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계산서]①
2024년 탈모증 총 진료비 389억5000만원
복지부 “종합적으로 검토 중”
“유전·노화성 탈모 등으로 급여 확대 시 연 1조~3.6조원 재정 부담 불가피”
의료계 “건강보험 원칙 흔드는 것” 비판
[편집자주]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 안전망인 의료보험 제도는 1977년 처음 시행됐다. 이후 점차 대상을 확대해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완성했다. 보장 범위는 병실료, MRI, 초음파 등으로 거듭 확대됐다. 하지만 재정 부담 증가와 형평성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제도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보장성 확대의 득과 실을 따져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지시, 탈모 치료 급여화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2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대통령발(發) ‘탈모 급여화’ 검토 지시에 보건복지부도 검토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를 성실히 낸 청년층에게 탈모 등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탈모 치료 급여 확대 검토와 함께 경증질환과 보상된 수가 조정, 과잉 의료 관리 등 건강보험 재정 절감 방안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 의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탈모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울 뿐만 아니라 ‘중증 질환, 질병 치료 중심의 보험 제도’라는 건강보험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값비싼 신약 급여화를 기다리는 암 환자와 희소질환 환자들 사이에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탈모 급여화 시 재정 부담 최소 1조~3.6조원”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탈모 치료는 자가면역질환에 해당하는 ‘원형 탈모’, ‘지루성 피부염’ 등에 한정돼 있다.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로 인한 탈모는 치료 목적보다는 미용 성격이 크다는 이유로 ‘비급여’ 항목이다.
국내 탈모 인구는 약 1000만명에 이른다. 취업과 사회생활 과정에서 심리·경제적 부담을 겪는 청년 탈모인이 늘면서 건강보험 급여 보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대통령이 탈모를 ‘생존 문제’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배경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되나, 반론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재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2024년 탈모증 총 진료비는 389억5412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진찰료와 검사비 등을 포함한 의료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최근 5년간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11만5882명, 이 기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191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해 탈모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3만7617명이다. 10년 전인 2015년 20만8601명보다 약 14% 늘었다. 이는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에 따른 탈모 인구는 제외한 수치다.
전체 탈모 인구의 절반만 급여 대상으로 포함해도 연간 1조원 안팎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급여화로 인한 수요 확대 효과까지 반영할 경우,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따른 연간 재정 지출은 최소 1조원에서 최대 3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탈모약 시장 규모가 12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급여 전환 시 국가 추가 부담이 연 1000억원에 그칠 것이라는 일부 추산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상의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탈모는 치료 목적과 미용 목적이 혼재돼 있어 경계를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고, 재정 부담은 큰 질환”이라며 “적용 범위와 공적 재정 투입 규모, 본인 부담률 등을 모두 정해야 하고, 설령 추진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연구와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탈모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의견을 표한 바 있다.
고령화와 저출생 추세에 따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문제는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올해 기준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은 약 30조원 규모다. 작년 건강보험은 총수입 99조870억원, 총지출 97조3626억원으로 1조724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내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030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건강보험 제도 원칙 흔들어”…포퓰리즘 비판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상 탈모 급여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탈모가 공적 재정이 개입해야 할 질병은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중환자의학 전문의)는 “탈모는 생명이나 신체 기능을 위협하지 않는다”며 “생명과 직결된 질환을 우선 순위로 삼는 게 건강보험 제도의 원칙인데 이를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도 “탈모를 우선으로 급여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중증 질환과 희소 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우선 추진하는 것이 건강보험의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고 입장을 냈다.
대통령 지시로 탈모가 급여화 논의의 우선 대상이 된 것을 두고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이 대통령의 탈모 급여화 검토 지시는 국회를 드나들며 급여화를 호소해온 많은 중증질환 환자 가족과 의료진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치료 효과가 있어도 비급여라 못쓰는 약제가 여전히 많다”며 “난소암 환자에게 필요한 유전체 검사 비용도 아직 비급여”라고 말했다.
환자 단체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관계자는 “이미 병적인 탈모 치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희귀·난치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영유아를 비롯해 건강보험 적용이 절실한 다른 중증질환이 많다”고 호소했다.
탈모 급여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포퓰리즘”이라며 “대통령이 생중계되는 업무보고에서 탈모 급여화를 지시하는 것도, 여기에 복지부가 검토에 나서고 정부의 보건 정책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탈모 급여화를 반색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그는 “건보 재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탈모가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면 다른 질환 영역의 의료 자원은 축소되거나 급여화 기회에서 밀리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
2024년 탈모증 총 진료비 389억5000만원
복지부 “종합적으로 검토 중”
“유전·노화성 탈모 등으로 급여 확대 시 연 1조~3.6조원 재정 부담 불가피”
의료계 “건강보험 원칙 흔드는 것” 비판
[편집자주] 국민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사회 안전망인 의료보험 제도는 1977년 처음 시행됐다. 이후 점차 대상을 확대해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체계를 완성했다. 보장 범위는 병실료, MRI, 초음파 등으로 거듭 확대됐다. 하지만 재정 부담 증가와 형평성 논란도 함께 커지고 있다. 건강보험 제도를 둘러싼 주요 쟁점과 보장성 확대의 득과 실을 따져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건강보험 적용 확대 검토를 지시, 탈모 치료 급여화를 둘러싼 논쟁이 커지고 있다.
2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대통령발(發) ‘탈모 급여화’ 검토 지시에 보건복지부도 검토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보험료를 성실히 낸 청년층에게 탈모 등 필요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탈모 치료 급여 확대 검토와 함께 경증질환과 보상된 수가 조정, 과잉 의료 관리 등 건강보험 재정 절감 방안도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건 의료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탈모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키울 뿐만 아니라 ‘중증 질환, 질병 치료 중심의 보험 제도’라는 건강보험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값비싼 신약 급여화를 기다리는 암 환자와 희소질환 환자들 사이에서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탈모 급여화 시 재정 부담 최소 1조~3.6조원”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탈모 치료는 자가면역질환에 해당하는 ‘원형 탈모’, ‘지루성 피부염’ 등에 한정돼 있다.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로 인한 탈모는 치료 목적보다는 미용 성격이 크다는 이유로 ‘비급여’ 항목이다.
국내 탈모 인구는 약 1000만명에 이른다. 취업과 사회생활 과정에서 심리·경제적 부담을 겪는 청년 탈모인이 늘면서 건강보험 급여 보장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대통령이 탈모를 ‘생존 문제’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배경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되나, 반론도 커지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가장 큰 문제가 재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2024년 탈모증 총 진료비는 389억5412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진찰료와 검사비 등을 포함한 의료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최근 5년간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11만5882명, 이 기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191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한해 탈모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3만7617명이다. 10년 전인 2015년 20만8601명보다 약 14% 늘었다. 이는 유전적 요인이나 노화에 따른 탈모 인구는 제외한 수치다.
전체 탈모 인구의 절반만 급여 대상으로 포함해도 연간 1조원 안팎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이라는 추산이 나왔다.
김재연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급여화로 인한 수요 확대 효과까지 반영할 경우, 유전성 탈모 치료제 급여화에 따른 연간 재정 지출은 최소 1조원에서 최대 3조6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탈모약 시장 규모가 1200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근거로, 급여 전환 시 국가 추가 부담이 연 1000억원에 그칠 것이라는 일부 추산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 이상의 재정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탈모는 치료 목적과 미용 목적이 혼재돼 있어 경계를 설정하기가 매우 어렵고, 재정 부담은 큰 질환”이라며 “적용 범위와 공적 재정 투입 규모, 본인 부담률 등을 모두 정해야 하고, 설령 추진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연구와 검토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탈모 급여화는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의견을 표한 바 있다.
고령화와 저출생 추세에 따라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 문제는 이미 수면 위로 올라와 있다. 올해 기준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은 약 30조원 규모다. 작년 건강보험은 총수입 99조870억원, 총지출 97조3626억원으로 1조7244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내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2030년에는 누적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1월 4일 오후 공개한 15초 분량의 유튜브 영상. 당시 이재명 대선 후보는 탈모 공약과 관련해 제보를 받는다며 영상에 출연했다. /유튜브 채널 ‘재명이네 소극장'·조선DB
“건강보험 제도 원칙 흔들어”…포퓰리즘 비판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실상 탈모 급여 확대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 탈모가 공적 재정이 개입해야 할 질병은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허윤정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 교수(중환자의학 전문의)는 “탈모는 생명이나 신체 기능을 위협하지 않는다”며 “생명과 직결된 질환을 우선 순위로 삼는 게 건강보험 제도의 원칙인데 이를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도 “탈모를 우선으로 급여화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중증 질환과 희소 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우선 추진하는 것이 건강보험의 기본 원칙에 부합한다”고 입장을 냈다.
대통령 지시로 탈모가 급여화 논의의 우선 대상이 된 것을 두고도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익명을 요구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는 “이 대통령의 탈모 급여화 검토 지시는 국회를 드나들며 급여화를 호소해온 많은 중증질환 환자 가족과 의료진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치료 효과가 있어도 비급여라 못쓰는 약제가 여전히 많다”며 “난소암 환자에게 필요한 유전체 검사 비용도 아직 비급여”라고 말했다.
2025년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병용요법 암 환자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허지윤 기자
사진은 2021년 서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별관에서 네이버 면역항암카페 회원들이 ‘면역항암제 급여화 촉구’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허지윤 기자
환자 단체인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관계자는 “이미 병적인 탈모 치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희귀·난치성 질환을 갖고 태어난 영유아를 비롯해 건강보험 적용이 절실한 다른 중증질환이 많다”고 호소했다.
탈모 급여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포퓰리즘”이라며 “대통령이 생중계되는 업무보고에서 탈모 급여화를 지시하는 것도, 여기에 복지부가 검토에 나서고 정부의 보건 정책을 감시·견제해야 하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탈모 급여화를 반색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라고 비판했다.
그는 “건보 재정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탈모가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면 다른 질환 영역의 의료 자원은 축소되거나 급여화 기회에서 밀리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