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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활력, 정부는 경제 협력 요청
추모 분위기 속에서 회복 노력 불구
팔 겨냥 폭력은 ↑… "위협 우려" 호소
"화해 노력 없는 공격, 자멸할 것" 경고
이스라엘인들이 18일 예루살렘의 전통시장 '마하네 야후다'에서 빵을 사고팔고 있다. 예루살렘=김현종 기자


"이스라엘 사회가 얼마나 활력을 되찾았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대표적 전통시장인 '마하네 야후다'에서 지난 18일(현지시간) 만난 한 상인은 이스라엘의 회복력을 강조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쟁 개시로 급격히 얼어붙었던 일상이 최근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시장은 붐비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하네 야후다에서 차로 불과 15분가량 떨어진 아랍계 거주 구역 '살라아딘' 거리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가자지구 등 핵심 분쟁 구역과 멀리 떨어진 지역임에도 이스라엘 정부의 탄압과 폭력 위협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경찰이 부당하게 주민을 구금하는 사건도 잇따랐다.

치유 노력과 폭력이 공존하는 모습은 개전 19개월을 맞은 이스라엘 사회의 '두 얼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1,200명이 무참히 살해당한 '10·7 공격'으로 전례 없는 상처를 입었다고 항변하지만,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에 대한 국제사회 시선은 싸늘하다. 유럽 각국은 "폭력을 동반한 치유는 불가능하다"며 휴전 및 외교적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추모와 회복 사이

이스라엘 시민들이 지난 18일 예루살렘의 전통시장 '마하네 야후다'에서 장을 보고 있다. 예루살렘=김현종 기자


지난 18~20일 방문한 이스라엘 예루살렘 마하네 야후다 시장과 올드 시티 등 주요 거리는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곳곳에 붙어있는 '10·7 희생자 추모 스티커' 앞을 지날 땐 모두 숙연해졌지만, 이내 웃음과 활기를 되찾으려 애썼다. 외국인인 기자를 보고 "관광객 발길이 끊긴 이스라엘을 찾아줘 고맙다"고 인사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전쟁으로 무너진 경제를 일으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예루살렘 외무부 청사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난 아비브 에즈라 이스라엘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한국·이스라엘은) 잠재적으로 협력을 확대할 분야가 많다"고 강조했다. 한국 역시 북한이라는 안보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공통점이 있으며, 기술·과학·방위산업 등 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할 여지가 많다는 주장이었다. 전쟁 탓에 경제성장률이 반토막 날 것으로 전망되는 이스라엘의 '경제 협력 러브콜'인 셈이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니르오즈 키부츠를 기습 공격할 때 전소된 주택에 20일 희생된 거주자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니르오즈=김현종 기자


치유를 향한 갈망이 가장 큰 건 단연 10·7 공격의 직접적 피해자들이었다. 지난 20일 방문했던 가자지구 접경 니르오즈 키부츠에서는 하마스 공격에 불탄 주택을 철거하고 작은 와이너리를 만드는 작업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주민 400명 중 51명이 하마스에 살해되고 76명이 인질로 잡혀갔던 마을이 비로소 재건에 착수한 것이다.

마을 생존자인 올라 메츠거는 "생존자 모두 키부츠를 떠났지만 5~10명 정도는 마을을 들러 각종 일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하마스에 인질로 붙잡혔다가 지난 휴전 협상으로 풀려났던 주민이 니르오즈로 돌아와 10·7 습격 때 주인을 잃은 고양이들을 돌보는 모습도 보였다.

치유를 돕는 힘은 사랑과 연대였다. 380여명이 사망했던 '노바 음악축제' 생존자인 마잘 타자조(35)는 20일 극심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고 "열 살인 아들의 사랑 덕분"이라고 답했다. 고통스러운 생존 경험을 듣고 "엄마의 용기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주는 아들의 지지가 삶을 이어갈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평일이었던 20일에도 노바 음악축제 피해 현장에는 100명 가까이 되는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고통 심화하는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문제 관련 서점을 운영하는 아흐마드 무나가 18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지난 2월 9일 이스라엘 경찰관의 서점 습격 사건을 설명하고 있다. 예루살렘=김현종 기자


그러나 한편에서는 팔레스타인을 겨냥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지난 18일 방문했던 살라아딘 거리의 서점 '에듀케이셔널북숍'이 대표적 사례다. 1984년 팔레스타인 난민학교 교사가 문을 연 이 서점은 팔레스타인·아랍계 이스라엘인들에게 쉼터 같은 장소로 평가받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을 위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며 대화와 토론의 장 역할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서점을 운영 중인 아흐마드 무나(34)는 이 장소가 지난 2월 9일 이스라엘 경찰에 철저히 짓밟혔다고 한국일보에 말했다. 사복 경찰관 7명이 서점의 지점 두 곳을 일시에 습격해 자신과 삼촌 마흐무드(43)를 체포했고, 서적 300여 권을 무차별적으로 압수했다고 한다. "테러리즘을 선동한다"는 게 이스라엘 정부가 밝힌 이유였지만, 결국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했다. 아흐마드와 마흐무드는 구금 이틀 만에 닷새간 가택연금 및 3주간 서점 출입 금지를 조건으로 풀려났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서점 '에듀케이셔널북숍' 지지자들이 지난 2월 9일 이스라엘 경찰에 체포된 아흐마드 무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다음날인 10일 책방에 모여있다. 예루살렘=로이터 연합뉴스


아흐마드는 한국일보에 "당시 이스라엘 경찰은 내용도 모른 채 표지만 보고 책을 쓰레기 봉지에 쓸어 담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야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구금 사건이 알려진 이후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이 서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며 "이에 자극받은 다른 극단주의자들이 물리적 공격을 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충격적인 문화 공간 탄압에 이스라엘 주재 외국 공관들의 항의가 쏟아지기도 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폭력이 가장 심각한 곳은 단연 남부 가자지구 접경 지역이었다. 20일 방문한 이스라엘 남부 스데로트에서는 멀리 가자지구에서 솟아 오르는 검은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지난 17일 가자지구 점령 작전 '기드온의 전차'를 개시한 이스라엘군이 전방위 공세를 퍼부었다는 신호다. 니르오즈에 머물던 시간은 불과 한 시간이었지만 가자지구에서 울리는 포성을 수십 차례 들을 수 있었다.

가자지구 상공에 20일 이스라엘군 공격에 따른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 접경 지역 스데로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스데로트=김현종 기자


피해는 참혹하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20일 가자지구 의료진을 인용해 "지난 9일간 이스라엘군 공격에 최소 500명이 사망했다"며 "어린이가 있는 주택 및 피란민 캠프도 공격받았다"고 전했다. BBC는 20일 "30분 만에 가자 주민 최소 38명이 사망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스라엘방위군(IDF) 관계자는 20일 한국일보에 "(민간인 피해는) 불행히도 전쟁 비극의 일부"라고 말했다. 자국군은 최선의 민간인 보호 조치를 하고 있으며, 하마스가 가자 주민을 '인간방패' 삼고 있으므로 피해는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IDF 관계자는 "10·7 공격 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공존 가능성을 믿지 않게 됐다"고 강조했다.

"폭력의 논리, 자멸로 이어질 것"

이스라엘 병사들이 20일 가자지구 북부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향한 폭력은 결국 이스라엘도 좀먹을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이자 홀로코스트(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 권위자인 오메르 바르토프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지난해 8월 가디언 기고를 통해 "(전쟁 일변도 태도는)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자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한 적 있다.

그는 '10·7 공격에 따른 안보 트라우마'를 이유로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문제 삼았다. 바르토프 교수는 "이스라엘인들은 분노와 두려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안보를 재구축하겠다는 욕망과 협상·화해에 대한 완전한 불신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이는 (가자) 인구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게 하는 폭력의 논리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예루살렘·니르오즈·스데로트=김현종 기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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