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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간편 끝판왕 ‘봉지 나초’
| 정연주

캠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느끼고 싶다면 봉지 나초가 적격이다. 나초 위에 원하는 토핑과 소스를 올리는 것만으로 훌륭한 핑거푸드가 된다.


“아,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다. 오늘 내가 가장 열심히 한 일이 ‘귀찮아서 다리조차 안 떠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스마트폰 스크롤 내리는 것도 번거로우니까 알아서 화면이 내려가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제일 열심히 하게 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캠핑 와서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면 귀찮게 캠핑은 왜 가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집에 있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주중에 바쁘다고 미룬 다림질 거리도 나를 부르고 냉장고 안도 엉망진창이고 읽어야 할 책도 산더미다. 그래서 이 모든 자잘한 일거리를 과감히 뒤로하고 집을 떠나는 것, 그게 바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의 실천이다. 한없이 게으른 캠핑에 도전, 시작!

푸짐한 음식과 화려한 세팅이 필요한 맥시멀 캠핑만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캠핑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나름 준비가 필요하다. 캠핑은 반나절로 끝나지 않고 사람은 뭐라도 먹어야 살 수 있으니까.

문제는 캠핑장에서는 보통 도심에서 익숙한 배달 음식이라는 선택지가 거의 없단 것이다. 별생각 없이 떠났다가 용케 캠핑장 안 매점에서 바비큐용 고기 정도를 구했다면 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기름이 묻은 온갖 도구를 씻고 말리고…

평소라면 그러기 위해서 캠핑을 떠나는 것이겠지만 칼로리 소모량 최저치를 찍고 싶은 날에는 번잡스럽기 짝이 없다. 라면 물 하나 올리는 것도 귀찮은 날이 있는 사람? 저요! 하지만 아무리 게을러지고 싶다 하더라도 나는 배를 곯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 푸드 에디터로서 내 자질이 가장 빛난다. 머리야, 몸이 고생하지 않게 머릿속 인덱스에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레시피를 찾아주겠니? 가능하면 불은 가스불 하나도 켜지 않고 5분 안에 맥주캔이나 하나 따는 정도면 좋겠어. 그럴 때 꺼내는 것이 맛있고 든든한 간식 겸 안주, 봉지 나초다.

일거리 뒤로하고 떠난 도피성 캠핑

버너 쓰기도, 설거지도 귀찮을 땐

‘포크 겸용’ 도톰한 나초 칩 골라

3분 미트볼·치즈·옥수수 등 얹어

타코 맛 위해 사워크림은 ‘필수’

‘멕시코 국기 색’ 여름 간식 완성


봉지 나초는 ‘워킹 나초(walking nachos)’ 또는 ‘나초 인 어 백(nachos-in-a-bag)’이라고도 불리는 초간단 간식이다. 간편함은 같지만 ‘워킹 타코’보다 푸짐한 나초가 게으른 캠핑에 더 잘 어울린다. 제대로 앉아서 식사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주전부리를 하듯이 무언가를 집어 먹기 좋은 공간, 그러니까 운동 경기 관중석이나 행사, 축제 같은 곳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손이 심심하지 않게 들고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고 교류를 하며 냠냠 집어 먹는 것이다. 그야말로 걸어 다니면서 먹는 워킹 간식(길거리 간식)이다.

원래도 타코나 나초는 재료만 조립하면 간단하게 만들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음식이다. 슈퍼볼처럼 여럿이 모여서 텔레비전으로 감상하고 주전부리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으면 파티용 메뉴 로 꼭 나초가 올라온다. 그런데 그런 나초조차 훨씬 더 간단해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봉지 나초다. 도리토스 같은 나초 칩 봉지를 뜯고 토핑을 얹어 봉지째로 퍼먹는 이 음식은 말하자면 나초의 ‘귀차니즘’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한가로운 캠핑을 위해 봉지 나초를 준비하려면 우선 나초 칩을 잘 골라야 한다. 그냥 바삭바삭 있는 그대로 칩 스타일 과자를 고를 때와는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과자라면 조금 얇고 잘 부서지는 식감이어도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캠핑용 나초 칩은 소스와 토핑을 올려도 바사삭 망가지지 않고, 포크 대용으로 떠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약간 도톰한 칩을 고르는 것이 좋다. 동그랗고 두툼한 노란 옥수수 나초 칩도 괜찮고 조금 더 자체적으로 다양한 양념이 가미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도리토스 칩도 좋다. 좋아하는 맛과 토핑의 조합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메인 토핑이다. 사실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나초 칩에 할라페뇨를 뿌리고 치즈 딥을 찍어 먹게 차리기만 해도 간식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곧 배가 더 고파지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비프 버거, 슈림프 버거처럼 메뉴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푸짐한 메인 토핑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왕이면 양념이 촉촉하게 배어 있고 오랫동안 익혀서 야들야들한 식감이 된 카르니타스(carnitas)나 알 파스토르(al pastor)처럼 특색이 있는 고기였으면 좋겠다. 한없이 게으른 캠핑에 바라는 것도 참 많지. 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궁극의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소스에 익힌 3분 미트볼 제품이다! ‘3분 요리’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그 제품을 사도 좋고, 개인적으로는 존쿡 델리미트의 미트볼 마리나라 소스를 즐겨 사용한다.

핵심은 토마토소스에 익힌 미트볼이 들어 있는 레토르트 제품을 고르는 것. 이것을 봉지를 뜯지 않은 상태로 마구 주무르고 으깨서 미트볼이 다시 다진 고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든다. 그러면 토마토 베이스에 잘게 다진 고기와 채소, 향신료를 넣어 오래 익힌 파스타 소스인 라구(ragu) 같은 상태가 된다. 이것을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한 용기에 옮겨 담아서 필요한 시간만큼 데우는 것이다. 짠! 촉촉하고 맛있고 든든한 고기 토핑 완성!

나초 봉지를 북 뜯어서 따뜻하게 데운 고기 토핑을 올리고 나면 나머지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완성하면 된다. 간단하게는 방울토마토를 잘게 썰고 고수를 툭툭 뜯어서 뿌리면 색도 곱고 신선한 맛을 첨가할 수 있다. 옥수수 살사를 만들지 않아도 시판 옥수수 통조림의 물기를 제거하고 얹으면 대충 비슷한 맛이 된다. 오늘 캠핑에서 중요한 건 귀찮지 않은 것이니까.

나는 맵고 싶지 않아서 빼지만, 매운맛을 좋아한다면 할라페뇨 피클을 조금 얹어도 좋다. 치즈를 좋아한다면 슈레드 치즈나 치즈 딥을 가져가서 잔뜩 뿌려보자. 그리고 내가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워크림! 원래 타코를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것이 과카몰레와 사워크림이기 때문이다. 사워크림을 먹기 위한 핑계로 나초나 케사디야를 만들기도 한다. 요즘엔 과카몰레도 소스처럼 판매하기도 하니까 원한다면 가져가서 얹어보자.

토마토 베이스의 고기 토핑에 신선한 토마토, 고수, 과카몰레, 사워크림을 있는 대로 두르면 그것 자체로 멕시코 국기가 따로 없다. 바삭하고 촉촉하고 온갖 풍미가 어우러지며 맛있고 간편하다. 무엇보다 불 하나 쓰지 않고 5분 안에 완성할 수 있다는 것! 여러모로 여름에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다.

한없이 게으르고 싶은 날, 사람마다 나초 봉지를 하나씩 쥐여주고 맥주 한 캔을 따자. 사워크림이며 고수며 토마토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면 알아서 한 숟갈씩 퍼다 넣어 커스터마이즈를 하라고 하자. 이번주 최고의 목표였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른 캠핑’, 즐겁게 성공하기 일보 직전이다.


▲정연주
캠핑 다니는 푸드 에디터, 요리 전문 번역가.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랑스 요리를 공부하고 요리 잡지에서 일했다. 주말이면 캠핑카를 타고 떠나는 맛캠퍼로 ‘캠핑차캉스 푸드 라이프’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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