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이사가 증인선서문을 최민희 위원장에게 전달한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법인 대표가 30일 국회 청문회에서 의원들 질의에 “비정상적”이라며 반발하거나 동문서답식 답변을 이어가면서 논란을 키웠다. 손으로 책상을 치며 불쾌감을 표시하는가 하면, 국회 동시통역이 아닌 개인 통역사 도움을 받겠다고 고집하면서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쿠팡의 실질적 지배자인 김범석 쿠팡아이엔씨(Inc·쿠팡 미국 법인) 이사회 의장이 외국인 대표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반쪽 청문회’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로저스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쿠팡 사태 관련 청문회에서 전날 쿠팡이 발표한 보상안(1인당 5만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 지급)에 대해 “저희 보상안은 약 1조7천억원에 달한다. 전례가 없는 보상안”이라고 자평했다. 쿠팡이 제시한 보상안 가운데 실제 쿠팡에서 물건을 사는 데 쓸 수 있는 금액은 5천원뿐이고, 나머지는 여행·명품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어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보상액 규모가 크다고 강변한 것이다.
로저스 대표는 지난 17일 청문회에 이어 이날도 동문서답식이거나 방어적이고 반복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김범석 의장의 책임을 묻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에 “저는 쿠팡 한국의 대표로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그는 17일 청문회에서도 “김 의장이 왜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는가”라는 질의에 “이 자리에 오게 돼 기쁘다”고 말하는 등 동문서답한 바 있다.
그는 쿠팡에서 일하다가 2020년 숨진 장덕준씨 과로사와 관련해 김 의장이 노동 강도를 축소하도록 지시했다는 한겨레 보도 등을 두고서도 “문서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노동시간이 주 60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자가 2500명에 이르는 만큼 야간 노동을 줄여야 하지 않느냐는 질의에는 “야근 근무가 주간 근무보다 힘들다고 하는 증거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답변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로저스 대표는 “한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거나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동시통역기 사용을 두고는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 위원장은 “(로저스 대표가 대동한 통역사가) 핵심적인 내용을 윤색해 통역했다”며 국회가 준비한 동시통역기 사용을 요구했다. 이에 로저스 대표는 “저는 제 통역사를 쓰겠다”며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이의제기하겠다”고 항의했다. 최 위원장이 “국회가 결정한 동시통역 시스템을 통해 국회의 의사를 그대로 들어야 할 의무가 증인에게 있다”고 하자, 로저스 대표는 왼쪽 귀에 동시통역기를 착용하고, 오른쪽 귀로는 개인 통역사와 소통하며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최 위원장은 “김범석씨는 왜 한국말의 함의를 모르는 사람을 내세워서 이런 장난질을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 유가족들이 참석해 산재 은폐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등을 눈물로 호소했다. 지난달 제주에서 쿠팡 새벽배송 중 숨진 오승용씨의 누나는 “고작 34살이었던 동생에겐 두 아이가 있다. 8살인 첫째는 중증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데, 승용이의 죽음으로 동생 가족의 생계가 막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로저스 대표는 “정말 죄송하다.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지만, 공식적인 사과와 산재 인정을 요구하는 오씨 누나의 말에는 “현재 논의 중”이라는 말만 거듭했다. 이와 관련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재해에 상당히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처리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