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유상으로 판매하는 이른바 ‘컵 따로 계산제’가 커피값 인상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선 플라스틱 컵 사용량 억제 효과 없이 커피값만 인상되면서 또 하나의 ‘탁상행정’에 머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오는 23일 플라스틱 일회용 컵 유상화 정책이 담긴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초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기후부가 이 내용을 17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발표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후부는 엄밀히 말하면 컵 유상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재 대부분 커피·음료 매장의 음료값에 컵 원가가 포함돼있는데, 이 컵 가격을 별도로 구분해 표시하겠다는 것이지 컵값을 추가로 받겠다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4000원짜리 커피를 테이크아웃 할 경우 지금은 영수증에 4000원만 찍히지만, 제도 시행 이후에는 ‘음료 3800원, 컵 200원’이 각각 기재된다. 따라서 기후부 설명대로 컵값을 추가 지불하는 게 아니라면 음료값이 3800원으로 낮아져야 한다.
그러나 커피·음료 매장들이 컵값만큼 음료값을 낮출 것이란 보장은 없다. 컵값을 표면적인 이유로 들지 않더라도 제도 시행에 맞춰 물가 상승 등을 원인으로 컵값만큼 음료값을 일제히 인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기후부 관계자는 20일 “가격 책정은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것이어서 컵값을 구실로 음료값을 더 올릴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기후부는 정책 세부사항을 정할 때 매장들과 의견 조율을 해본다는 방침이다.
컵 따로 계산제가 플라스틱 컵 사용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소비자들이 편의에 따라 100~200원을 더 주고서라도 플라스틱 컵 사용을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탁상행정 느낌이 난다”고 말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가 유명무실화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에 기후부가 추진하는 컵 따로 계산제도 실질적으로 플라스틱 컵 사용은 줄이지 못하면서 음료값 인상만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기후부는 플라스틱 컵과 함께 일회용 종이컵 규제도 2년 만에 부활시켰다. 우선 카페와 제과점 등에 한해 단계적으로 매장 내 사용을 금지하고, 종이컵을 물컵으로 사용하는 일반 식당에 대해선 실태조사를 한 뒤 규제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많은 식당이 인건비 상승에 따라 종이컵을 물컵 대신 사용하고 있어 추후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적잖은 반발이 있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이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환경부(현 기후부)는 문재인정부 때 수립한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계획’에 따라 2022년 11월 식품접객업 등에서 종이컵 사용을 금지했다가 1년간 계도기간이 지난 뒤인 2023년 11월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규제를 철회한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