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사기의 탄생②2005 논문
11개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수립을 알린 2005년 사이언스 논문 표지. 논문은 철회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4년 여름 박종혁이 피츠버그대 박사 후 연구원으로 떠난 후 줄기세포 배양 임무는 김선종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배반포1 또는 그 직후 단계에서 번번이 죽었다. 황우석은 “이것만 되면 여한이 없는데” “2004년 논문 같은 걸 매년 하나씩 내놔야 한다”며 압박했다. 김선종은 10월 5일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를 가져다 몰래 배양접시에 섞어넣었다. 다음 날 콜로니2가 형성됐다. 2번 줄기세포(
실체는 Miz-4
)가 이렇게 탄생했다.김선종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PD수첩’에도, 서울대 조사위에도 말하지 않았다. 검찰에 가서야 털어놓았다. 과연 섞어심기는 김선종 혼자 저지른 일일까, 황우석의 지시였을까. 섞어심기는 김선종의 단독 행동, 황우석은 논문 조작을 지시했지만 ‘줄기세포 2개는 있다’고 믿었다는 게 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남는 의문은 사법처리 관련 글에서 살펴본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은 규모와 대담성에서 세계 연구부정 사례의 수위로 꼽힐 만하다.
“줄기세포 2개, 논문은 11개로 간다”
2004년 12월까지 김선종의 섞어심기로 줄기세포 2~7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2005년 1월 9일 실험실 오염으로 모두 사멸했다. 황우석 팀은 미즈메디연구소에 분양해 동결보관 중이던 2, 3번 줄기세포를 가져왔다.
2005년 2월 연구팀 수중에 있었던 건 2, 3번 줄기세포(
실체는 Miz-4, 8
), 2번 줄기세포 테라토마 조직3, 그리고 핵이식한 지 얼마 안 된 복제배아 몇 개였다. 이 상태에서 “논문은 11개로 간다”고 결정한 것은 황우석이었다. 하기야 황우석이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줄기세포 수립현황 표: 실험 없이 적어넣어
2005년 2월 하순~3월 5일 세 차례에 걸쳐 황우석은 석사과정 권대기 줄기세포팀장에게 줄기세포 수립현황 표 작성을 지시하면서 줄기세포 숫자를 6개, 10개, 11개로 늘렸다. 사멸해 없는 4~7번, 배반포 단계의 8~11번, 12번을 수립된 줄기세포에 포함시킨 결과다. 권대기는 강성근과 상의해 표를 날조해 채워넣었다.
-4~11번 줄기세포 핵형 검사4 등 하지도 않은 검사 결과를 정상으로 기입했다.
-사용된 난자 수를 185개(
408개가 제공돼 277개가 사용됐다
)로 줄였다. -황우석 지시로 인간 영양세포(
쥐와 인간 영양세포를 병용했다
)를 사용했다고 썼다. 2005년 논문의 가치는 줄기세포 수립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데에 있기 때문에, 난자 개수와 영양세포에 대한 허위 보고는 치명적이다. 논문의 가치를 무위로 만드는 것이었다.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복제 배아줄기세포의 특성을 보여주는 실험 사진들. 거의 모든 데이터가 날조된 것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체세포 쪼개기, 미즈메디 것 훔치기, 사진 불리기
논문 리뷰어의 요구도 11개 줄기세포를 정말 만들었는지를 입증하라는 것이었다. 복제와 줄기세포 여부를 검증하는 실험 데이터가 2005년 논문의 내용이다. 황우석 팀은 △2, 3번 줄기세포로만 수행한 몇 안 되는 실험 데이터로 11개 줄기세포를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다. 제대로 수행한 실험은 2, 3번 줄기세포의 핵형 검사와 테라토마 실험뿐이었다.
-김선종이 체세포 DNA를 둘로 쪼개 2, 3번 줄기세포 DNA 검사를 의뢰했다.
-2, 3번 줄기세포 면역적합성(HLA) 검사5도 김선종이 체세포만 쪼개 의뢰했다.
-황우석은 면역염색사진6을 많이 찍어 줄기세포 10개로 만들라고 했다. 김선종은 미즈메디연구소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사진 50여 장을 만들었다. 그러고도 좋은 사진이 부족하자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 사진 중 골라 썼다. 나중에 중복 사진이 무더기로 발견된 이유다.
-김선종이 2번 줄기세포 테라토마 사진을 찍자 황우석은 이것으로 2~4번 테라토마 사진을 만들라고 했다. 사진은 4번까지 넣고 8번까지 테라토마 실험을 했다고 논문에 썼다.
-김선종이 배아체 검사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실험이라고 하자 황우석은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의 배아체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김선종은 그렇게 했다.
이것이 2005년 1~2월에 벌어진 일들이다. 2번 줄기세포 DNA·핵형 검사만 2004년 11월 이뤄졌다.
황우석의 진두지휘에 따라 조작된 데이터들은 속속 강성근에게 모였다. 강성근은 데이터를 취합해 3월 5일 섀튼에게 보냈다. 섀튼은 논문을 작성해 3월 15일 사이언스에 제출했다. 섀튼은 리뷰와 수정을 거쳐 4월 25일 논문 최종본을 투고했는데 그 사이 이런 조작이 추가됐다.
-3월 21일 권대기는 4~12번 줄기세포 면역적합성 검사를 위해 김선종에게 체세포를 건넸고 김선종이 체세포 DNA만 둘로 쪼개 안규리 실험실에 검사를 의뢰했다.
-4월 5일 황우석은 강성근에게 4~12번 줄기세포의 DNA 지문을 재촉했다. 김선종은 면역적합성 검사를 넘기고 남은 체세포 DNA를 둘로 쪼개 검사를 의뢰했다.
4월 초에는 김선종의 섞어심기로 8, 10, 11, 13번 줄기세포 콜로니가 형성된 상태였다. 하지만 진짜 검증과 논문 작성은 별개가 된 지 오래였다.
2005년 5월 19일 영국 런던에서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제럴드 섀튼 피츠버그대 교수와 함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 성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동아일보 제공
서로 속이고 속은 조작단
황우석은 총체적 조작 지시를 검찰과 법정에서 인정했다. 다만 모든 데이터 조작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줄기세포가 2개뿐인데 데이터를 준비하라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황우석이 4~12번 줄기세포의 면역적합성 검사를 지시했을 때 권대기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체세포만 건넸다. ‘데이터를 준비하라’는 말은 ‘조작하라’는 뜻으로 통했고, 척하면 척 알아듣는 경지가 됐다.
처음 ‘체세포 쪼개기’는 김선종이 시작했지만 핵심 조작단(황우석 강성근 김선종 권대기) 내에선 공공연했다. 그밖에 ‘사진 불리기’ ‘데이터 바꿔치기’ ‘미즈메디 시료 슬쩍 하기’ '도표 창작하기' 등 다양한 조작 기법이 동원됐다.
연구를 책임진 교수가 조작을 지휘했으니 거부하기도 어렵고 죄책감도 희박했을 것이다. 이들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타고 질주했다. 사이언스와 세계 과학계를 속이는 한 팀이었고 또 서로를 속였다. 법정에서, 또 지지자들 사이에선 누가 주범인가를 놓고 박 터지게 싸웠지만 가해자-피해자를 구분하기는 어려운 지경이었다.
총체적 과학의 실패, 민주주의의 실패
황우석의 작정한 사기는 물론 성과에 대한 욕심 때문이지만 일종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그에겐 과학적 능력 부족과 난자 수급이라는 큰 제약이 있었다. 황우석은 실적을 부풀려 먼저 발표한 뒤 그 명성으로 필요한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이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그의 연구 경로는 이런 패턴이 얼마간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체세포 복제임을 증명할 논문이나 데이터 없이 영롱이 탄생을 발표했고 6년 뒤 진짜 복제 개 스너피를 탄생시켰다. 2004년 사이언스 논문 발표 후 그에겐 막대한 연구비가 쏟아졌고 연구 협력도 쉬워졌다.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도 논문부터 내고 채우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황우석 실험실은 논문 발표한 후 더 많은 난자를 썼다.또 황우석은 2005년 12월 초까지 김선종에게 '빨리 귀국해 줄기세포를 만들라'고 종용했다. 황우석이 2005년 12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줄기세포가 한 개면 어떻습니까. 세 개면 어떻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일견 진심이었을 것이다.
2005년 5월 30일 자 타임지는 황우석 실험실을 취재해 보도했다 . 한국일보 자료사진
최고의 대학, 최고의 저널은 왜 최악의 사기를 걸러내지 못했을까. 물론 연구의 수월성과 진실성을 관리해야 할 책임자가 작정하고 조작했으니 속기 쉬웠다. 교수였던 강성근, 이병천, 직계 제자도 아닌 윤현수까지 조작에 동참하거나 침묵했기에 사기를 들키지 않았다. 부끄러워 마땅한 일이다.
실험실이 투명하고 민주적이었다면 밑에서라도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으련만 황우석 실험실은 매우 불투명하고 폐쇄적이었다. 연구원들은 자기 실험 내용만 조각조각 알았다. 사이언스 논문이 나오고 나서야 자기 이름이 들어간 걸 알았다는 공저자들이 태반이었다. 황우석은 늘 입단속을 했다. 1999년 영롱이 취재 때 나는 황우석 차를 운전해 온 연구원에게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가 “저는 입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당황한 적이 있다. 서울대 의대 한 연구원은 황우석이 "조용히 건너오십시오"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다.
황우석 사태 당시 데이비드 키멜만 미 워싱턴주립대 교수는 한국일보 기고문에서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린 학생부터 교수에 이르기까지 실험실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의심스러운 부정에 직면했을 때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어디 실험실만 그런가. 윤 일병 학대·사망사건 같은 끔찍한 군 내 폭력을 막기 위해선 관심사병 관리보다 외부 소통을 가능케 하는 휴대폰이 효과적이다. 연출가 이윤택의 성범죄가 10년 넘게 수십 명 피해자를 낳았던 것은 저명한 연출가의 영향력에 짓눌려 모두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제도는 무용하다. 과학 역시 민주주주의의 토대에서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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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2006년 1월 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 '황우석 교수 연구의혹 관련 조사결과보고서', 2006년 5월 12일 서울중앙지검 '줄기세포 논문조작사건 수사결과', 황우석 사기·횡령 등에 대한 1심 판결문(2009년 10월 26일)·대법원 판결문(2014년 2월 27일), 김선종 서울대 조사위 진술서●
'황우석 백서: 왜 우리는 선동에 무력한가'
17회가 내일 이어집니다.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 ① 2025, 왜 다시 황우석인가
- • [황우석 백서] 거짓은 왜 이토록 성실한가... 진실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7260002506)
- • [황우석 백서] 거짓은 왜 이토록 성실한가... 진실은 기록되고 기억되어야 한다
- ② 난자 파문: 형제, 결별을 선언하다
- • [황우석 백서] 황우석에 돈 받고 논문 로비한 섀튼, 대혼란의 막 올리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1918180003626)
- • [황우석 백서] 황우석에 돈 받고 논문 로비한 섀튼, 대혼란의 막 올리다
- ③ 영웅은 죽지 않는다
- • [황우석 백서] 절대 영웅 황우석... 비난은 고발자 MBC를 향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3240005298)
- • [황우석 백서] 절대 영웅 황우석... 비난은 고발자 MBC를 향했다
- ④ 만들어진 신화
- • [황우석 백서] 기적을 예언한 과학자 황우석, 세계 1등 갈망을 채우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610470002239)
- • [황우석 백서] 기적을 예언한 과학자 황우석, 세계 1등 갈망을 채우다
- ⑤ 제보자는 왜 'PD수첩'을 찾아갔나
- • [황우석 백서] 거짓으로 쌓은 성... 류영준 "제보 말고 다른 선택지 없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441000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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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노무현이 불붙인 진위 논란
- • [황우석 백서] 줄기세포 DNA 다른데도 황우석 옳다는 기자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5390000163)
- • [황우석 백서] 줄기세포 DNA 다른데도 황우석 옳다는 기자들
- ⑦ 시약 논란: 팩트의 힘
- • [황우석 백서] "어휴, 그 시약은 쓰면 안 돼요" 과학적 거짓말이 대중을 속였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016430000223)
- • [황우석 백서] "어휴, 그 시약은 쓰면 안 돼요" 과학적 거짓말이 대중을 속였다
- ⑧ 황의 반격: YTN 청부 취재
- • [황우석 백서] "PD가 협박" 보도에 뒤집어진 세상... YTN 치욕의 특종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518560001117)
- • [황우석 백서] "PD가 협박" 보도에 뒤집어진 세상... YTN 치욕의 특종
- ⑨ 세계적 특종, 탐사 전말
- • [황우석 백서] "어떻게 이런 사기를..." 충격과 분노로 밤샌 한학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3020010005219)
- • [황우석 백서] "어떻게 이런 사기를..." 충격과 분노로 밤샌 한학수
- ⑩ 적대적 정파성, 언론의 타락
- • [황우석 백서] 제보자 사냥, 사상 검증... 광풍의 중심 조선일보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217360002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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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⑪ MBC 항복한 그날 밤
- • [황우석 백서] 모든 걸 휩쓴 YTN 폭풍... 벼랑 끝에서 진실의 응전이 시작되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612410005936)
- • [황우석 백서] 모든 걸 휩쓴 YTN 폭풍... 벼랑 끝에서 진실의 응전이 시작되다
- ⑫ 브릭이 찾은 조작 증거들
- • [황우석 백서]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숨은 영웅들의 싸움 촉발한 한 문장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92243000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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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⑬ 서울대 검증 결정 막전막후
- • [황우석 백서] "논문 검증" 소장파 교수들 나서자 대반전이 시작됐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1009020003384)
- • [황우석 백서] "논문 검증" 소장파 교수들 나서자 대반전이 시작됐다
- ⑭ 황우석 사단 내부의 폭로
- • [황우석 백서] "줄기세포 없다" 노성일의 폭탄 발언... 사태 대반전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116190005517)
- • [황우석 백서] "줄기세포 없다" 노성일의 폭탄 발언... 사태 대반전
- ⑮ 사기의 탄생① 2004 논문
- • DNA 검사 5번이나 하고도... 줄기세포 정체 모른 채 조작, 또 조작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118580003182)
- • DNA 검사 5번이나 하고도... 줄기세포 정체 모른 채 조작, 또 조작
- ⑯ 사기의 탄생② 2005 논문
- • 줄기세포 없는데 "데이터 준비하라" 황우석의 논문 조작 진두지휘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2120410005731)
- • 줄기세포 없는데 "데이터 준비하라" 황우석의 논문 조작 진두지휘
1
배반포난자에 핵을 이식한 후 5~6일이 지난 단계. 여기서 내부세포덩어리를 떼어 영양세포 위에 심어 배양하면 줄기세포가 된다. 2
콜로니배반포에서 내부세포덩어리를 떼어 영양세포 위에 심으면 콜로니 즉 세포집단이 형성된다. 세포들이 죽지 않고 계속 자라면 줄기세포주가 수립됐다고 본다. 3
테라토마 조직면역결핍 쥐에 줄기세포를 주사해 만든 기형종. 3개월 뒤 쥐에서 적출해 파라핀 보존처리를 해서 얇은 슬라이드로 만든다. 줄기세포의 분화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기형종에서 외배엽 중배엽 내배엽이 모두 형성됐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4
핵형 검사염색체 수와 구조를 살펴서 줄기세포의 염색체 정상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 확인한다.5
면역적합성(HLA) 검사줄기세포와 체세포의 면역항원이 일치하는지를 비교해 복제 여부를 확인하는 실험. 6
면역염색사진줄기세포 특성을 보기 위해 특정 항체에 형광물질을 입혀 촬영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