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결혼 피로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지 상관없이 누구든 평등합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미국처럼 나아갔으면 하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보수적인 나라죠. 79년을 여기서 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혼 피로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배우 윤여정이 19일 이렇게 말했다. “게이냐, 스트레이트냐,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 흑인이냐, 황인이냐 하는 카테고리를 만들고 레이블을 붙이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며 말을 마친 그는 내렸던 마이크를 다시 집어 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요.”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섹션에 초청받은 미국 영화 <결혼 피로연>(앤드루 안 감독)은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영주권 문제로 위장 결혼을 계획하며 생기는 일을 유쾌하게 담았다. 윤여정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 눈치 100단 ‘K-할머니’ 자영 역을 맡았다.
<결혼 피로연>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1993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이안 감독의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기반의 한국계 미국인 감독 앤드루 안이 연출했다. 원작은 대만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으나 리메이크작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가족으로 바뀌었다.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그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 <미나리>(2021)에 이어 다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애들(감독들)이 미국에서 자라서 이렇게 하는 게 신통하고 대견스럽더라. 내가 한 파트를 할 수 있다면 도와주자” 싶었다고 했다.
윤여정은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한 지난 4월 외신 인터뷰에서 “큰 아들이 2000년에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고, (미국) 뉴욕이 동성혼을 합법화했을 때 거기서 그의 결혼식을 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영화에서 손자에게 말하는 대사인 ‘(네가 누구든) 너는 내 손자야’라는 말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주인공 민의 어머니 역할을 제안받았으나, 민 역할을 맡은 배우 한기찬이 20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윤여정은 앤드루 안 감독에게 “이건 너무 한 것 같다. 난 할머니 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엄마건 할머니건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는 건 같을 것”이라면서도 “부모일 때는 애를 똑바로 교육하려는 임무감 때문에 야단치는 걸 많이 하는데, 할머니가 되면 너그러워지더라. 멀리서 ‘잘만 건강하게 커 주면’ 하게 된다. 그런 생각이 역할에 묻어났을 수는 있다”고 했다.
앤드루 안 감독(왼쪽부터), 배우 윤여정, 한기찬이 19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결혼 피로연’ 야외무대인사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여정은 미국에서 자란 앤드루 안 감독이 경험한 한국인 부모님과 자신이 경험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는 “제가 독립영화류를 선택하는 건, 감독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냐’는 질문에 윤여정은 예의 시니컬한 말투로 “보시는 분 마음이지, 제가 어떻게 말하겠냐”면서 “전형적인 질문을 주시면, 전형적인 사람이 못 되기 때문에 (대답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작은 힌트를 덧붙였다.
“영화는 남의 인생 이야기잖아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하고 보시면 될 일 아니겠나요.”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두 동성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결혼 피로연>은 영화제 기간인 20일과 22일 부산에서 한 차례씩 상영된다. 이후 24일 국내 정식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