갈구하지 않아요. 인정의 대상을 자기가 정합니다. 큰 시장이 아니라 소수로. 원소윤 소설가도 서울대 나와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지요. 저는 이게 효율적이라고 봐요.
공채 개그맨은 시장의 파이를 제한해서 선발합니다. 지원자가 많이 몰려들면 처우를 못 해주니, 진입 장벽을 높이죠. 하지만 장벽을 너무 높이면 시도도 못 하고 날개 꺾이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게 날개도 못 펴고 엉뚱한 일만 평생 한 뒤에 나오는 말이 ‘내가 이거 할 사람이 아니었는데’예요. 그러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이들이 미래에 관해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요?
“모른다고 하세요. 더 좋은 답은 ‘같이 찾아볼까? 배워 볼까 ?’입니다. 분명한 건 다정하게 사람을 만나고, 섬세하게 몸 쓰는 직업은 AI와 로봇 시대에도 건재할 거예요. 지금 직업이 없어지면 반드시 새 직업이 옵니다.”
-CEO는 Chief Entertainment Officer로 거듭나야 할까요?
“똑똑한 사람은 ‘쫀다’고 쫄지 않아요. 더 잘하지도 않죠. 즐겁게 격려해 주는 리더가 최고예요.
"AI를 썼냐 안 썼냐를 묻지 말고 AI와 어떤 방식으로 협업했냐를 물어야 합니다."/사진=김흥구
-마지막으로 개인의 성장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기술이 좋아져도 인류는 갈 길을 갔습니다. 인상파, 추상 미술 이후에 현대 미술이 더 깊어졌듯이.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은 의미를 찾으려고 할 거예요. 생존과 자존을 위해 늘 한계 너머 이상과 반대급부를 찾으려 듭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AI 동료와도 잘 지내야 하지만 인간 동료들과도 잘 지내야 해요.
AI와 잘 지내면서도, 동시에 내가 AI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야죠. 요즘엔 인간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작업 과정을 라이브로 올리기 시작했어요. 음악하는 사람도 그 분투의 과정을 다 업로드합니다. 콘서트, 연극, 뮤지컬, 북토크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건 퍼포먼스만이 아닙니다. 그 일을 끝내기까지의 과정에 동참하고 박수 쳐주고 싶은 거죠. 라이브와 응원 문화가 인간인 당신의 성장에 함께할 겁니다.”
천재들은 거대한 지능과 협력해 인류의 난제를 풀고, 범인들은 부지런한 지능에 일을 맡기고 취향과 꿈을 좇는 시대, 송길영이 말하는 AI 유토피아는 이루어질까. 한편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MIT의 경제학자 대런 아세모 글루는 ‘AI의 영향은 업계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작을 수 있다’며 향후 10년 동안 일자리의 5%만 AI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