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자의 소소월드] ④미성년 SNS금지…보호인가, 박탈인가
소소(小騷)월드: 소소하게 소란스러웠던 세계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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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에 사는 10살 어린이가 유튜브 화면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미 연방수사국(FBI)을 따돌린 사기꾼을 그린 2002년 영화 제목이 호주에서 ‘16세 미만 SNS 이용 금지’ 정책 시행 첫날 다시 소환됐다. 틱톡에서 하루 만에 20만개가 넘는 미성년자 계정이 삭제됐지만,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 “아직 여기 있다. 내가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봐” 같은 10대들의 ‘로그인 인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호주 정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성년자의 SNS 이용을 제한하겠다며 칼을 빼 들었으나 그 칼날은 날카롭지 못했다. 틱톡·인스타그램·페이스북·유튜브·엑스 등 주요 플랫폼은 16세 미만 이용자 계정을 삭제하거나 비활성화했으나, 정부 차원의 통합 연령 인증 수단이 없어 플랫폼별 자체 기준에 의존하면서 혼선이 잇따랐다.
호주 공영방송 ABC는 “13세 딸이 화장하고 페이스 ID를 통과했다”거나 “17세인데 미성년자로 분류돼 계정이 삭제됐다”는 사례로 현장의 혼란을 전했다.
이번 정책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호주 학부모들은 SNS 중독과 도박성 게임 광고, 외모 비교와 혐오 콘텐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됐다고 평가한다. 이런 인식은 지난해 1월 14세 소년 올리 휴즈의 죽음을 계기로 커졌다. 그는 SNS를 접한 후 신체 혐오와 섭식장애,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는 “법이 1년만 빨랐어도 아들은 살았을 것”이라며 규제를 촉구해왔다. 전문가들 역시 SNS를 개인의 선택이 아닌 공중보건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3년 비베크 머시 미국 공중보건서비스단 의무총감은 SNS에 담배·술처럼 건강 경고 문구를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의 당사자인 아이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계정 삭제를 큰 상실로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ABC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수년간 쌓아온 유튜브 플레이리스트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친구들과 연결된 유일한 공간이 닫힌 느낌”이라며 고립감을 호소했다. 일부 10대들은 이미 우회 방법을 찾았다. 10대 홀리 애덤스는 로이터에 “계정이 사라졌지만 쉽게 다시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시에 “알고리즘에 휘둘리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다” “숙제와 수업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긍정적 반응도 이어졌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10살 어린이가 스마트기기 화면을 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대 측은 이 같은 규제가 표현의 자유와 참여권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매릴린 캠벨 퀸즐랜드 공과대 교수는 네이처 기고문에서 “미성년자의 SNS 접근을 전면 차단하는 방식은 청소년을 온라인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디지털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대처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도 “많은 청소년이 법을 우회할 방법을 찾을 것이 분명하다. 이들은 비밀스럽게 동일한 위험에 계속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논쟁은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등은 SNS 연령 규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여론도 점차 규제 쪽으로 기울고 있다. 글로벌 조사기관 입소스가 30개국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에서 한국 응답자의 57%는 ‘14세 미만 아동의 SNS 이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프랑스(80%), 미국(60%), 싱가포르(59%), 일본(52%) 등 주요 국가에서도 찬성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여론이 확고해질수록 질문도 선명해진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불안을 통제하고 있는가. 이영애 숙명여대 심리치료대학원 놀이치료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전두엽이 성인 수준으로 발달하는 시기까지는 일정한 보호가 필요하다”면서도 “SNS 전면 규제는 오히려 조절 능력을 연습할 기회를 없애고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이들에게 디지털 공간은 이제 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위험을 차단해 보호할 것인가, 위험 속에서 성장하게 할 것인가. 호주의 실험은 쉽게 답할 수 없는 난문을 전 세계에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