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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더 이상 ‘AI 투자가 늘어난다’라는 사실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인공지능(AI) 투자에 대해 분명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오라클과 브로드컴 실적 발표 이후 시장의 AI 투자 경계감은 완화되기보다 강화됐다. 중요한 점은 실적 자체가 아니라 이후의 주가 반응이다. 두 기업 모두 매출과 AI 관련 수요 자체는 견조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폭의 주가 조정을 겪었다.

이는 시장이 더 이상 ‘AI 투자가 늘어난다’라는 사실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로드컴은 AI 매출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음에도 AI 사업의 마진이 과거 대비 낮아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수요 둔화 신호라기보다는 AI 사업이 기존 고마진 IP 및 칩 매출 구조에서 시스템, 인프라 구축형 사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고객 맞춤형 설계, 고급 패키징, 네트워크 등 레벨 통합이 늘어나면서 단기적으로 마진 희석이 불가피해졌다. 투자대비수익률(ROI : Return On Investment) 실현 시점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 밸류에이션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오라클은 더 직접적이다.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설비투자(CAPEX) 확대가 확인됐다. 동시에 일부 프로젝트의 일정 지연 가능성이 거론되며 투자 대비 현금흐름 전환의 가시성이 흔들렸다. 오라클이 지연을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투자가 계속되느냐’보다 ‘언제부터 의미 있는 수익으로 연결되느냐’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주식시장의 최근 조정은 AI 수요 자체에 대한 전면 부정이 아니라 ROI의 시간표에 대한 재검증 과정이다. 과거에는 성장 스토리와 투자 규모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했다. 이제는 다르다. 투자가 언제부터 현금흐름으로 돌아오는지를 묻는 단계로 이동했다. AI 투자에 대한 전반적 의구심이 아니라면 주가 조정 양상을 급격한 가격조정보다 기간조정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스피, 다중 방정식으로 구성

코스피 조정은 이 과정에서 더 가팔랐다. 국내 주식시장은 이 ROI 논쟁에서 미국과 전혀 다른 위치에 있다. 미국은 AI 투자에 대한 주체로서 실제로 빅테크 매출, 서비스, 플랫폼 수익으로 전이되는지 여부까지를 판단한다. 반면 국내 주식시장과 한국 기업들은 AI 투자 사이클에서 중간재 공급자(주로 반도체)로서 역할을 갖는다. 투자 지속 여부가 수출, 평균판매가격(ASP), 가동률, 실적에 곧바로 연결되는 구조다.

이 차이는 ROI 검증 국면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미국에서 AI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글로벌 자금은 성장 자산의 할인율을 재평가하고 안전자산 선호를 강화하게 된다. 불확실성은 달러 강세로 이어지며 동시에 주식시장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이다. 미국 주식시장이 기술주 위주로 흔들리는 가운데 한국은 펀더멘털 변화와 무관하게 외국인 베타 축소 대상이 된다. 외국인이 2거래일간 코스피를 2조원 가까이 순매도한 원인이다. 반대로 달러 약세, 변동성 완화 국면에서는 환헤지 부담이 줄어들고 반도체 실적 레버리지 기대를 키울 수 있다.

국내 주식시장은 AI 단일 변수로 움직이기보다는 달러, 금리, 변동성을 매개로 증폭되는 구조다. AI 과투자 논란이 비단 한국 주식시장 내 IT에 영향력을 국한하기보다 패시브를 경유해 업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인이다.

한국 주식시장을 판단하는 핵심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 빅테크 설비투자의 절대 수준이다. 증가율 둔화 자체는 자연스러운 정상화 과정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투자 총액(Level)이 유지되는지 여부다. 절대 수준이 유지된다면 발주와 물량 경로도 유지된다. 반대로 설비투자 총액이 하향되기 시작하면 한국에는 즉각적인 물량 리스크로 전이된다. 둘째, 메모리 믹스 질적 변화다. HBM 비중 확대가 단순한 가격 효과가 아니라 실제 물량과 채택 확산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DRAM 비트 그로스(Bit Growth, 출하 기준 D램 총용량 증가율), 고객 수 확대, 세대 전환 속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셋째, 환율과 변동성이다. 원화 헤지 비용과 변동성은 외국인 베타를 여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 이 세 변수는 병렬이 아니다. 설비투자는 방향을 결정하고 메모리 물량은 실적 경로를 구성한다. 환율과 변동성은 그 움직임을 증폭하거나 차단한다. 따라서 단순 실적을 확인한다고 해서 시장의 우려가 즉각 해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의미 있는 실적과 의미 없는 실적 차이는?

한국은 중간재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 이로 인해 투자 결정 → 발주 → 출하 → 실적 반영 사이에는 구조적인 시차가 존재한다. 실적이 좋을 때 이미 투자가 피크를 지난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우려가 커질 때 실적은 아직 최고점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았다. 즉 실적은 투자 사이클의 후행 지표 성격을 갖는다.

2018년 상반기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주가는 이미 하락 국면에 진입해 있었다. DRAM 비트 그로스 둔화 신호와 고객사 재고 누적이 먼저 나타났고 설비투자와 증설 계획이 보수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실적은 ‘과거의 결과’였다. 시장은 이미 다음 사이클 둔화를 가격에 반영했다.

2020년 하반기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은 여전히 부진했지만 주가는 선행 반등했다. 이 시점에 나타난 신호는 DRAM 비트 그로스 가이던스 상향, 서버 수요 회복, 재고 정상화 코멘트였다. 실적 개선은 몇 분기 뒤에 나타났지만 시장은 이미 물량과 가동률의 회복을 근거로 밸류에이션 재평가에 나섰다. 주가는 상승했다.

2022년 메모리 다운사이클에서 의미 있었던 순간은 설비투자 절대 수준 축소와 감산 선언이었다. 이 시점에서 비트 그로스는 이미 크게 둔화됐지만 시장은 ‘투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오히려 사이클의 바닥 신호로 해석했다.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다음 세 단계다. 첫째, 빅테크 설비투자의 절대 수준과 지연인지 취소인지 구분이다. 증가율 둔화보다 총액 유지가 핵심이다. 둘째, 반도체 장비 수주잔고, 메모리 증설 일정, 장비 리드타임을 점검해야 한다. 셋째, DRAM·NAND 비트 그로스, HBM 믹스, 가동률과 라인 전환 속도다. 의미 있는 실적은 ①다음 분기 혹은 하반기 출하 가이던스가 유지되고 ②HBM·고부가 믹스 상향이 확인되며 ③고객사 투자 일정에 지연 없음을 명시할 때다.

◆ROI 불확실성과 베타 시장 한국

이번 AI 투자 논쟁의 핵심은 수요 붕괴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투자 회수의 속도가 당초 기대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라클과 브로드컴 실적 이후 시장이 보인 반응은 AI 투자 축소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AI 인프라 투자가 계획된 시간표대로 집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향한 할인이었다. AI 수요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ROI 실현 시점에 대한 재평가다.

이 논쟁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사례가 오라클의 데이터센터 투자 지연이다. 시장 일부는 이를 ROI 악화나 AI 수요 둔화의 전조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러한 해석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있다. 오라클의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증설이 아니라 대규모 전력 사용, 고집적 냉각, 장기 인프라 계약을 전제로 한 물리 집약적 프로젝트다. 전력 인허가, 계통 연결, 송전 설비 확보, 냉각 인프라 구축, 숙련 노동력 부족 등 칩 외부 물리적 제약이 일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AI 인프라의 경제성이 훼손됐다는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AI 인프라의 병목이 반도체 공급에서 전력과 물리적 인프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문제는 ‘투자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느냐’다. ROI에 대한 시장의 문제 제기는 정당하지만 성격은 수익성 붕괴 리스크가 아니라 타이밍 리스크에 가깝다. 이 구분은 한국 주식시장 전략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이다.

한국은 AI 투자 사이클에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시장보다는 그 결과를 가장 빠르고 과도하게 가격에 반영하는 베타 시장이다. ROI에 대한 금융적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달러 강세와 변동성 확대가 동반된다. 외국인의 코스피 익스포저는 선제적으로 축소된다. 한국 기업의 펀더멘털 변화라기보다 글로벌 자금의 위험 선호 조정 성격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지연과 취소를 동일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과거 한국 반도체 사이클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됐듯이 지연 국면은 단기적인 가격 조정을 유발했지만 중기 실적 경로를 훼손하지는 않았다. 구조적 하락은 투자 취소와 설비투자 축소가 확인된 이후에만 나타났다. 현재까지의 정보는 일관되게 지연 시나리오를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요구되는 전략은 방향성 예측이 아니라 조건부 베타 관리다.

기본 시나리오는 설비투자 총액을 유지된 채 일정만 재조정하는 경우다. 이 경우 반도체 비중은 유지하되 1월 실적 발표에서 출하·믹스·설비투자 가이던스 확인 전까지 공격적 확대는 유보할 수 있다.

반도체 장비는 타이밍 리스크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어 빠른 비중 확대 실익이 뚜렷하지 않다. 반면 전력·변압기·전선 등 AI의 후방 인프라는 병목 이동의 직접적 수혜 영역이다. 상대적으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우호적인 시나리오는 물리적 병목이 완화되며 투자를 재확인할 때다. 설비투자 절대 수준이 유지되고 DRAM·HBM 비트 그로스 및 출하 가이던스가 지속된다면 베타 기회는 다시 열릴 수 있다. 설비투자 레벨 하향, 메모리 물량 가이던스 후퇴,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취소가 동반될 경우 지수 익스포저 축소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로서 확률은 높지 않다. 조건을 확인하며 베타 재확대를 준비할 구간이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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