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산업통상자원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 정부의 디지털 규제 법안 추진에 대한 불만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FTA 공동위) 연례 회의를 취소했다는 미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차별적이라고 판단하는 디지털 관련 법안을 한국이 추진하는 것을 이유로 들어 USTR이 전날 열릴 예정이었던 FTA 공동위 비공개회의를 취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는 한·미 관세협상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한국이 디지털 분야를 비롯해 여러 우선 과제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디지털 정책에 대한 “일부 견해 차이”로 인해 회의가 내년 초로 연기됐다고 전했다. 그는 “회의 연기는 양측 모두 회의 한 번으로 이러한 차이를 해결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인정한 것을 반영한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가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대가로 미국 기업에 불리한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는 ‘한·미는 망 사용료 및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률 및 정책 측면에서 미국 기업이 차별받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하고, 위치정보·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을 촉진하기로 했다’고 쓰여 있다.
미국이 우려하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는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횡포를 막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 등에 대한 입법 추진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온플법 추진에 미국 재계뿐 아니라 의회까지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앞서 지난 16일 미 하원 법제사법위원회 청문회에서도 한국의 온플법 추진을 성토하는 의견들이 쏟아진 바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 반독점소위 위원장은 “유럽연합의 미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규제가 한국 등 동맹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미국의 혁신을 모방한 다음 그러한 혁신을 만들어낸 (미국) 기업을 규제해 없애버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USTR도 이날 X에 “EU와 EU와 유사한 디지털 규제를 추진하는 나라들에는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정부는 한·미 간 사전 의제 조율 과정에서 FTA 공동위를 연기하기로 합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연내 하기로 했었지만, 디테일(세부적인) 부분에서 양측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년 초 정도로 일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USTR의 이번 FTA 공동위 연기가 미국 상장기업인 쿠팡 등에 대한 한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는 “USTR과의 협상 과정에서 한·미 FTA 공동위를 연기하기로 한 결정과 최근 쿠팡 정보 유출 건은 무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