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때 아역배우로 출발…'난타' 제작자·평창동계올림픽 총감독 다방면 활약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얻고도 다시 무대로…"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얻고도 다시 무대로…"불편하지만 좋은 점도 있어"
데뷔 60주년 맞은 송승환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배우 송승환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PMC프러덕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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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배우 송승환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PMC프러덕션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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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저도 조금 지나면 칠순이니 이제는 욕심을 내려놓을 나이죠. 지금이 지난 60년을 돌아보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좋은 배역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만들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제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올해로 데뷔 60년을 맞은 송승환(68)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8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이래 탤런트부터 연극배우, MC, 라디오 DJ, 공연 제작자, 국가행사 총감독까지 다양한 역할을 쉴 새 없이 소화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수많은 수식어 가운데서도 배우로 소개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30일 서울 종로구 PMC프러덕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연기를 할 때 가장 순수해지는 것 같다. 배역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가장 좋고 행복하다"며 "누가 언제 물어도 '저는 배우'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데뷔 60년을 기념해 나온 책 제목도, 오는 11∼22일 북촌에서 열리는 사진전 타이틀도 '나는 배우다'다.
데뷔 60주년 맞은 송승환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배우 송승환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PMC프러덕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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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데뷔 60주년을 맞이한 배우 송승환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PMC프러덕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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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이 처음 방송가에 발을 들인 것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벌어진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린이 동화 구연대회에서 1등을 해 KBS 라디오에 나가게 됐다. 여기서 PD의 눈에 띄어 '은방울과 차돌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고, 곧이어 '똘똘이의 모험', '얄개전' 등 어린이 드라마에서도 연기했다.
11살에는 연극 무대에 올랐다. 이범선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학마을 사람들'을 통해 그해 아역 최초로 동아연극상 특별상도 받았다.
'아씨'(1971), '여로'(1972) 등 당대 인기 드라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평생 연기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송승환은 "어렸을 때는 연기하는 것이 재밌어서 했다"면서도 "당시에는 배우가 경제적으로도 불안하고, 이미지도 지금처럼 좋지 않았다. 집안이 어려웠기에 상대(商大)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연기의 꿈을 접었던 그의 마음을 다시 흔든 것은 연극 한 편이었다.
송승환은 "재수할 때 연극 '에쿠우스' 한국 초연을 봤는데 너무 강렬하더라. 그때 크게 흔들렸다"며 "대학에 가서도 '앞으로 배우로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노트에 배우를 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직접 써가며 고심했고, 결국 '내 길은 배우다'라는 생각이 굳어졌다"고 말했다.
2009년 연극 '에쿠우스'에서 열연하는 송승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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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연기와 함께 극 연출도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뮤지컬 '환타스틱스'를 연출해서 성공을 거뒀고, 한국외대를 그만두고 뮤지컬 '루브'(LUV)를 제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송승환은 "카투사였던 친구를 따라 미8군 캠프에서 영화 '헤어'를 처음 봤는데, 노래로 시작되는 첫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이후에 연극 '루브'를 봤는데 여주인공이 노래를 두 곡 정도 부르더라. 이걸 뮤지컬로 만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활발한 방송활동으로 그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당시 최고 인기의 쇼 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 MC이자 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활약했고,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합시다'에도 출연했다. 1982년에는 그에게 배우의 길을 되살려준 연극 '에쿠우스'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도 받았다.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던 그는 1985년 돌연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배우 송승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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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은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그동안 벌었던 돈을 모두 잃었다. 20대 때 쉴 새 없이 일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 허무하기도 했다"며 "또 20대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하는 나이인데, 나는 소모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떠나게 된 이유를 풀었다.
무일푼으로 도착한 미국에서는 가끔은 한인 방송 아르바이트도 하고, 벼룩시장에서 물건도 팔며 돈을 벌었다.
그는 "아내와 제가 둘이 버니 집세 내고, 밥 먹고 일주일에 뮤지컬 한 편 볼 수 있는 정도가 되더라"며 "뮤지컬을 볼 돈이 없으면 센트럴파크에 가서 이불을 깔고 누워서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때 참 한가롭고 행복했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3년 반의 미국 생활 끝에 송승환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연 제작자로서의 시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국내 흥행은 물론 해외 진출까지 꿈꾸게 됐다.
1989년 극단 '환 퍼포먼스'를 세워 콘서트를 선보였고, 이듬해에는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앨범을 제작했다.
뮤지컬 '고래사냥'을 거쳐 1997년에는 비언어극 '난타'로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난타' 제작자 송승환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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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네 명이 등장해 아무 대사도 없이 도마를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흥겹게 진행되는 이 공연은 국내에서 흥행한 것은 물론 해외로도 진출했다.
송승환은 "비언어극을 만들어야 세계 시장을 두들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난타'를 선보였고,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 해외 진출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난타는 28년간 이어지며 세계인의 입맛에 맞게 계속 변화를 꾀했다.
그는 공연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역할인 '쇼닥터' 3명을 모셨다며, 끊임없는 변화 끝에 '난타'가 업그레이드됐다고 했다. 이제 '난타' 누적 관객은 1천550만명을 넘어섰다.
성공한 공연 제작자가 된 송승환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의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당시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과 미디어아트 등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올림픽] 답변하는 송승환 개회식 총감독
(평창=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10일 오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내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승환 올림픽 개회식 총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2.10 [email protected]
(평창=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10일 오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내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승환 올림픽 개회식 총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2.10 [email protected]
이처럼 성공 가도를 이어가던 그에게 돌연 시련이 닥쳤다.
송승환은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휴대전화 글씨가 안보였다"며 "처음에는 안경이 잘못된 건가 싶었는데, 망막색소변성증이고 나중에는 실명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충격이었다"고 돌아봤다.
4급 시각장애인이 됐지만 연기는 멈추지 않았다. 2019년에는 드라마 '봄밤'을, 2020년에는 연극 '더 드레서', 지난해 연극 '웃음의 대학'에 출연했다.
그는 시야가 흐릿해져 불편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재밌고 좋은 점도 있다며 유쾌하게 덧붙였다.
"대본을 못 보니 일단 귀로 들어가며 전부 외우게 됐어요. 무대 위에서 집중력도 좋아져요. 상대방의 대사를 더 집중해서 듣다 보니 제 리액션도 좋아졌죠. 상대방 표정은 연습 때 찍어두고, 나중에 보면서 다시 연습하곤 했어요. TV가 아무리 커도 영화를 못 보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젠 패드에 자막을 읽어주는 '보이스 오버' 기능을 활용해서 영화도 많이 보고 있어요. 인생에서 뭐 하나 나빠지면, 또 하나 좋아지는 게 있구나 싶습니다."
책 '나는 배우다, 송승환'
[교보문고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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