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실종가족 옆 지킨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
개구리 소년 다룬 영화 '아이들' 제작팀에 정보 제공
[서울경제] 실화 기반 영화, 드라마, 책 등 콘텐츠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다양한 작품 속 실제 인물들을 ‘리캐스트’하여 작품에는 미처 담기지 못한 삶과 사회의 면면을 기록하겠습니다. <편집자주>개구리 소년 다룬 영화 '아이들' 제작팀에 정보 제공
개구리 소년을 찾는 전단지. 김수호 기자
1991년 어느 여름날이었다. 인천 월미도에서 각설이 타령을 부르던 나주봉(68)씨의 귀에 애끓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아이들 좀 찾아주세요.” 뉴스에서만 보던 ‘개구리 소년’ 부모들이 실종 아동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었다. “저도 한 움큼 받아볼 수 있을까요? 공연하면서 나눠주게요.” 그 물음을 시작으로, 나씨의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던 나씨는 이후 3년이 넘도록 개구리 소년 부모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전단지를 돌렸다.
과거 나주봉씨가 개구리 소년을 찾는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나주봉씨
또 다른 실종아동 부모들도 나씨를 찾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아이도 찾아달라’며 건네받은 전단지가 하나둘 쌓이더니 280명 정도 됐죠.” 모른 체할 수 없었던 나씨는 2001년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전미찾모)’을 결성해 수많은 실종자 가족의 지원군이 돼줬다. 2002년 대선 기간에는 노무현·이회창 후보자들의 공보물 뒷면에 40명 가까운 실종 아동의 사진·이름·특징 등을 실었다. 그 한 해 동안 나씨 덕분에 집으로 돌아간 실종자는 150명에 달한다. 나씨는 실종가족들과 관련 문제를 꾸준히 공론화해 법적·제도적 기반도 마련했다. 2005년에는 ‘실종아동법’(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실종 아동 대응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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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선 안 될 ‘아이들’
영화 '아이들' 스틸컷. 사진 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저만큼 개구리 소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1991년부터 지금까지 800여명의 실종자를 찾았다는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을 만나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씨는 해당 사건을 다룬 영화 ‘아이들’(2011) 제작에도 자문을 제공할 정도로 아는 바가 많다.
‘개구리 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 사건은 1991년 3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도롱뇽 알을 줍겠다며 와룡산으로 향한 대구 국민학생 5명(김영규, 김종식, 박찬인, 우철원, 조호연)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과 나씨는 5명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실종된 지 11년이 흐른 2002년 9월 아이들은 주검으로 돌아왔다. 유골 4구와 신발 5켤레가 대구 달서구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자 경찰은 ‘저체온증에 따른 사망’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검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명백한 타살’이라고 결론지었다. 유골 발견 후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2015년 7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며 폐지됐다.
지난 2024년 3월 26일 열린 개구리 소년 33주기 추모제. 사진 제공=나주봉씨
나씨와 유족들은 매년 3월 26일 와룡산에서 추모제를 열고 있다. 나씨는 “추모제라도 열지 않으면 영원히 잊혀질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나씨는 최근 DNA 대조를 통해 20년 만에 특정된 신정동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사례를 언급하며 “경찰이 AI 등 첨단 과학수사기법을 활용해 개구리 소년 사건의 진실을 찾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 청량리역에 위치한 전미찾모 사무실에서 만난 나주봉씨. 김수호 기자
◇'성인실종법' 제정 촉구 =
여전히 전미찾모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나씨는 “요즘은 성인 실종자를 찾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실종 아동보다 실종 성인이 더 많은 만큼 ‘성인실종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종 사건 발생 시 만 18세 미만 아동,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에 대해서는 위치추적 등 적극적인 수사가 가능하다. 그러나 18세 이상 성인이 실종됐을 경우엔 가족과의 DNA 확인 및 비교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CCTV 확인 절차도 까다로워 수사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2023년 기준 성인 실종자는 7만4847명으로 같은 해 아동 실종자 2만5628명보다 약 세 배 많았다. 성인실종법은 국회에서 수차례 발의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번번이 폐기됐다.“실종 사건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할 거예요. 한 살이 됐든 백 살이 됐든, 대한민국 국민이 사라지면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사무실 벽을 가득 메운 실종자들의 얼굴 앞에 선 나씨의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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