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청소·냉장고 정리 등 시간 단위 필요한 것만 맡겨
맞벌이·1인 가구 증가에 홈클리닝 서비스 일상화
맞벌이·1인 가구 증가에 홈클리닝 서비스 일상화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종로구에 사는 10년 차 직장인 윤모(36)씨는 2019년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청소 대행 서비스를 이용한다. 원하는 날짜와 시간만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면 ‘이모님’이 방문해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해 준다. 79.3㎡(24평) 크기의 아파트를 4시간 청소하는 데 윤씨가 지불하는 비용은 6만3000원이다. 시간당 1만5750원인 셈이다.
윤씨는 “내가 직접 청소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며 “가사노동에 할애하는 시간을 영화를 보거나 운동하는 데 쓸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고 26일 밝혔다. 이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아 결혼 후에도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윤씨처럼 돈을 주고 시간을 사는 방식은 더 이상 일부 고소득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앱에서 시간 단위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가사 서비스를 주문할 수 있다. 집 청소부터 냉장고 정리, 반려견 산책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가사노동의 외주화’가 일상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9일 발표한 ‘2025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는 총 804만5000가구로 전년보다 6.3%(8만3000가구) 증가했다. 1인 가구 비중은 2019년 30%를 넘어선 뒤 2022년 34.5%, 2023년 35.5%, 2024년 36.1%로 매년 늘고 있다.
맞벌이 가구도 지난해 하반기 기준 608만6000가구로 2년 연속 600만 가구를 넘었다. 같은 기간 유배우 가구가 1267만3000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맞벌이 부부가 거의 절반인 48%인 셈이다.
이런 사회 변화에 맞춰 등장한 것이 집안일 고민을 덜어주는 청소연구소, 미소, 숨고 같은 홈서비스 플랫폼이다. 나홀로 모든 가사를 도맡아야 하는 1인 가구, 직장생활로 집안일에 할애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맞벌이 가구로선 든든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매번 10만원을 내고 주기적으로 냉장고 청소 서비스를 이용 중인 1인 가구 직장인 이모(32·여)씨는 “냉장고를 정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관련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홈클리닝 서비스 플랫폼 청소연구소에 등록된 가사노동자 수는 2021년 5만명, 2022년 9만명, 2023년 12만명, 2024년 16만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이달 기준 19만명으로 20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미소 관계자는 “지난 7월 기준 누적 거래액이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며 “최근 1년 사이 5000억원을 추가로 달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사를 사람에게만 맡기는 것도 아니다. 맞벌이를 하는 결혼 2년 차 김모(32)씨 부부는 밤 9시쯤 녹초가 돼 귀가하는 일이 잦아 집안일을 할 엄두를 내기 힘든 때가 많다. 김씨의 집에서 청소는 로봇청소기,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책임진다. 김씨는 “결혼 전만 해도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를 굳이 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결혼하니 맞벌이 부부에게는 없어선 안 될 필수템이었다”고 말했다.
로봇청소기와 식기세척기, 음식물처리기 등 이른바 ‘이모님 가전’ 매출은 무섭게 뛰고 있다. 특히 로봇청소기 매출 신장세가 눈에 띈다. 롯데하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로봇청소기 매출은 전년보다 40% 증가했다. 이마트도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15일까지 로봇청소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37.9% 늘었다. 이마트 관계자는 “가사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개인 시간을 늘리려는 트렌드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매출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집안일에 들이는 시간과 피로도를 감안하면 남이 대신해주는 노동 가치가 비용보다 크다고 보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디지털화 등으로 여가시간에 즐길거리도, 직장에서 해야 할 업무도 점점 늘고 있어 대다수 사람이 시간 빈곤(time poverty)을 겪는 추세”라며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격이면 집안일을 남에게 선뜻 맡기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부 교수는 “계층에 상관없이 각자 필요한 만큼 외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실용적”이라며 “그렇게 아낀 시간을 생산적인 데 활용할 수 있으니 사용하는 사람이나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 모두 ‘윈윈’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가사 분야 플랫폼근로자를 법적 보호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권 보장 등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가사노동 외주화는 누군가의 불안정한 일자리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이재명정부 노동 1호 법안으로 ‘일터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정우 교수는 “법적으로 사각지대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도 유연성이 주는 효용이 분명히 있다”며 “이런 것을 감안해 법적 체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