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성 지원으로 상권 활성화 등 눈에 띄는 변화
올해 총 10곳 시행···지속가능 조건은 ‘재원’
궁극적으로 소멸 지연 위해선 다방면 정책 있어야
가장 밀접한 관련 있는 ‘일자리’ 확대 필수
올해 총 10곳 시행···지속가능 조건은 ‘재원’
궁극적으로 소멸 지연 위해선 다방면 정책 있어야
가장 밀접한 관련 있는 ‘일자리’ 확대 필수
지난해 12월 30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행정복지센터에 ‘농어촌 기본소득 ’ 신청을 지원하는 창구가 마련돼 있다. 이호준 기자
[주간경향]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동네 분위기인 것 같아요. 사람들의 표정이나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거리도 생기있게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지난해 12월 30일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김희숙 주무관은 ‘농촌기본소득’ 지급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 질문에 가장 먼저 이렇게 말했다. 청산면은 경기도에서 실시한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2022년부터 주민 전체에게 1인당 매달 15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급하고 있다.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은 소멸위기에 놓인 농촌 지역에 기본소득을 지급함으로써 지역 사회와 정주 인구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사업이다.
2022년 사업 시행 전 3400여명 수준이던 청산면 주민은 기본소득 지급이 시작된 그해 말 4200명까지 늘었다가 현재 4000명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다. 청산면이 속한 연천군은 2026년부터는 국책 시범사업인 ‘농어촌 기본소득’ 실시 지역으로 선정돼 2027년까지 같은 금액의 기본소득을 지원받는다.
김 주무관은 “인근 지역과 비교해보면 인구 감소가 더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 특히 노인들의 생활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역화폐가 지급되는 매달 말일 즈음에는 특히 마을이나 거리의 분위기가 확 바뀐다”며 “노인들이 절약하고 안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자녀들에게도 더 잘 쓰게 되니 자녀들도 더 잘 찾아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인구 늘고 상권 살아나
소멸위기에 놓은 농어촌 지역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올해부터 시작된다. 시범사업 대상지역으로 선정된 지역 주민들은 올해부터 2027년까지 2년간 매달 15만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지원받게 된다. 대한민국 소멸의 전초 단계인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한 ‘현금성 지원’이라는 초유의 도전이지만, 지원 대상 선정과 효과, 지속가능성을 두고는 전문가들조차 전망이 엇갈린다.
국책 사업으로 시행되기 이전 지자체 자체 시범사업으로 지난 4년간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실시한 연천군 청산면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만족도나 상권 활성화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인구 증가라는 통계적 성과 외에도 점심시간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중심으로 식당들이 붐비고, 대로변을 따라 신축·보수 공사가 여럿 진행되는 등 눈에 보이는 변화도 적지 않았다.
청산면에서 카페를 운영 중인 김혜옥씨는 “기본소득이 있고 없고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면서 “가족 수를 생각하면 적은 돈이 아니고, 또 지역화폐로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게 되니까 지역 경기가 확실히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보는 어르신들이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고, 식당을 찾는다. 당장 이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가 대단하다”면서 “개인적으로도 기본소득을 써야 하니 멀리 장 보러 가지 않고 동네 마트를 이용하게 되니 점점 슈퍼도 좋아지고 물건도 많아지게 되면서 멀리 나가는 일도 줄었다”고 호평했다.
청산면 이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어담 궁평1리 이장은 “사람들이 늘었으니 가게들이 새로 들어서고 마을이 활기차졌다”면서 “식당은 물론 미장원 같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가게들이 생기니까 마을을 떠나야 할 이유가 더 줄어들고 인구가 더 줄지 않는 긍정적인 일이 계속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 부대 ‘캠프 캐슬’ 인접 지역으로 한때 8000명에 육박하는 주민이 거주했던 청산면은 미군 부대 이전 이후 상권이 쪼그라들면서 2020년 이후 전성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주민만 남아 있다. 한때 전체 학생 수가 1000명에 가까웠던 궁평초등학교와 초성초등학교도 학생 수가 줄어 폐교 위기에 놓였다가 농촌기본소득 도입 직후 학생 수가 늘며 소멸위기 극복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어 이장은 다만 “정부에서 농촌 사람들이 떠나지 말고 더불어 살라는 취지에서 농촌기본소득을 했는데 이걸 계속해서 줄 수 있을까. 또 이렇게 계속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사업이 끝나기 전에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이 계속 정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게 정부가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농촌인구가 없어지고 결국 도시로 몰려가 도시도 황폐화해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3일 경기 연천군청에서 열린 기본소득 현장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핵심은 재원, 궁극적으론 일자리와 정주 여건
올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지역은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장수, 전남 곡성·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충북 옥천 등 모두 10곳이다. 이 가운데 옥천과 장수, 곡성은 선정에서 탈락한 뒤 지역 반발이 거세지자 추가로 대상 지역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지역주민에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예산은 국비 40%, 시·도비 30%, 군비 30%로 책정됐는데, 2026년 국비 예산은 2340억원 수준이다.
시범사업은 그 성과를 평가해 본사업 편성의 지침이 되는데 늘 그렇듯 이번에도 관건은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언제까지 지원할 것인가’였다. 당장 재정 상황이 열악한 기초지자체인 군은 국비와 시·도비 비중 확대를 요구했고, 시·도에서 난색을 표하면서 예산을 두고 막판까지 진통이 이어졌다. 결국 기존에 선정된 7개 군을 기준으로 도가 사업비의 30%를 지원하는 곳은 경기 한 곳뿐이다. 시범사업에서조차 예산 확보를 위한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본사업 시행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박진도 충남대 명예교수(국민총행복 전환포럼 이사장)는 시범사업과 관련해 “지역 선정부터 잘못됐다. 재원도 전액 국비로 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방재정이 투입되다 보니 시·도 지자체장은 면과 읍을 차별할 수 없고, 결국 군 단위 지원이라는 잘못된 출발을 하게 됐다”며 “지역 내에서도 읍과 면의 격차가 심하고 지역소멸 대부분을 상대적으로 열악한 면이 차지하는데, 군 단위로 지원 지역을 묶게 되면서 읍으로의 흡수만 가속화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 1조원에 지역상생기금 8000억원, 여기에 일부 중앙정부 지역예산 구조조정만 해도 3000명 이하의 면 단위 주민은 전액 국비로 기본소득을 지원할 수 있다”면서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이 정도는 당장 정부가 쓸 수 있고, 추가로 지금보다 2배(3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주게 되면 효과적인 지역소멸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중앙·지방정부의 한정된 예산을 고려해 기본소득을 전액 재정 지원하는 기본소득보다는 지역 내 소득원을 공동개발해 주민들과 공유하는 주민참여형 이익공유 모델을 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재생에너지의 발전이익을 지역화폐 형태로 주민들과 공유하는 신안군의 ‘햇빛·바람 연금’이 대표적인 사업모델이다. 신안군은 발전이익 공유를 통해 주민 1인당 분기별 10만~60만원, 연간 최대 240만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도입 첫해인 2023년 말 3만8037명인 주민이 올 11월 기준 4만명 수준으로 늘었다. 이 같은 성과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신안군의 ‘햇빛연금’ 담당 국장을 국무회의 중 크게 칭찬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런 현금성 지원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와 정주 여건 등이 마련되지 않는 한 지역소멸 지연 효과는 한시·제한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행정대학원)는 “시범사업을 설계할 때 대상의 선정, 효과, 그 효과 측정의 방법이 면밀하게 설계해 시작해야 하는데, 한국은 일단 하고 보자는 식의 정치적인 어젠다로 밀어붙이고 보는 경향이 크다”면서 “인구 이동이 단순히 인접 지역 인구의 재배치인지, 실제로 정주 인구가 늘어난 것인지 어떤 연령대가 늘었는지 등 사후적으로 정책의 효과를 면밀하게 살펴보고 본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지역소멸은 지역 일자리 소멸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재정지원이 기대만큼 정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결국 지역소멸 방지를 위해서는 RE100을 고리로 경기 용인 클러스터 2단계, 3단계를 호남, 영남권으로 이전하는 식으로 큰 공장들, 누구나 가고 싶은 공장들이 지방에 가도록 유도해 일자리를 지방으로 보내는 정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