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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찰나의 맛’] 통영 개체굴
개체굴은 수율이 매우 높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사진 박상현]
개체굴은 수율이 매우 높고 영양분이 풍부하다. [사진 박상현]
언제부턴가 ‘굴수저’란 말이 유행이다. 한국인이 다른 건 몰라도 굴 하나 만큼은 풍족하게 먹기 때문이다. ‘오이스터 바(Oyster Bar)’라 불리는 해외 굴 전문점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얼마나 혜택받은 민족인지 실감한다. 반각굴 6~12개 정도를 접시에 깔고 5만~10만원 정도 받는다. 한국인이면 당연히 놀라기 마련. 오이스터 바의 굴 한 개 가격이면 우리나라에선 1㎏은 족히 먹을 수 있다.

우리가 ‘굴수저’가 된 것은 1960년대 통영에서 수하식 굴이 생산되면서부터다. 이맘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은 대부분 참굴이다. 굴의 종류는 하나인데 이름은 제각각이다. 굴을 키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투석식, 지주식, 수하식이 있다. 굴은 개땅이 간조 때는 드러나고 만조 때는 물속에 잠기는 조간대에서 자란다. 투석식은 조간대에 돌을 던져두고, 지주식은 조금 더 깊은 바다에 긴 장대를 박아 굴이 붙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방식이다. 수하식은 긴 줄에 조가비를 달고 여기에 굴의 유생을 붙여서 성장시키는 방식이다.

굴은 여과섭식을 하는 생물이다. 여과섭식이란 바닷물을 빨아들여 식물성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굴의 먹이는 다름 아닌 바닷물 자체다. 그래서 굴에는 양식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 인간이 하는 일은 굴이 붙어서 자랄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할 뿐 나머지는 바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굴을 유통하는 통영의 굴 수협 역시 공식 명칭은 ‘굴양식수협’이 아니라 ‘굴수하식수협’이다.

투석식과 지주식은 간조 때 굴이 물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여과섭식을 하지 못한다. 이에 비해 수하식은 성장 기간 내내 물속에 잠겨있어 쉴 새 없이 먹이 활동을 한다. 따라서 수하식 굴이 투석식이나 지주식보다 조금 더 크다. 투석식과 지주식은 크기는 작지만 육질이 조금 더 단단하고 맛이 진하다. 이 차이 때문에 수산 시장에서는 지주식 굴은 ‘서해굴’, 수하식 굴은 ‘남해굴’로 표기하기도 한다. 투석식 굴은 어리굴젓용으로 주로 사용된다.

수하식 굴 생산 덕분에 우리나라가 ‘굴수저’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고급 굴 소비시장에서 한국산 굴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굴 생산량은 중국이 1위고 한국이 2위이며 그 뒤로 미국·일본·프랑스가 차지했다. 그런데 굴 수출액으로 따지면 1위가 프랑스, 2위가 중국, 3위가 한국이다. 고급 굴 소비시장에서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산 굴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앞서 언급한 오이스터 바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굴 역시 프랑스산이다. 이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최근 통영시와 신안군 등에서 새로운 굴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 이름하여 ‘개체굴’이다. 개체굴은 말 그대로 돌·장대·조가비 등에 굴을 붙이지 않고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키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고급 굴의 대명사 개체굴이 성장하고 있는 통영시 북신만. [사진 박상현]
우리나라 고급 굴의 대명사 개체굴이 성장하고 있는 통영시 북신만. [사진 박상현]
통영시 평인일주로에 있는 ‘노을전망대’. 이 전망대에서 보이는 바다를 통영 사람들은 북신만이라 부른다. 우리 바다에서 굴 생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온통 수하식 굴을 늘어뜨린 하얀 부표가 바다 위를 뒤덮고 있다. 마치 바둑판에 백돌만 놓인 형국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흑돌이 드문드문 보이기도 한다. 동북아영어조합법인의 장용호 대표가 개체굴을 키우는 현장이다.

개체굴은 2~3년 정도 키워 시장에 출하하는데 일생의 절반은 수조에서 나머지 절반은 바다에서 성장한다. 유생에서 종패가 될 때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있는 수조에서 성장한다. 그냥 내버려 두면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바닷물을 강제 순환시켜 스트레스를 준다. 굴과 굴이 부딪치면서 모양이 일정하게 잡힌다. 이렇게 수조에서 자란 굴이 엄지 한마디 정도로 자라면 바다로 나간다. 바다에 나간 굴은 플라스틱 케이지에 담겨 표층에서 성장한다. 식물성 플랑크톤은 주로 표층에 몰려있어 여과섭식을 하는 굴에게는 먹이가 가장 풍부한 환경이다. 하지만 이때도 굴은 파도에 의해 끝없이 뒹굴고 부딪힌다. 굴과 굴이 부딪히면서 껍질의 가장자리인 성장점이 깎여 나간다. 이렇게 자란 굴은 크기가 일정하고 두께가 두꺼워지면서 수율이 일정하다. 신기하게도 개별적으로 성장했지만 크기가 일정하고, 속이 꽉 차 있다. 굴은 보통 80%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지만 개체굴은 수분 함량이 77% 정도다. 3%의 차이가 미미해 보지만, 이 차이가 결국 굴의 육질과 맛을 결정한다.

우리나라 고급 굴의 대명사인 개체굴은 해외에서도 인기다. [사진 박상현]
우리나라 고급 굴의 대명사인 개체굴은 해외에서도 인기다. [사진 박상현]
개체굴은 한 번 먹어보면 그 단단한 육질과 진한 맛에 단번에 매료된다.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이나 오이스터 바에서 먹었던 맛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 가운데 개당 몸값이 가장 비싸다. 샴페인이나 위스키는 물론이고 탄산이 살아있는 막걸리에도 찰떡궁합이다. 통영 북신만에서 시작된 개체굴 생산은 이제 남해안 일대로 퍼져나가고 있다. 개체굴을 지역 명품 수산물로 육성하고 있는 전라남도 신안군은 ‘1004굴’이라는 브랜드를 개체굴 껍데기에 레이저로 새겨 출하하고 있다.

개체굴 생산과 수출이 본격화되면 우리나라는 고급 굴 소비시장에서 프랑스와 경쟁하게 될 것이다. 그전에 우선 ‘굴수저’를 물고 이 땅에 태어난 여러분이 맛 보시길 권한다. 굴 맛의 새로운 경지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개체굴은 바다 수온이 15도 이하로 유지되는 3월까지 출하된다. 주기적으로 노로바이러스 검사도 받기 때문에 안전하게 생굴을 즐길 수 있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음식의 탄생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는 것에 관심 많은 맛칼럼니스트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로컬푸드랩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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