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에 월세로 몰려…서울 전세매물 3개월 만에 12% ↓
월세지수 전년비 10% 급등…“월 생활비 고스란히 주거비로”
전문가 “전세가율 상한 규제·주거비 지원·공공임대 확대를”
“언제 돈 모아 내 집 마련하나” 서울 집값 상승세가 강남에 이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확산되고 있다. 10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강북과 노원구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권도현 기자
최근 결혼식을 올린 직장인 김모씨(33)는 지난 2월 서울 성북구 보문동의 한 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보증금 3억원에 월세 70만원인 반전세(보증부 월세) 계약이었다. 김씨는 10일 “전세도 고려했지만 서울에서 5억원이 넘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엔 부담이었다”면서 “매달 관리비까지 약 95만원의 주거 비용을 고정적으로 쓰고 있는데, 언제 돈을 모아서 집을 사나 싶다”고 푸념했다.
서울의 임대차 시장에서 전월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전세는 매물이 없고, 월세는 급격히 오르고 있다. 수도권에서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며 임차인들의 주거비 부담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서 임대차 거래 투명화, 월세 지원 보편화, 공공임대 확대 등을 통해 임대차 시장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폭풍전야’ 전월세 시장최근 서울의 전월세 시장은 폭풍전야처럼 위태롭다.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주택 전세가격지수는 2023년 7월부터 지난 4월까지 1년10개월째 상승하고 있다. 월세가격지수도 지난해 1월부터 1년4개월째 오르고 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경우 전세 매물은 사실상 ‘씨’가 말랐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5333건으로 3개월 전인 3월10일(2만8846건)보다 12.2% 줄었다. 반면 월세의 경우 같은 기간 1만8087건에서 1만9074건으로 5.4% 늘었다.
전세 대신 월세로 수요가 집중되면서 월세 가격은 이미 뛰고 있다. KB국민은행 자료를 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월세지수는 124.8로 1년 전보다 10.3% 올랐다. 2015년 관련 통계 시작 이래 가장 큰 증가폭이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사기 대란 이후 빌라에선 워낙 월세 수요가 많았지만, 최근 아파트도 전세 갱신에 실패했거나 매매 준비를 위해 월세를 구하는 손님이 많아졌다”면서 “월세 가격도 20만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실제 북아현동 인근의 59㎡ 아파트 월세 가격을 보면, 지난해 말 보증금 5000만원에 140만원가량이었던 월세가 지난달 200만원까지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보통 직장인의 한 달 생활비가 고스란히 주거비로 나가는 셈이다.
■ 시장 안정화 요건은전세 물량 부족, 월세 급등 등 임대차 시장의 불안은 무주택자의 가계부담을 늘리고, 가처분 소득을 줄여 자가 마련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월세 세액공제 확대, 공공임대 확대, 전세 보증제도 개선 등의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놨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대책 수립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임대차 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서는 전세가율 상한 규제, 주거비 지원, 공공임대주택 확대라는 ‘삼박자’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주택 전세가를 매매가의 일정 비율 이하로만 매길 수 있도록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면서 “현재는 월세 지원 정책이 최저소득계층에만 한정돼 있는데 월세 수요가 느는 만큼 보다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현 8%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 비중을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당장 공급을 늘리기 어려운 만큼 제도적 규제·지원을 통한 보완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 정책이 자칫 매매 시장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고 세심한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서민주거지원 명목의 전세대출 확대가 도리어 매매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비아파트 단기등록임대제도도 ‘빌라 시장’ 활성화 취지에서 최근 부활했지만 자칫 다주택자의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
정준호 강원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며 민간 등록임대를 활성화하는 것은 가격 상승을 부르는 왜곡된 시장을 투명화하자는 의도지만, 임차인 대항력 강화·공시가격 공개 등 시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다른 정책과 함께 실행됐을 때 의미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매매 시장의 가격 안정화가 선행돼야 본래 취지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김지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