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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경제신문


“내년에는 어린이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 유감스럽지만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80번에서 10번으로 줄었는데 1년 뒤에는 더 줄어들지 않을까요? 왜 입소가 힘들다는 거죠?”

“지금 정원이 9명인데 이대로 반이 올라가면 티오(자리)가 한두 명 밖에 안 나요. 그런데 맞벌이 부부보다 둘째, 셋째 아이 신청자가 있으면 순번이 또 밀리거든요.”

아기가 태어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린이집 입소 대기 신청이다. 하루라도 빨리 대기를 걸어둬야 원하는 곳에 입소할 확률이 올라간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국공립 어린이집은 들어가기 어렵다. 민간보다 보육료 부담이 적고 교사 인력 기준, 시설 관리감독이 더 엄격해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돌쟁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도연(40) 씨도 입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장도 아닌 ‘1년 뒤’에도 말이다.

머리로 납득할 수 없던 김 씨는 아이가 둘인 지인 이누리(40)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맞벌이 점수 크다더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하소연을 쏟아냈다.

“단순히 다둥이 신청자에게 밀리는 게 아닐 거야. 둘째, 셋째 신청자들이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구직자로 분류되면 맞벌이 등록이 가능하거든. 고용24(옛 워크넷)에 꾸준히 구직 신청하면 어렵지도 않아. 다둥이에 맞벌이면 외동 맞벌이인 너가 당연히 밀리지.”

전업 주부인 이 씨는 본인 역시 구직자로 둔갑해 맞벌이 조건으로 어린이집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가정 등 어린이집은 인기가 없어서 순번이 돌아오는 게 아니라 미리 가서 인사도 하고 사정도 설명하고 4시에는 하원이 가능한 맞벌이라고 강조하면 빠른 입소가 가능하다는 조언도 해줬다. “어린이집이 오죽 많아? 규모 있는 국공립 아니고선 정부에서 일일이 관리감독하기 어렵지. 원장이 순번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경우도 있어.”

김 씨는 손품, 발품 팔면 어린이집 순번을 앞당길 수 있다는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유보통합·돌봄 치중

씁쓸한 마음에 김 씨는 21대 대선 공약집을 뒤져봤다. ‘6·3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엄마 표심’을 잡기 위해 보육 및 육아 공약을 내걸고 있다. 미래는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희망을 품어봤다. ‘괜찮은 보육 시설’을 확대하는 공약이 있길, 입소 과정에서 꼼수를 부릴 수 없도록 관리감독이 촘촘해지길 기도했다. 김 씨와 같은 워킹맘에겐 1년 육아휴직 후 믿을 수 있는 보육 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절실했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린다든지, 교사 수를 증원하고 처우를 개선해준다든지, 어린이집 관리감독을 엄격하게 한다든지 등의 내용은 없었다. 대신 유보통합(유치원·보육기관 통합), 무상교육·보육 확대, 초등돌봄 확대 등 거대 담론만 담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유아교육·보육비 지원을 5세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가 함께하는 ‘온 동네 초등돌봄’으로 질 높은 돌봄교육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다. 예컨대 학교와 지자체의 유휴공간을 돌봄교실로 활용하고 예산은 국가와 지자체가 공동 부담하는 방식이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역시 만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단계적 무상교육·보육을 실시하고 늘봄학교 또한 단계적 무상을 추진해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도 워킹맘은 또다시 퇴사를 고민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 하교 시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비해 엄청 빠르다. 중간에 학부모를 찾는 일도 많다. 이때를 못 넘기고 퇴사를 결심하는 엄마들이 가장 많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김 씨는 돌봄 확대가 과연 이를 해결해 줄지 지켜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후보 모두 유보통합 추진엔 공감대를 이룬 모습이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이원화된 유아교육과 보육서비스를 일원화해 관리하는 것이다. 교육계의 오랜 숙원 과제로 꼽혀 왔다. 지난해 6월 정부조직법 시행으로 보건복지부가 맡아온 영유아보육 업무가 교육부로 이관되면서 유보통합의 첫 삽을 떴다. 그러나 통합된 기관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지자체 대신 교육청이 맡는 협의는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 씨가 말했다. “유보통합되면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 같아.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나 예산 대책은 있나 싶어. 학부모의 선택권도 사라지는 건 아닐까.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선택할 수 있는 5살 아기의 경우 세심한 케어(관리)를 원하는 부모들은 어린이집을, 조기 교육(자조능력 향상 등)을 원하는 부모들은 유치원을 택하거든. 방향이 틀렸다기보단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의 입장에서 정책이 나오면 좋을텐데…”


그래픽=박명규 기자

◆경단녀가 일할 수 있는 세상?

퇴근하는 김 씨의 발걸음은 그의 집이 아닌 친정집을 향했다. 친정 부모님이 아기를 대신 봐주고 있어서다. 복직 날짜는 다가오고 어린이집 대기 순번은 까마득할 때 선뜻 아기를 돌봐줄 테니 일을 관두지 말라던 부모님. 그렇게 아기를 맡긴 지 반년이 흘렀다. 요새 조부모 돌봄수당이 있다고 해서 알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지역마다 세부 조건이 달랐는데 서울이 가장 박했다. 만 24~36개월 이하 아이만 해당됐다. 그것도 30만원에 불과했다. 저출산 시대인데도 손자를 돌보는 노동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대선후보의 공약에서도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기를 안고 김 씨를 맞이한 어머님은 정말 ‘할머니’ 모습이었다. 70을 바라보는 그의 머리는 이미 하얘졌다.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 보였다. 무릎도 허리도 성치 않아 보였다. 부모님을 볼 때마다 김 씨는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옛날엔 부모님이 봐주셔도 나이대가 50대였는데…. 통계청에서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이 남자 33.9세, 여자 31.6세라고 발표했던데 김 씨가 체감하기엔 초혼 연령은 훨씬 높은 거 같았다. 덩달아 부모님의 나이도.

하지만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 당장 월마다 나가는 대출금이 걱정이었다. 부부합산 소득 기준이 완화됐다고 해서 신생아특례대출 대환(갈아타기)을 신청했지만 ‘불가’하단 판정을 받았다. 순자산이 기준보다 1000만원쯤 넘는 게 이유였다. 알뜰살뜰 목돈을 모은 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은행에도 불가 판정을 알리니 은행원이 말했다. “서울 사는 분들은 대부분 안 되더라고요.” 김 후보가 신생아특례대출, 생애최초대출 요건을 완화한다던데 탁상행정이 안 되길 바랄 수밖에.

경력이 단절될 경우도 두려웠다. 잠깐만 쉬어도 지금 회사보다 작은 회사로 들어가는 건 안 봐도 비디오(유튜브)다. 어디든 취직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다만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희망을 걸어본다. 이들은 ‘경단녀’의 구직 활동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경력 보유 여성을 채용한 기업에 세제 지원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눈 낮출 필요 없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WOW(Wonderful Opportunity for Woman) 프로젝트’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경력단절여성 아카데미’도 신설해 기업과 연계한 인턴십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5명이다. 부부가 한 쌍 생겨도 아이 한 명을 낳을까 말까 한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육아를 위해 부모, 형제자매까지 총동원된다. 가족 품앗이 없이 직장생활과 돌봄 병행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워킹맘의 고통을 아는 이들이 지레 겁을 먹고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이 되는 사례가 괜히 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김태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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