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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등 판매점은 물론 법원 같은 공적 공간에서도 출입 거부
롯데백화점 사태 일단락된 듯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소엔 의문
노조 조끼를 착용한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이 지난 12월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당가에서 백화점 보안요원(왼쪽)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X(옛 트위터) 영상 갈무리
노조 조끼를 착용한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이 지난 12월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당가에서 백화점 보안요원(왼쪽)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X(옛 트위터) 영상 갈무리


[주간경향] “공공장소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에티켓을 지켜주셔야죠.”

지난 12월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백화점 식당가. ‘노조 조끼를 벗어달라’는 백화점 보안요원의 요청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반려견을 캐리어에 넣고 식당에 출입하는 것처럼 노조 조끼를 벗는 것도 에티켓’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했다. 노조 조끼 탈의가 사회에서 합의된, 당연히 따라야 할 행동 양식이 아니냐는 태도다.

롯데백화점이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내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가 해소됐는지에는 의문이 있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의 출입을 막은 곳이 롯데백화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나 서점 같은 판매점은 물론, 법원이나 KBS 같은 공적 공간에서도 출입을 거부당하곤 했다. 노조 조끼 탈의를 에티켓이나 매너로 보는 시선이 그만큼 만연하다는 얘기다. 노조 조끼를 이유로 거부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송 출연하러 왔는데 ‘조끼 벗어라’

김선영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지난 3월 KBS에서 노조 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로 출입이 가로막힌 경험이 있다.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현대차그룹의 차를 판매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조로, 정규직 영업사원들과 같은 일을 하지만 프리랜서처럼 취급돼 근로기준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지난해 12월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요구하며 국회 앞 천막농성 중이던 김 지회장은 12·3 불법 계엄이 선포되자 농성장에 있던 스피커 등을 활용해 광장에 시민들이 모일 곳을 만들었다. 그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KBS에 방문했지만, KBS 자회사 직원인 보안요원은 ‘노조 조끼 입고는 못 들어간다’며 제지했다.

김 지회장은 “‘공영방송이 출입을 통제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도 했다. 그래도 ‘절대 안 된다’더라. 결국 벗고 들어가서 다시 조끼를 입었다. 노조 조끼를 입고 계엄을 막았기에 인터뷰도 노조 조끼를 입고 했다. 나갈 때는 담당 PD가 출입문까지 배웅해줘서 조끼를 입고 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노조 조끼를 벗어야만 하는 합리적인 이유는 듣지 못했다.

매뉴얼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서광석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컨테이너지부장은 지난 5월 국회 앞 집회에 참석하고 KBS 건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화장실을 찾으려고 KBS 본관 앞을 서성이다 보안요원의 제지를 받았다. 이번에도 조끼가 문제였다. 보안요원은 ‘집회나 시위의 우려가 있다’, ‘금지된 물품이다’, ‘업무 매뉴얼에 그렇게 돼 있다’ 같은 얘기를 했다. 서 지부장은 “건물 안도 아니고 개방된 공간에서, 그것도 공영방송에서 복장이나 외모로 차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노동자를 불법 집회를 하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셈이다. 미국에서 흑인들 차별할 때 식당에도 못 들어오게 하던 거랑 뭐가 다른가 싶다. 2025년 한국사회의 모습이 맞느냐”라고 했다.

출입을 막는 사람도 노동자다. 그것도 원청 직원이 아니라 자회사나 용역업체 직원인 경우가 많다. 업무 재량이 거의 없고, 매뉴얼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김선영 지회장은 “보안요원이 ‘저도 힘들다.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사정사정하더라. 그 사람한테 뭐라고 해서 뭐하겠나. 시키는 사람이 잘못됐지”라고 했다.

롯데백화점 보안요원은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 등에게 노조 조끼 탈의를 요구하면서 “저도 노동자입니다”라고 했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식당가 입구부터 출입을 제지했다. 규정이 없으면 그렇게 했겠나. 기사가 나간 직후 롯데백화점 측이 해당 보안요원과 함께 거제까지 찾아와 사과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지침대로 한 하청노동자에게 책임 넘기는 거다. 보안요원 잘못이 아니니 불이익 주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의 출입을 제지했다. 보안요원이 ‘조끼나 뒤에 붙은 문구를 가리거나 떼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이마트의 한 지점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대학원생노조 조합원인 고태은씨는 “노조 조끼를 입고 장 보러 들어가는데 ‘조끼를 입으면 안 된다’고 했다. 제지받을 이유가 없었기에 그냥 들어갔다”고 했다.

조끼·리본 막을 수 있다는 대법원

이토록 만연한 배경에는 노조 혐오가 있을 것이다. 국가기관부터 노조 조끼를 불온시한다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법원이다. 2022년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서울남부지방법원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차 지회장은 판결문 발급을 위해 법원을 찾았다가 보안관리대의 제지를 받았다. 보안대원은 책자까지 가져와 “구호가 새겨진 조끼 등 집회·시위와 관련된 물품 착용한 경우 청사 출입을 차단한다”는 법원 내규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차 지회장의 법원 방문 목적이 분명했고, 집회 가능성은 없거나 낮았다며 서울남부지법이 차 지회장의 행동자유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차 지회장이 진정까지 제기한 건 법원의 조끼 탈의 요구와 그가 처한 상황이 무관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시 차 지회장은 해고자 생활 7년 차였다. 회사가 불법 파견으로 비정규직들을 사용해왔고, 부당하게 해고했다며 끈질기게 법정 다툼을 하는 와중이었다. 아사히글라스는 2015년 차 지회장 등 사내하청 노동자 178명을 문자 한 통으로 해고했다.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은 노조를 만들고 노조 조끼를 나눠 입은 지 한 달 만에 일자리를 잃었다. 차 지회장은 “노동조합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 아니냐. 그런데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됐다. 그 상황에서 해고자들이 믿을 것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밖에 없다.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할 법원까지 ‘노조 조끼를 벗으라’고 하니까,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이 회사나 법원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차 지회장은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사내하청 노동자가 아니라 아사히글라스 노동자가 맞다’는 판단을 받고 지난해 복직했다. 해고자 생활 9년 2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인권위 결정 이후에도 법원의 출입 제재는 최근까지 반복되고 있다. 김선영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올해 가을 재판을 받으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방문했다가 출입이 가로막혔다. 보안대원은 노조 조끼 뒤쪽에 적힌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문구를 떼야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고, 늦어지면 안 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문구를 안 떼면 출입이 안 된다고 하더라. 결국 문구를 떼고 들어갔다”고 했다.

실제로 문제가 됐던 법원의 내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법원 법원보안관리대 운영 및 근무내규’를 보면 집회·시위 관련 물품을 휴대하거나 리본, 구호가 새겨진 조끼 등을 착용한 경우에는 정문에서부터 출입을 불허한다고 돼 있다. 규정대로면 보안대원들이 노조 조끼뿐 아니라 세월호 리본 등을 착용한 사람의 출입을 얼마든지 제지할 수 있다. 노조 조끼를 적대할 수 있다고 최고법원이 공인한 셈이다.

차 지회장은 “노조가 법으로는 보장돼 있지만, 만들었다 하면 해고되고 탄압받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거라고 본다. 노조가 단체행동을 하면 시민 불편, 경제 악영향 등으로 호도한 언론의 문제도 있다. 그래도 롯데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걸 보면 세상이 바뀌긴 한 것 같다. 예전이라면 보도도 안 됐을 일이다. 이번 일이 노조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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