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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10나노급 D램 600여 개 공정과 설비 정보
인터폴 적색수배도 소용 없어... 中 비자 연장
연봉 2~4배... 자녀 국제학교 지원

검찰이 발표한 10나노급 D램 기술 유출 사건을 재구성한 가상 일러스트. /제작=챗GPT
검찰이 발표한 10나노급 D램 기술 유출 사건을 재구성한 가상 일러스트. /제작=챗GPT

2015년 어느 날,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동의 불은 평소처럼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연구원 A씨의 손이 유난히 분주해진 것도 그날이었다. 모니터에는 ‘10나노급 D램 공정 정보’가 떠 있었다. 파일을 복사하거나 USB를 꽂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A씨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을 택했다. 펜 끝을 눌러 작은 글씨로, 조심스럽게 한 줄 한 줄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600단계에 달하는 D램 제조 공정. 각 공정명과 설비 정보, 조건값까지 담긴 이 자료는 업계에선 ‘PRP(Process Recipe Plan ·공정작업계획)’라고 불린다. 돈으로도 시간을 들여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A씨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적었다.

그가 사용한 것은 삼성전자가 직원들에게 지급한 평범한 수첩이었다. 겉보기엔 업무 메모처럼 보였고, 보안대의 의심을 자연스럽게 피했다. 가장 위험한 정보를 가장 평범한 모습으로 빼돌린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현재 금속 물질이 포함된 특수 종이를 사용해 보안대에서 탐지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시간이 흐른 뒤 A씨는 2016년 삼성전자 부장 출신으로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개발실장로 근무하던 B씨에게 수첩을 건넸다. 반도체 공정기술은 설계처럼 인재 영입만으로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수년간 양산을 돌리며 오류를 잡고 수율을 끌어올리는 축적의 기술이다. 신생 반도체 업체의 성패 역시 설계가 아니라 공정기술이 좌우한다. 검찰 관계자는 “유출된 노트가 상당한 양”이라며 “매우 치밀한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1.6조 투자한 10나노 D램 기술 유출... 첩보 영화 수준
삼성전자가 임직원들에게 업무용으로 지급한 수첩은 결국 최첨단 D램을 만드는 ‘교과서’가 됐다. 삼성전자는 10나노급 D램 양산을 위해 5년 간 1조6000억원 투입했다. 2016년 5월 설립된 CXMT는 메모리 반도체 역량을 키우겠다는 중국 정부의 전략에 따라 지방정부에서 약 2조6000억원을 투자 받았다.

CXMT가 2025년 11월 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국제반도체반람회에서 DDR5와 LPDDR 등 D램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CXMT 홈페이지 캡처
CXMT가 2025년 11월 3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국제반도체반람회에서 DDR5와 LPDDR 등 D램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 /CXMT 홈페이지 캡처

검찰에 따르면 CXMT는 이후 유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출신 인력을 추가로 영입해 본격적인 D램 개발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협력업체를 통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정 관련 기술까지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 결과, CXMT는 SK하이닉스 출신 직원들이 다수 근무 중인 협력업체에 고가의 반도체 장비를 납품받는 대가로 SK하이닉스의 핵심 기술을 제공받았다.

이 같은 방식으로 CXMT는 설립 7년 만인 2023년 10나노급 D램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는 D램을 수직으로 적층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검찰은 이번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의 지난해 추정 매출 감소액만 5조원에 달하고, 국가 경제 전체 피해는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필적 감정을 통해 공정 기술을 필사해 유출한 A씨의 신원을 특정했다. CXMT의 자료와 삼성전자 자료를 대조한 결과, 98.2%가 일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공개한 유출자료 중 일부와 필체감정 결과. / 서울중앙지검 제공
검찰이 공개한 유출자료 중 일부와 필체감정 결과. / 서울중앙지검 제공

A씨는 CXMT에 기술자 영입을 담당했다. 삼성전자에서 문제를 일으켜 퇴직한 인물이나, 연차가 쌓여 퇴직한 뒤 잠시 교수로 재직 중인 인물 등을 선별해 계획적으로 영입했다. CXMT는 인재 확보를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삼성전자 퇴직 당시 연봉의 2~4배를 지급했고, 개발실장급 인재에게는 최대 30억원을 약속했다. 계약만 체결해도 1년 치 연봉을 사이닝 보너스로 지급했고, 주거비 지원과 자녀 국제학교 교육까지 제공했다.

B씨는 창신메모리 합류에 앞서 중국 비료공장에 취업한 것처럼 위장해 삼성전자의 경쟁사 이직 금지 조항과 국정원의 감시를 피해간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윤용)는 지난 23일 삼성전자 전 임원 출신으로 CXMT에서 10나노급 반도체 개발에 관여한 5명을 구속 기소하고, 파트별 개발 책임자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잡히면 ‘♥♥♥♥’ 행동 강령… 적색수배에도 중국 체류
검찰은 이들이 위장 회사를 설립하고 사무실을 수시로 옮기는 한편, “항상 주변에 국가정보원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내부 지침을 공유하는 등 조직적으로 기술 유출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출국 금지나 체포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하트 네 개(♥♥♥♥)’를 보내 동료들에게 알리도록 하는 등 자체 행동 강령도 마련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입국 시에는 공장이 있는 도시가 아닌 인근 도시를 경유했고 메신저는 위챗, 이메일은 바이두 서비스를 이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다른 강력 사건 등에서는 종종 (행동 강령)을 볼 수 있지만, 기술 유출 사건에서 이런 치밀한 방식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김윤용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 부장검사가 23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세계 1위 K반도체 국가핵심기술 국외 유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윤용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 부장검사가 23일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세계 1위 K반도체 국가핵심기술 국외 유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현재 10년째 중국에 체류 중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A씨의 여권을 무효화했지만, 중국 정부는 인터폴 적색수배 사실을 인지하고도 비자를 연장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중 양국은 2000년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해 2002년 4월 발효했지만, 일반 사건에서도 중국 측의 협조는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도 중국이 한국 수사 당국에 협조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국고를 빼간 범죄자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도움이 된 인물일 수 있다”며 “신병 인계가 원칙임에도 체류가 계속 허용되는 상황 자체가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범죄에 상응하는 형을 받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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