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2차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40년까지 의사 수 증원 규모의 근거가 될 의사인력 수급추계 결과가 나왔다. 2040년 의사 수는 최대 1만1000명가량 부족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면서,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는 400~800명 선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추계위는 의사인력에 대한 중장기 수급 추계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된 독립 심의기구로, 지난 8월부터 회의를 열어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를 논의해왔다.
이날 발표에 따르면 추계위는 2040년 의사 수 부족 규모를 최소 5704명에서 최대 1만1136명으로 추산했다. 추계위는 국민 1인당 의료 이용량 변화와 의료현장에 실제 공급되는 의사 인력 규모를 산출하기 위해 여러 변수를 적용했다. 의료기관 특성에 따른 입원·외래 의료 이용량, 인구구조 변화, 의사 국가시험 합격률, 면허 취득 이후 임상의사 활동 확률 등이 주요 변수로 고려됐다.
이 추계 결과를 단순 적용하면, 내년도 의대 정원은 현재 3058명에 더해 400~800명가량 증원되는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
의사 부족 규모가 단일 수치가 아닌 범위로 제시된 것은 10차례가 넘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위원들 간에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쟁점은 미래 의료 환경에 대한 ‘가정’이었다. 의료계 추천 위원들과 학계·수요자 추천 위원들 사이에서 인공지능(AI) 기술 발전과 의료 생산성 향상 효과를 어떻게 반영할지를 두고 인식 차이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측 위원들은 AI 기술 도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을 근거로 2040년 기준 의사 부족 규모를 최대 7000명 수준으로 계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2027년 의대 증원 규모는 최대치로 계산하더라도 500명 안팎에 그치게 된다.
반면 학계와 수요자 측 위원들은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 이용량 증가와 의사들의 근무 시간 감소 추세를 반영할 경우, 2040년 의사 부족 규모가 최소 1만명에서 최대 3만명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료계 추천 위원들을 중심으로 부족 규모의 상한선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면서, 의사 부족분이 1만명 이상으로 산출되는 변수와 계산식은 제외됐다.
남은 수치를 두고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추계위는 결국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이번 안을 결정했다. ‘수요 및 공급추계’ 결과는 공급1·2안, 기초모형 1·2·3안에 따른 안 등 부대의견 여러 개를 첨부했다. 김태현 추계위원장은 브리핑에서 현재 추계 결과가 기존에 정부 결정에 반대하던 이들까지도 설득할 수 있는 안이라 보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과반에 해당되는 여덟 분은 이른바 의료계에서 추천을 받으신 전문가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이 결과의 수용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추계위원은 회의 종료 후 “차라리 합의 없이 종료됐다면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증원 규모가 결정됐을텐데, 이를 막기 위해 의료계 쪽 위원들이 다수결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추계위원은 “3만명이 부족하다는 계산은 기술 발전이나 의료 이용 변화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며 “그 결과로는 의료계를 설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추계위가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종료되면서, 의대 증원 문제의 공은 내년 1월 말 열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로 넘어가게 됐다. 보정심은 보건의료 분야의 중장기 정책 방향과 계획을 심의·조정하는 최고위급 정책 심의기구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공급자·가입자·교수 등이 참여한다. 정부 측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인 만큼 정부 의견이 크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계가 보정심 결정에 불복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추계위 결과 발표를 앞두고 낸 입장문에서 “현재 수급추계위 논의는 AI 도입, 의료기술 발전, 생산성 변화 등 미래 의료 환경의 핵심 변수를 사실상 배제한 채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며 “시간에 쫓겨 설익은 결론을 내는 것은 ‘2000명 증원 사태’와 같은 국가적 과오를 반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부실한 추계 결과를 근거로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며 “현실을 왜곡하고 학문적 타당성을 상실한 추계는 이전 정부의 일방적 정책 결정과 다르지 않으며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