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명 당 5~8명 ‘초희귀 심장이소증’…의료진 8개월간 열정적 치료·보살핌
부모 “14차례 시험관 끝 가진 소중한 아기…포기 못해”
부모 “14차례 시험관 끝 가진 소중한 아기…포기 못해”
지난 7월 신생아중환자실에서 100일을 맞은 서린이와 엄마의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심장이 몸 밖에 나온 채 태어나 생사 기로에 놓였던 아기가 8개월간 국내 의료진의 열정적인 치료와 보살핌 끝에 건강을 회복해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100만명 당 5~8명 꼴로 발생하는 ‘초희귀 심장이소증’ 아기의 국내 생존 사례는 최초다. 90% 이상이 출생 전 사망하거나 태어나더라도 3일을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돼 이번 사례는 ‘생명의 기적’으로 받아들여진다.
17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생후 8개월의 박서린양은 지난 4월 임신 38주만에 심장이소증을 안고 세상에 나왔다. 아기의 심장 전체가 몸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채 뛰고 있었다. 심장을 보호할 흉골이 없고 가슴과 배의 피부 조직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아기가 울면서 힘을 줄 때마다 심장과 폐 일부가 몸 밖으로 밀려나왔고 폐 기능이 극도로 떨어져 자가 호흡으로는 생명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지난 4월 심장이 몸 밖으로 노출된 채로 태어난 서린이 모습.
하지만 서린이의 작은 심장은 몸밖에서도 힘차게 뛰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줬다. 국내에선 심장이소증 신생아의 생존 사례가 보고된 적 없고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어 참고할만한 해외 문헌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에게도 서린이는 3년간 14차례 시험관 시술을 거쳐 어렵사리 얻은 아이여서 결코 잃고 싶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임신 12주 산전 초음파 검사에서 심장이소증 진단을 받고 “생존율이 매우 희박하다”는 절망적 얘기를 들었지만 “서린이를 만나기까지 14번을 기다렸는데,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냐”며 마지막 희망을 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이후 ‘살릴 수 있다’는 의료진의 신념과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서린이는 엄마 뱃속에서 38주의 시간을 잘 버텨냈다.
병원 측은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성형외과, 소아심장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 다학제 협진을 가동하고 아기의 심장을 흉강 안으로 다시 넣고 가슴 부위를 배양 피부로 덮는 고난도 재건 수술을 시도해 성공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주변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심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든 뒤 다시 집어넣는 고난도 수술을 3차례 진행했다. 성형외과 김은기 교수는 외부 노출로부터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서린이의 피부를 소량 떼어내 배양한 뒤 흉부에 이식했다. 생후 2개월만에 심장이 제자리를 찾았지만 여전히 흉부는 뼈와 같이 단단한 구조물 없이 피부로만 덮여 있어 외부 충격에 취약했다.
이에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는 3D프린팅을 이용해 흉벽이 벌어지지 않게 양쪽 흉곽을 모아주는 맞춤형 보호대를 만들어 끼웠다. 재활의학과 의료진은 서린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자랄 수 있도록 재활 치료를 병행했다. 생후 100일쯤 서린이는 엄마·아빠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주었다. 몸 밖에서 뛰던 작은 심장은 이제 몸 안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었다. 건강을 회복한 서린이는 최근 퇴원해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12일 병원 외래 진료를 위해 찾은 서린이를 의료진이 살펴보고 있다.
서린이 엄마 이해연씨는 “서린이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의료진에게 감사드린다”며 웃어 보였다. 백재숙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는 “매순간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린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이 의료진에게 희망이 됐고 그 희망이 다음 치료 단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됐다”면서 “한걸음이라도 계속 내딛으려는 마음이 새로운 가능성과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희귀질환자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병원을 찾은 서린이와 엄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