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김대중<8>
대통령이 되기까지 박정희와 김대중의 가장 중요한 생애 이력은 각각 군인과 정치인이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본격적인 입신 정체성을 확립하기 전에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청년 사업가로 일제 강점기 말기의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7살의 생년 차이는 있었지만 둘 다 나이 20세가 되는 해였다.
박정희가 문경공립보통학교(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 교사 시절인 1939년 봄 여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뒷줄 왼쪽 첫번째가 군관학교시절 편지를 주고받은 제자 정순옥씨다. 정운현 제공
가난한 학생 학비 대준 '호랑이 선생님' 박정희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37년 4월 초 산골 학교인 경북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해 1940년 3월까지 3년 간 근무했다. 1937년 4월 초 산골 학교인 경북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해 1940년 3월까지 3년 간 근무했다. 제자들의 회상에 따르면 교사(당시 명칭은 훈도) 박정희는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릴 정도로 엄격하게 제자들을 지도했지만 어려운 사정이 있는 제자들을 잘 보살피는 자상한 면모도 있었다(문경공립보통학교는 조선교육령 3차 개정에 따라 1938년부터 문경서부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학급 담임과는 별도로 조선어 수업을 담당해 가르쳤다. 나팔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직접 나팔 부는 법을 가르쳤고, 달리기 철봉 체조 등 각종 체육 종목은 거의 도맡다시피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월사금을 못내는 아이들에게 월급을 떼어 도와주기도 했다(당시 교사 월급은 45원. 이 중 하숙비로 8원, 가난한 집 아이 2~3명 월사금 지원 1인당 1원 씩 2~3원, 본인 용돈 10원, 나머지는 고향 부모님에게 송금했다고 함. 박정희아카데미 부속 박정희연구회, 대구신문 2024년 12월 19일자).
봄 소풍 때 물에 빠진 여학생 구하기도
박정희 교사는 부임 첫해 4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그 시절 제자 정순옥은 훗날 박정희 선생님에 대한 회상기를 남겼다. 여기에는 문경 지역 낙동강 지류 명소인 진남교로 봄 소풍을 갔을 때 한 여학생이 깊은 물속에 빠져 거의 죽을 뻔한 것을 박정희 선생님이 뛰어들어 구조한 일 등 헌신적이고 자상한 스승의 면모가 소개돼 있다. 어느 일요일 친구 몇 명과 새로 오신 박정희 선생님의 하숙집을 찾아갔을 때 하숙방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 액자 하나가 걸려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영웅 나폴레옹이라면서 그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해줬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이낙선 비망록’에 수록된 내용. 조갑제의 ‘박정희 1’ 참조).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경북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3년간 하숙 했던 집. ‘청운각’이라는 이름으로 보존돼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사 박정희에 대한 당시 제자들과 지역민들의 좋은 기억은 이 외에도 많다. 제자 주영배(초등학교 교장 역임)는 학교에서 12㎞나 떨어진 벽촌의 가난한 농가였던 자신의 집을 가정방문 차 찾아준 것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열등생이나 문제학생 등의 가정을 자주 방문했다’(제자 전경준), ‘선생님이 조선어 시간에 태극기와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쳐주었다’(제자 이영태), ‘선생님이 우리말 지도에 열성을 보였다’(박정희 교사 담임 5학년 급장 신현균) 등 다수의 증언이 있다. 박정희 교사는 새벽 4~5시가 되면 학교 운동장에 나가 마을을 내려다보고 나팔을 불곤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야, 박 선생 나팔소리다. 일어나 소여물 끓여야겠다”고 했다고 한다(조갑제, 위의 책).
박정희가 교사 시절 보여준 열정과 미담에 대해 미화되거나 과장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사범학교 갓 졸업한 젊은 교사가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정 형편 어려운 학생들을 월급을 쪼개 돕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농촌 출신인 박정희 교사가 열정과 헌신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대했다는 증언은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농번기 때 가정 방문해 농업·가사 실태 살펴...훗날 새마을 운동에 영향
박정희(왼쪽 첫번째) 대통령이 1972년 3월 경북 청도군 운문면을 방문해 새마을운동 지붕개량 사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교사 시절 문경 지역의 농업과 가사 실태를 살피곤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훗날 새마을 운동 추진에 영향을 줬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정희 교사는 모내기와 추수 농번기 방학 기간에는 반 아이들 가정을 찾아가서 농업과 가사 실태를 살피기도 했다. 당시 문경공립보통학교는 조선총독부의 농촌진흥정책에 따라 2개 면에 갱생농원을 운영하는 학교로 지정돼 있었다. 학교 주도로 교사들이 농촌 부락의 지도를 맡는 등 농촌개발 운동을 이끌어갈 부락의 중견 인물들을 양성한다는 취지였다. 박정희 교사는 갱생 농원에 나가 40일 간 강의했는데 프로그램 및 취지가 새마을 운동과 유사해 대구사범학교 5학년 때의 농촌 위탁실습과 함께 훗날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조갑제, 위의 책).
목포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해운회사 취직한 김대중
김대중은 1943년 12월 목포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4월 일본인이 경영하는 해운회사에 취직했다. 배가 5, 6척 있는 전남기선주식회사였다. 주로 식량과 가마니, 새끼 등 농자재를 운송했다. 사장은 일본인이었고, 전무와 지배인, 잡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김대중은 총무 역할을 맡아 회계와 서무 등 각종 사무업무를 도맡아서 처리했다. 한눈팔지 않고 깊이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해서 잘한다는 칭찬을 받았다(김대중, ‘육성회고록’).
김대중이 청년사업가 시절인 1951년 목포에서 지역유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 앞줄 맨 왼쪽이 김대중이다. 김대중평화재단 제공
일제는 전세가 불리해지자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몰았다. 김대중도 언제 징집되어갈지 불안한 나날이었는데, 부친이 그의 출생일을 1년 늦춰달라고 호적 정정 신청을 낸 게 받아들어져 징집 시기가 미뤄졌다. 그러는 사이 해방을 맞았고 징집의 불안이 사라졌다.
해방이 되자 일본인 사장을 비롯해 경영진이 모두 일본으로 돌아갔고 남은 종업원 20여명이 회사를 떠맡게 되었다. 회사운영을 위한 종업원위원회가 결성되었는데, 김대중이 나이는 어리지만 명문 상업학교를 나와 똑똑하고 일도 좀 한다 해서 위원장으로 뽑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서울의 유력 인사가 미 군정청을 움직여 회사관리권을 빼앗아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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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성적 ‘꼴찌그룹’ 박정희와 대학 진학 포기한 김대중…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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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