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는 미국 시장이지만
이슬비 정도는 맞아도 괜찮을 것 같다.
주가는 걱정의 벽을 타고 오른다”
이슬비 정도는 맞아도 괜찮을 것 같다.
주가는 걱정의 벽을 타고 오른다”
지난 두 달간 미국 증시는 빠르게 회복했다. 6월 10일 종가 기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6038.8포인트(pt)로 4월 8일 저점(4982.8pt) 대비 21.2%, 나스닥 종합주가지수는 1만9715.0pt로 마찬가지로 4월 저점(1만5267.9pt) 대비 29.1% 상승했다.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1.8%만 더 상승하면 신고가를 다시 경신하게 된다. 연초 이후 성과를 누적해서 비교하면 미국(+2.9%)은 독일(+19.8%), 한국(+19.7%) 등 올해 성과가 좋은 다른 국가 대비해서는 부진하지만 신고가 경신을 눈앞에 두고 상승 추세에 있다는 점을 본다면 여전히 투자 매력이 있는 시장이다.
◆AI 주도주가 이끄는 회복세
5월 12일 이후 미국 시장 분위기가 전환됐다. 일반적으로 주가지수의 추세선을 125일 이동평균선으로 본다. 장기 우상향 추세를 갖는 S&P500 지수는 125일 이동평균선 위에서 상승 추세를 타고 오른다. 4월 초 관세 충격은 이 추세선을 하회하게 했고 추세선 밑에서 시장은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낙폭을 키웠다. 그런데 5월 12일 미국과 중국이 100% 넘게 부과하던 관세를 유예하면서 지수가 큰 폭으로 반등했고 다시 125일 이동평균선을 상회하기 시작하며 상승 추세를 회복했다. 이후 미국 증시는 악재에 둔감하고 호재에 반응하면서 오르고 있다.
향후 추세에 대해서도 낙관할 수 있는 이유는 주도주의 견고한 실적이다. 지난 5월까지 시장 회복의 동인으로 작용했던 요인으로 관세 불확실성 완화도 있지만 주도주의 양호한 1분기 실적발표도 한몫했다.
4~5월 진행된 1분기 실적 시즌은 처음으로 관세 충격이 실적 숫자에 반영됐던 시기였다. 다수 기업들은 관세 및 경기 충격을 가늠해 기업 실적 가이던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녹여 눈높이를 낮추는 발표를 이어갔다. 그 결과 S&P500 전체 12개월 선행 EPS 추정치는 실적 시즌을 거치면서 1% 이상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 등 물리적으로 공급망이 분산돼 있는 내구재 재화 중심으로 충격이 컸다.
그런데 시장 주도주인 인공지능(AI) 관련 기업들은 오히려 눈높이를 상향했다. 특히 AI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약진이 가장 두드러졌다. 소프트웨어는 관세에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기도 하지만 관세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비용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들이 AI 도입을 가속하면서 이를 제공하는 비즈니스를 하는 AI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라고 인식했다. 관세 불확실성의 역설적인 기회가 AI 산업에서 포착되는 셈이다. AI 소프트웨어 니즈가 커지면 당연히 AI 하드웨어 수요에 대한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AI 에이전트’가 바꾼 판
AI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심에는 ‘AI 에이전트’가 있다. 인간의 비물리적 행동을 대신해 주는 AI로 물리적 행동까지 대신해 주는 ‘피지컬 AI’ 이전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인간의 생산성과 편의성을 향상시켜줄 기술이다.
국내 투자자들은 AI 기술의 종착지인 피지컬 AI에 좀 더 고무돼 있지만 그보다 앞서 현실화될 기술인 AI 에이전트 확산의 수혜주를 찾는 일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AI 산업은 ‘생성형 AI’ 시대를 지나 ‘에이전틱 AI’ 시대 초입 국면에 있다고 본다. 올해 상반기는 MCP 등 AI 에이전트 네트워크 프로토콜이 표준화되기 시작하면서 새 기술 확산의 기틀이 다져져 확산의 초석이 마련됐다.
AI 기업 간 거래(B2B) 에이전트 비즈니스는 이미 수익화가 진행되고 있고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수익화된 사례는 없지만 AI 리더들이 조기 상용화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알파벳은 5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범용 AI 어시스턴트의 청사진을 공개했는데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5월 대만 컴퓨텍스 행사 키노트 연설에서 AI 에이전트가 기존 AI 대비 100배에서 1000배 더 많은 컴퓨팅 연산량을 요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올해 초 딥시크 충격 이후 시장에서는 AI 하드웨어의 과잉공급 우려를 걱정했지만 AI 하드웨어는 여전히 초과수요 상태이며 젠슨 황의 이야기는 AI 에이전트 확산은 새로운 하드웨어 초과수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 주식, 이슬비는 맞아도 괜찮다
AI라는 주도 성장산업이 인프라 확장 수요 지속, 응용 기술의 진보가 동반되는 성장 초기 국면임을 상기한다면 미국 시장 추세에 대해서도 의심보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5월까지 시장 상승 동력이었던 실적과 관세 우려 완화는 어느 정도 소화된 상태에서 6월 이후 매크로(거시경제)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 시기는 보수적인 대응보다 상승 추세를 염두에 둔 전략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시장에 자리 잡은 가장 큰 우려 중 하나는 미국 재정적자 우려와 연동된 금리, 달러 표시 자산의 신뢰성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추진하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에는 향후 10년간 약 2조50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감세안이 포함돼 있다. 감세안에서 비롯될 재정적자 우려는 미국채 신뢰성 문제와 결부돼 금리 상승에서 비롯되는 주식시장 부담으로 평가돼 왔다.
다만 4월에만 해도 5조8000억 달러의 재정적자가 거론되던 것에서 절반 이하로 줄었다는 점, 현재 수준의 실효관세율(16%)이 향후 10년간 유지된다고 할 때 관세 세입이 2조2000억 달러로 추정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감세안에서 유발되는 재정적자 규모는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범위까지 축소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정적자 문제가 실제로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도 있다.
6월 말에는 금융 규제완화 관련 이벤트도 예정돼 있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상업은행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6월 말까지 공개해야 한다. 이미 2월에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경기 충격 가정이 과거 대비 약하게 설정됐음이 확인됐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공개되면 미국 은행에 대한 규제완화 이슈가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언급하는 미국 경제 정책의 4대 축은 ‘관세-감세-금융 규제완화-에너지 가격 인하’다. 이 정책들은 미국 경제를 효율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퍼즐 조각들이다. 금융 규제완화도 표면적으로는 규제완화에 따른 경제 효율화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으로 거론되는 SLR 규제완화 등은 미국 상업은행의 미국채 매입 여력을 주어 미국채 수급 부담 완화에서 비롯되는 금리 안정과 전반적인 미국 자산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는 미국 시장이지만 이슬비 정도는 맞아도 괜찮을 것 같다. 주가는 걱정의 벽을 타고 오른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