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에서 한 노동자가 땀에 젖은 채 물건을 옮기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8일 밤 8시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 일대를 바쁘게 오가는 김홍팔씨(70)의 등허리는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오이가 가득 든 박스를 옮기던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재빨리 얼굴과 목덜미를 훔쳤다. 상가 안으로 박스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그의 셔츠는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해가 진 시장 안은 어둑했지만 온도계는 32도를 가리켰다.

전국 곳곳이 찜통더위로 푹푹 쪘던 이날 서울은 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가 열흘째 이어졌다. 일부 지역엔 폭우가 쏟아진 후였지만 밤 사이 최저 기온은 27.4도 이상을 가리켰다. 밤과 새벽 사이 전통시장에서 물품을 하역하는 노동자들도 열대야를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얼음물에 의존해 무더위가 덮친 긴 밤을 버텨내고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얼음물을 들이켜고 있다. 우혜림 기자


밤 9시10분 광성상가 안으로 오이·깻잎·호박 등 경매가 끝난 상품을 실은 트럭 3대가 차례로 도착했다. 한 차례 하역을 마치고 앉아 있던 노동자들이 목장갑을 고쳐 끼며 트럭 뒤편으로 몰렸다.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트럭 안에서 한 사람이 박스를 건네자 대여섯 명의 노동자가 이를 이어받으며 상가 안으로 옮겼다. 10여 분만에 노동자들의 콧등과 이마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올랐다. 40분쯤 뒤 박스를 다 내린 이들은 시장 한구석에 둔 얼음물 앞으로 모였다. 채 녹지 않은 얼음물을 탈탈 털어 물을 따라 들이키는 이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밤 10시쯤 시장 내부 온도는 33.1도, 습도는 82%RH(상대습도)까지 올랐다. 보통 40~60%RH가 쾌적하게 느끼는 습도다.

상가는 시장 통로 양옆과 지붕이 막힌 구조였다. 선풍기는 가게 안에만 비치돼 있어 노동자들은 직접 산 얼음물로 간간이 더위를 식혔다. 30년째 하역 일을 하고 있다는 김종철씨(70)는 “1.5ℓ 생수 묶음을 사 와서 두는데 하루에 열 개씩은 마신다”며 “우리가 일하는 통로엔 선풍기도 하나 없으니 사람들이 그냥 땀이 범벅이 된다”고 말했다. 김인수씨(72)는 “예전엔 스위치를 누르면 천장이 열렸는데 지금은 상인회가 ‘고장났다’며 열지 못하게 막고 있어 더 덥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 안에서 기자가 온도습도계를 들고 있다. 이날 오후 10시쯤 시장 내부 온도는 33.1도, 습도는 82%RH까지 올랐다. 보통 40~60%RH가 쾌적한 정도의 습도다. 우혜림 기자


열대야로 업무 강도는 높아졌지만 받는 돈은 적어졌다. 여름철 폭염 등으로 농작물 등 상품 물량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박스 한 개당 무게에 따라 80~1000원의 하역비를 나눠 받는 노동자들에겐 물량 감소는 임금 타격으로 이어졌다. 30년 이상 하역 일을 해온 이모씨(72)는 “(오후) 6시부터 (오전) 5시 정도까지 10시간 일해도 여름에는 8만~9만원을 겨우 받는다”며 “더워서 더 힘들지만 그만큼 돈을 받진 못한다”고 말했다. 김종철씨는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니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시장 하역 노동자들은 외국인 유학생을 제외하면 대부분 60~70대 고령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장시간 노동 시 온열질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근우씨(66)는 “트럭 안은 38도까지 올라갈 때도 있는데 박스 옮기다 보면 막 어지럽다”며 “쉬어가면서 해야 하는데 물량이 갑자기 들어와 버리면 쉴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최진수 민주노총 서울본부 노동법률지원센터 법규국장은 “고령자는 기후 약자이기 때문에 온열질환에 민감하다”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용주인 상인회가 적절한 폭염 대책을 마련하고 고용노동부도 현장 노동자들이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3813 [단독] 김영선, 휴대폰·체어맨 숨겨놨었다…특검 재압수수색 이유 랭크뉴스 2025.07.10
53812 돌연 출국 뒤 사라진 '김건희 집사'‥여권 무효 랭크뉴스 2025.07.10
53811 "나라 망했다" 오열·욕설…尹 재구속에 지지자들 망연자실 해산 랭크뉴스 2025.07.10
53810 머그샷 촬영 후 독방 수용‥이 시각 서울구치소 랭크뉴스 2025.07.10
53809 “마음이 생사를 가른다? 췌장암 환자 4명 중 3명은…” [박광식의 닥터K] 랭크뉴스 2025.07.10
53808 김건희가 밀었다는 김상민…공천개입 의혹 밝힐 '키맨' 되나 랭크뉴스 2025.07.10
53807 '똘똘한 한채'는 비과세·지방2채는 과세…세금이 만든 서울 쏠림 랭크뉴스 2025.07.10
53806 국민연금에 재산 맡기면 생활비 지급?…"공공신탁제도 도입해야" 랭크뉴스 2025.07.10
53805 "밖에 도깨비가 있어요" 구출된 후에도 아이는 두려워했다 랭크뉴스 2025.07.10
53804 윤, 석방 4개월여 만에 재구속‥"증거인멸 우려" 랭크뉴스 2025.07.10
53803 금강서 물놀이하던 20대 4명 숨져…입수 금지구역서 참변 랭크뉴스 2025.07.10
53802 “세 번째 결혼도 당연해진다” AI시대, 대세 된다는 이 직업 랭크뉴스 2025.07.10
53801 尹, 넉 달 만에 다시 에어컨 없는 '3평 독거실' 수감 랭크뉴스 2025.07.10
53800 “거북선에 새겨진 일장기?”…서경덕 “있을 수 없는 일, 전량 폐기하라” 랭크뉴스 2025.07.10
» »»»»» “밤에도 땀 범벅, 얼음물로 버텨”···열대야 속 짐 나르는 하역 노동자들 랭크뉴스 2025.07.10
53798 윤석열 전 대통령 넉 달만에 재구속…이 시각 서울구치소 랭크뉴스 2025.07.10
53797 [단독]‘최후 20분’에도 즉흥발언한 윤석열 “‘계엄 선포문 표지’ 폐기, 사후에 보고받아” 랭크뉴스 2025.07.10
53796 우주전략사령부 창설?…軍 조직법에 ‘우주작전’ 단어부터 넣자[이현호의 밀리터리!톡] 랭크뉴스 2025.07.10
53795 시작부터 ‘내란수괴 겨냥’···조은석 특검의 ‘22일 속전속결’[윤석열 재구속] 랭크뉴스 2025.07.10
53794 [더버터] 마다가스카르에 보낸 400만원, 1000명 삶을 바꿨다 랭크뉴스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