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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 포스터. NEW 제공


강형철 감독(51)의 영화에는 철 지난 것들이 만드는 레트로한 감성이 묻어있다. 감독을 단숨에 유명하게 만든 첫 장편 <과속 스캔들>(2008)의 현수(차태현)는 잘 나가던 아이돌이었지만, 인기가 차츰 하락하며 라디오 DJ로 활동하는 인물이다. <써니>(2011)에선 아예 80년대 학교를 소환해 복고 열풍을 일으켰다.

기발한 이야기와 재치 있는 말맛으로, 투박한 배경마저도 그리운 구석으로 기억되게 하는 강 감독이 이번에는 ‘생활밀착형 히어로물’로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하이파이브>는 <스윙키즈>(2018) 이후 7년 만에 강 감독이 내놓은 신작이다. 장기기증을 받은 인물들에게 각기 다른 소소한 초능력이 생기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코믹 액션 활극이다.

강 감독은 지난달 언론 시사회와 2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정체성이 ‘오락 영화’인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현실에 발 붙이고 있는 동네형 히어로물”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히어로물’ 하면 떠오르는 마블이나 최근의 <무빙>처럼 ‘웹툰 원작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수 있지만, 이번에도 직접 영화 각본을 써온 강 감독의 오리지널 각본이다. 영화는 <과속스캔들> 때부터 강 감독과 함께 작업해 온 PD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해당 PD는 ‘초능력자로부터 장기 이식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로그라인을 제시하며 “중고등학생쯤 되는 여자아이가 언덕길을 빠르게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언급했는데, 강 감독은 단박에 “개성 있고 재미있겠다”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윙키즈>를 마치고 초고 집필에 들어갔다.

7년 만에 영화 <하이파이브>로 돌아온 강형철 감독. NEW 제공


<하이파이브>의 ‘완서’(이재인)은 심장을 이식받은 뒤 빠른 스피드와 괴력을 얻게 된다. 영화 속 요구르트 후레시 매니저 ‘선녀’(라미란)이 탄 전동 카트보다도 완서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 NEW 제공


발상의 시작이었던 ‘중고등학생쯤 되는 여자아이’는 배우 이재인(21)이 연기한 ‘완서’로 태어났다. 스매싱 펌킨스의 ‘I Am One’을 배경 음악으로, 산을 깎아낸 듯 끝없는 언덕을 뛰어오르던 완서가 능력을 깨닫고 환희에 찬 미소를 짓는 순간은 영화에서도 만화적인 호쾌함을 선사한다. 완서를 비롯한 오합지졸 초능력자 5명이 한데 모이며 티격태격 만들어 내는 코미디 장면은 웃음의 타율이 높다.

유독 말맛 있는 대사를 잘 쓴다는 평가를 듣는 강 감독은 대사를 쓸 때 “리듬감과 일상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친한 친구를 만날 때 편하게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이야기 하지 않나. 그런 일상성에서 오는 리듬을 생각한다”고 했다. 편집 과정에서도 음악과 컷 편집으로 그 호흡의 코믹함을 극대화한다.

이번 영화의 핵심 빌런(악인)은 명확하다. 췌장을 이식받은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이다. 그는 다른 초능력자들의 능력을 탐내며 그들의 장기를 노린다. 강 감독은 “직관적인 악당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신을 빙자한 사기꾼 만큼 겁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제가 생각하는 이 사회의 빌런인 ‘종교 빌런’을 캐릭터로 가져왔다”고 했다.

<하이파이브>는 소년 만화처럼 쾌활한 이야기에 라미란, 김희원, 안재홍 등 ‘티키타카’ 장인들을 한데 모았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배우 유아인이 5인방 중 한 명이란 점이다. 2021년 촬영이 완료됐지만, 유아인의 마약 파문으로 개봉일이 무기한 연기됐다.

강 감독은 유아인을 다 들어내기보다, 혹시나 불편할 수 있는 장면을 미세하게 편집하는 것을 택했다. 올해 초 개봉한 이병헌·유아인 주연의 <승부>와 유사한 선택이다. 강 감독은 “앙상블 영화이기에, 영화 외적인 이유로 편집하면 다른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가 다치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장기이식으로 각기 다른 초능력을 얻게 된 <하이파이브> 인물들. (왼쪽부터) ‘선녀’(라미란), ‘완서’(이재인), ‘지성’(안재홍)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NEW 제공


특히 베테랑들 사이에서 주인공 완서 역을 맡은 배우 이재인의 연기는 극에 신선함을 더한다. 지난달 29일 인터뷰에서 이재인은 “완서가 가진 밝음과 애처로운 면이 결국 사랑스럽게 느껴지길 바라며 연기했다”고 했다. 2010년대부터 아역배우로 활발히 활동해 온 이재인은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해 친구가 없던 완서가 성인 초능력자들과 연대를 쌓는 이야기에서, 유년기부터 촬영 현장에서 어른들과 지내는 시간이 길었던 자신을 떠열렸다고 한다. 그는 “지금껏 맡은 역할 중 저와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화 개봉이 미뤄지는 동안, 이재인은 후반 작업이 이뤄지는 편집실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강 감독은 일부러 편집실에 배우들을 초대했다고 한다. “세상에 이 영화가 꼭 나올 테니, 너의 노력이 휘발되는 게 아니라는 걸 중간중간 보여주고 싶었다”며 “영화 밖에서도 서로의 연대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재인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행복했다”고 했다.

<하이파이브>에서 ‘완서’ 역을 맡은 배우 이재인. NEW 제공


영화에는 ‘Put Your Head on My Shoulder’(폴 앵카)나 ‘We Are Family’(시스터 슬레지) 등 옛 명곡들이 자주 삽입된다. 이재인은 이런 요소들이 영화를 ‘힙하게’ 만든다고 봤다. “제 또래 친구들에겐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옛날 음악을 오히려 힙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이파이브 팀의 MZ세대로서, 이 영화에 제 또래들이 좋아할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강 감독과 이재인은 어렵게 개봉한 영화를 극장에서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어디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영화관에서 보면 놀이공원에서 체험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액션 타격감이 좋은 영화입니다.”(이재인) “축제를 즐기듯, 층간 소음 걱정 없이 발 구르시면서 보실 수 있도록 극장에 최적화되게 만들었거든요. 하이파이브 멤버들처럼, 서로를 응원하며 왁자지껄하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강형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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