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1번지’로 모이는 절박한 바람들
고(故) 뚜안씨의 아버지 부반숭(48)씨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망에 대한 정부 사과 진상규명 강제 단속 중단을 촉구하며 108배를 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효자동 청와대사랑채 앞, 종소리에 맞춰 부반숭(48)씨가 108배를 시작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청와대 건물이 바라보이는 곳에서 황토빛 방석 위로 두 무릎을 내려놓고 몸을 굽히는 부씨의 조끼에는, 정부의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을 피하다 지난 10월28일 추락사한 딸 뚜안(가명·25) 죽음의 책임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투쟁을 힘내서 할 수 있도록, 잘 풀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착하고 예쁜 딸이었는데… 대통령께서 이 죽음에 대해서 밝혀주면 좋겠습니다.” 30분 남짓 108배를 마친 부반숭씨가 대통령이 있을 청와대를 등 뒤에 두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대통령께서 국민을 위해서 일을 잘하시는데 이주노동자들도 돌아봐 주면 좋겠다. 밑바닥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살기 덜 힘들도록 제도개선을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부터 청와대 출근을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절박한 바람도 대통령실이 있던 용산에서 종로구 효자동 1번지 청와대 주변으로 옮겨오고 있다. 고 뚜안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대구경북 대책위원회는 이날 108배를 시작으로 오는 30일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다음 주에는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마련했던 농성장을 청와대 근처로 옮기기로 했다. 이들은 뚜안 사망에 대한 정부의 공식 사과와 진상규명,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단속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부씨의 108배가 이어진 정오 무렵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청와대 지부 노동자들이 삼보일배로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청와대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청와대가 일반 대중에 개방된 기간에 안내, 청소 등을 담당했던 용역업체 소속으로, 고용보장을 촉구하며 지난달부터 기자회견 등을 이어가고 있다. 손승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 조직부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200명을 해고하고 청와대에서 일을 할 건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이 문제를 해결한 대통령으로 일을 할 건지 (결정할 시간이) 3일 남았다”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관저로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청와대분회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인근에서 삼보일배를 마친 뒤 고용보장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조해영 기자
일찌감치 농성장을 청와대 인근으로 옮긴 곳도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케이피에스(KPS)비정규직지회는 지난달 용산에서 시작한 농성장을 성탄절이었던 25일 청와대사랑채 근처로 이동했다. 이들은 지난 6월 끼임 사고로 숨진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노동자 김충현씨를 추모하면서 한전케이피에스가 직접 고용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한전케이피에스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다는 것이 이들 설명이다. 국현웅 조직국장은 “청와대 인근으로 오니 경비가 더 삼엄해졌다. 비를 피할 수 있는 가림막도 설치하게 어렵게 됐다”면서도 “대통령이 청와대로 온 만큼 여기서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