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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픈에이아이(OpenAI)의 GPT-4o 이미지 생성 기능을 이용해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사진을 바꾸는 일이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X(구 트위터) 계정에 올린 이미지. 샘 올트먼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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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세계적인 인공지능(AI) 전문 기업 오픈에이아이(OpenAI)는 자사의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인 ‘GPT-4o'를 출시했다. 늘 있었던 버전 업그레이드 성격의 출시였지만, 종전보다 개선된 생성 기능 하나가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사용자들은 이 기능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만들어냈다. 자기 사진을 유명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재생성해 소셜미디어의 ‘프사’(프로필 사진)로 바꾸는 트렌드를 만든 것이다. 특히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이 놀이에 편승해 자신의 프사를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의 화풍으로 변경한 것을 계기로 급격히 유행하게 됐다.

당시 모바일 메신저를 열었을 때 친구 목록의 프사가 하나둘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로 변하는 것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십 년 뒤, 인공지능이 창작과 소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재편한 미래가 되면 사람들은 이 짧고 강렬했던 ‘지브리 프사' 현상을 콘텐츠 산업 대변혁의 특이점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제작 현장서 보는 지브리 열풍

누가 뭐래도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이 경제 전반을 재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하고 모방하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을 맞아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 방식, 그리고 경제적 가치 평가 체계 역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30년 전 인터넷이 정보 접근의 장벽을 무너뜨렸다면, 지금의 생성형 인공지능은 창작의 경제적 진입 장벽을 허물고 있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나 복잡한 설정 없이도 간단한 텍스트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사람들은 자기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스튜디오 지브리 풍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확산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그 결과 하루아침에 우리의 소셜미디어 프사는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로 가득 찼고, 마치 지브리를 만든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 속으로 집단 이주한 듯한 초현실적 경험을 선사했다.

여기서 생각할 점은, 사람들은 왜 지브리를 선택했을까라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지브리는 수십 년간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명작을 통해 세계적으로 강력한 브랜드 자산과 시각적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지브리 작품들이 가진 독특한 미학적 특징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 이상의 일종의 ‘브랜드’를 형성한다. 섬세한 자연 묘사, 오묘한 색감, 인상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다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차별화한 지브리만의 특징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일종의 집단적인 기억이다.

이번에 인공지능이 모방한 건 단순한 화풍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자기 사진을 지브리 화풍으로 모방하는 것으로, 지브리가 그동안 쌓아온 브랜드와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집단 기억을 빌려왔다.

지브리 프사 열풍 초반, 많은 사람이 저작권 위반이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지지자들은 스타일 자체는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법적 논리를 펼쳤다. 실제 관련 판례 역시 아이디어나 화풍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을 수 없었다. 원작자인 지브리도 딱히 이것에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자로서는 이 열풍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법리적 문제가 아닌, 디지털경제 시대의 창작 가치 평가, 즉 ‘오리지널리티’의 경제적 가치에 관한 근본적 질문과도 가깝다.

인공지능을 통한 손쉬운 모방은 원작 콘텐츠의 시장 가치를 희석하고 창작 주체의 브랜드 자산을 훼손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브랜드 가치는 단순히 시각적 스타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스토리텔링, 세계관, 철학을 포함한 종합적 가치 체계다. 인공지능은 이 중에서도 가장 표면적인 시각 요소만을 추출해 대량 복제함으로써 브랜드의 희소성과 프리미엄 가치를 떨어뜨릴 여지를 남겼다.

인공지능이 누구나 쉽게 창작할 수 있는 창작의 민주화를 이뤘다는 의견도 있지만, 비판적 시각에서는 인공지능 복제품이 원작자의 작업과 노동력의 실질적인 창작 가치를 포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창작 산업 전반의 기술적 실업 논란과 가치사슬 재편 문제로 연결된다.

질 수밖에 없는 창작자들의 싸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창작자들의 오리지널리티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정의될 필요는 확실히 있다. 실제로 단순한 스타일이나 표면적 특징을 넘어,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창작자의 고유한 경험, 철학, 서사,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독창적인 방법론 등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오리지널리티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에서 나오는 경제적 희소성으로 재정의돼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쉽게 얻어지는 것'과 ‘인간의 노력과 고뇌를 통해 얻어지는 것' 사이의 가치 차이가 시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너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에 이는 그저 창작자들의 희망 사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에 대한 각 정부 정책의 관대함도 한몫한다. 인공지능이 시대의 주요한 패러다임으로 떠오르면서 그 발전에 저해될 수 있는 어지간한 문제는 사소하다고 치부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지브리 프사’ 열풍은 단순한 소셜미디어 유행을 넘어 디지털경제 시대 콘텐츠 산업의 근본적인 가치 체계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스라엘 방위군 인스타그램에 게시된 군 홍보 사진. 이스라엘 방위군 인스타그램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창작 가치를 지키려는 소송에서 창작자들이 잇달아 패소하는 것이 이런 흐름을 방증한다. 시대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런 움직임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됐을 때도 같은 일들이 있었고,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전환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면, 창작자들은 오리지널리티의 경제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전술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기업을 포함한 창작자들은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지식재산권(IP)을 구축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해야 한다. 단순한 시각적 스타일을 넘어 복합적인 세계관, 캐릭터의 깊이, 그리고 일관된 스토리텔링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협을 기회로 전환하는 비즈니스모델 혁신이 필요하다. 콘텐츠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술을 자사의 가치사슬에 통합해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할 수 있다. 콘텐츠 기업들은 팬들의 인공지능 활용을 경제적 위협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고 고객 경험을 증대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창작자들은 인공지능이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기술적 측면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과 목소리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여야 한다. 창작자의 개인적 경험, 문화적 배경, 그리고 독특한 세계관은 인공지능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경제적 자산이다.

또한 인공지능을 경쟁자가 아닌 생산성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창작자들은 인공지능을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에 활용해 더 본질적인 창작 활동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시간당 생산 가치를 높일 수 있다.

단순한 기술적 기교나 창작물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팬, 즉 소비자와의 소통과 연결이 오리지널리티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주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창의성의 새로운 경제학: 공존의 미래

이번 지브리 프사 열풍은 단순한 소셜미디어 유행을 넘어 디지털경제 시대 콘텐츠 산업의 근본적인 가치 체계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 현상은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에 열린 담론이 필요하다. 창작자, 기업, 정책 입안자, 소비자 모두가 참여하는 다층적인 논의를 통해 우리는 인공지능과 인간 창의성이 공존하는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를 단순히 두려워하거나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경제적 분석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가치 체계를 함께 그려나가는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보여준 것처럼, 기술의 무분별한 사용은 경제적 파괴를 가져올 수 있지만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열어줄 것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경제적 흐름이 됐다. 지브리 프사 열풍은 이 기술이 대중의 창의적 표현 욕구와 만날 때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현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창의성의 경제적 가치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향으로 안내하는 지혜다.

기술 발전이 인간 창의성의 경제적 가치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변화의 경제적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번영하는 지속 가능한 콘텐츠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혜와 용기다. 어떻게 보면 지브리 프사 열풍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콘텐츠 산업 미래로의 초대장일지도 모른다.

문동열 콘텐츠산업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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