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비만치료제
GLP-1 기반 경구용 상용화 임박
가격 저렴·복용 편해 시장 술렁
혈중 흡수 기술적 난제 거의 해결
GLP-1 기반 경구용 상용화 임박
가격 저렴·복용 편해 시장 술렁
혈중 흡수 기술적 난제 거의 해결
게티이미지뱅크
‘위고비’를 비롯한 GLP-1 기반 주사제가 주도해온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이 먹는 알약 형태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 냉장 보관과 주사 투여라는 제약에서 벗어나 투약 편의성을 대폭 개선시킨 경구용 비만치료제가 상용화 문턱에 다다르면서 시장구조 자체가 바뀔 가능성이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알약 형태의 비만치료제는 오랫동안 궁극적인 목표로 여겨졌다”며 “주사제 성공 이후에도 제약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경구제 개발을 멈추지 않은 이유”라고 전했다. 비만치료제 수요 확대와 실효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갤럽이 지난 10월 발표한 ‘전미 건강·웰빙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 성인 가운데 비만으로 분류된 비율은 37.0%로, 2022년 조사 결과(39.9%)에 비해 2.9% 포인트 감소했다. 이와 함께 체중 감량을 위해 GLP-1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12.4%로, 지난해 조사(5.8%)의 두 배를 웃돌았다. 이에 갤럽은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와 ‘마운자로’ 등 GLP-1 주사제 확산이 미국 성인 비만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음식 섭취 후 소장의 L세포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은 혈당과 체중 조절에 상당한 효과가 있어 당뇨병과 비만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GLP-1이 췌장에 도달하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혈당을 증가시키는 호르몬) 분비를 막으며, 뇌에서는 식욕 조절에 관여하는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식욕을 억제한다.
FT에 따르면 GLP-1 계열 약물은 평균적으로 체중의 15~20%를 감량시키는 효과를 보이며 과거 사용되던 비만치료제에 비해 부작용이 적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 양호한 임상 결과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시판 중인 GLP-1 비만치료제는 펜 형태의 주사제가 주를 이룬다. 주 1회 투여로 사용이 간편해 소비자 수용도는 높은 편이지만 한계도 분명히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주사제는 냉장 보관이 필요하기에 유통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또 주사 공포증이 있는 소비자들에게는 여전히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GLP-1을 경구제로 구현하는 데는 기술적 난제가 컸다. GLP-1 계열 약물은 아미노산 중합체인 펩타이드 구조여서 위산과 소화 효소에 노출되면 혈중에 흡수되기 전에 분해된다. 이 때문에 지난 몇 년간 화이자, 암젠, 로슈 등 주요 제약사들이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잇따라 경구제 개발을 중단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 등 일부 제약사가 최근 긍정적인 임상 결과를 발표하며 향후 1년 내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GLP-1 유사체인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의 활성 성분)에 흡수 촉진 물질인 스낵(SNAC·살카프로제트 나트륨)을 결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SNAC은 복용 시 알약 주변의 pH를 일시적으로 높여 위산을 중화하고 약물이 잘 흡수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세마글루타이드 25㎎’(경구제)은 3상 임상에서 64주간 평균 16.6%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이는 주사제인 위고비와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노보노디스크는 세마글루타이드가 비만 치료를 넘어 심근경색 예방과 신부전 위험 감소 등 추가적인 건강 개선 효과를 보인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에도 투자했다. FDA가 이를 공식 효능으로 인정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월 1회 맞는 주사제도 임상 단계
일라이릴리는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 일라이릴리의 경구제 ‘오르포글리프론’은 펩타이드가 아닌 소분자 화합물로, 위산에 의해 분해되지 않도록 설계됐다. 보호막이나 흡수 촉진 물질 없이도 위장을 통과할 수 있어 공복 유지나 복용 후 대기 시간 같은 제약도 필요 없다.
이 약물은 3상 임상에서 72주간 최대 11.2%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감량 폭은 주사제보다 작지만, 생물학적 공정을 거치는 세마글루타이드와 달리 전적으로 화학 합성에 기반해 대량 생산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WP는 “현재 비만치료제 시장에는 월 1회 투여 주사제도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며 “투여 방식과 주기가 다양한 치료 옵션이 등장할 경우 환자 편의성과 치료 접근성이 높아지고, 제약사 간 경쟁 심화로 가격 인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비만율이 높은 현대 미국인에게 GLP-1 기반 치료제는 단순한 미용 목적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며 장기적인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했다.
심혈관·신장질환 복합제 개발 병행
FT는 경구용 비만치료제가 연간 1000억 달러(147조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글로벌 비만치료 시장에서 20~33%를 차지할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FT는 “많은 소비자들이 주사제에 익숙해져 있고 (상용화를 앞둔) 경구제는 특허가 만료된 저가 복제약들과 경쟁해야 한다”면서도 “그럼에도 경구제는 비만과 동반되는 질환의 치료제와 결합해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돼 많은 제약사들이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바이오의약품 연구개발 수석부사장 샤론 바는 “경구제는 투약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비만과 동반되는 수많은 심혈관·신장 질환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고정 용량 복합제 개발의 기회를 열어준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