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종묘장에서 키우고 있는 일본잎갈나무
우리가 산에 가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는 '소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산림 면적의 20% 이상을 차지해, 단일 수종으로는 가장 많습니다.
정부가 1970년대부터 산림 녹화정책을 펼치면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이유로 전국 각지에 소나무를 많이 심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소나무의 송진이 불에 잘 타는 데다, 건조한 봄에도 솔잎이 붙어 있기 때문에 산불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올해 영남 지역 산불 등 잇따른 대형 산불에서도 소나무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또, 소나무를 집단 고사시키는 재선충 문제까지 겹치면서 소나무를 다른 나무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소나무 빈자리, '일본잎갈나무'가 차지
그렇다면 소나무의 빈자리, 어떤 나무가 채우게 될까요?
KBS가 국회 농해수위 윤준병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유 양묘장 자료를 분석해 보니 '일본잎갈나무'가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잎갈나무는 이른바 '낙엽송'으로 불리는 침엽수로,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산림 녹화 과정에서 많이 보급된 외래종입니다.
국유 양묘장 조림 사업용 묘목 생산 현황을 보면, 2015년 224만 그루였던 '일본잎갈나무'는 2024년 397만 그루로, 백만 그루 이상 늘어났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묘목 가운데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49.3%에서 21.7%로 감소했고, 일본잎갈나무의 비율은 23.8%에서 50.8%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전체 묘목 중 토종(자생종) 나무의 비율은 65.2%에서 32.2%까지 떨어졌고, 일본잎갈나무를 비롯한 외래종은 34.7%에서 67.7%로 급증했습니다.
일본잎갈나무의 잎
■ "경제성·조림 편의성' 등 장점"…"비효율·다른 식물 생장 방해"
국유 양묘장을 관리하는 산림청은 일본잎갈나무 보급을 늘리는 이유에 대해 "제재목 활용 등 경제적 가치가 높아 산업계가 선호하고, 척박한 산지에서도 생장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침엽수 중에서는 산불에 강한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올해 1분기 국산재 원목 시장 가격 기준으로 일본잎갈나무(낙엽송)의 1㎥당 가격은 14만 원가량으로 고급 수종인 편백이나 잣나무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일본잎갈나무의 경제성이 실제로는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겁니다. 나무를 심고, 관리하고, 벌목하기까지 40여 년이 걸리는 데 그 비용을 생각해 보면 경제성을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일본잎갈나무'는 시장에서 1헥타르당 평균적으로 140만 원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는데, 이 140만 원짜리 목재를 만들기 위해서 세금이 4,000만 원 넘게 들어간다"고 비판했습니다.
윤여창 서울대 산림과학과 명예교수도 "순수한 경제성 기준으로 보면 일부 지역의 '일본잎갈나무' 조림이 다른 수종에 비해 못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국가의 재정 지원이 없을 경우에는 경제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태백산국립공원의 일본잎갈나무숲
조림 편의성 등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홍석환 교수는 "일본잎갈나무는 낙엽이 나무 주변 바닥에 쌓이면 '타감 작용'으로 인해 다른 수종들이 싹을 틔우기가 힘들다"면서 "주변이 비어 있는 데다가 나무가 굉장히 높게 자라기 때문에 가운데 중간 공간이 비어있어서 산불이 났을 때 확산 속도가 빠르다"고 밝혔습니다.
타감 작용은 식물이 내뿜는 화학물질 때문에 주변 다른 식물의 발아와 성장이 억제되는 현상입니다. 이와 관련해 "일본잎갈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은 낮은 광투과율과 타감 작용으로 인해 생물종 다양성을 저하시키는 등의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최송현 외, 「국립공원 내 일본잎갈나무림의 식생 구조」, 환경생태학회지.)
일본잎갈나무숲
■"다양한 수종 섞어야 숲의 가치↑"
숲에서 일본잎갈나무와 같은 특정 수종이 다수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윤여창 명예교수는 "생물 다양성은 생태계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공익'"이라며, "다양한 수종을 섞은 숲을 육성하는 것은 공익에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양한 나무를 섞어서 심을 때 이같은 공익적 생태 서비스가 증가하는데, 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보상도 없기 때문에 일본잎갈나무처럼 쉽게 베어내서 쓸 수 있는 외래종을 선호하게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70~80년대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 빨리 국토 녹화를 해야 하는 절박함에 외래종이라도 심어 녹화를 했지만, 최근 상황이 전혀 달라졌음에도 우리 산에 외래종을 심는 것은 생물 다양성 측면을 외면한 안타까운 행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외래종 중심의 일률적인 조림은 재난에 매우 취약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산과 숲에 우리 종자, 우리 종의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산림 분야 국가 경쟁력의 핵심인데 그런 것을 게을리 한 것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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