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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금융감독원장·前 한국금융학회장
소비자 보호 몰두하며 금소법 기틀 마련
“쌍봉형 지지…소비자 보호 전담기관 필요”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은행도 혁신해야”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강원 춘천시 그의 자택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 전 원장은 오늘날 금융권에 추천하고 싶은 책으로 한국금융학회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금융의 미래'를 추천했다. 윤 전 원장은 "금융이 안일하게 정체되면 안 되고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윤석헌(77) 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권 내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교수 출신으로 금감원장에 오른 그는 금융 당국 고위직을 꿰찬 재무부 공무원 사회에 진입하지 못해 겉돌았다. 상품 불완전 판매 등을 이유로 금융사에 고강도 제재를 내린 탓에 금융권의 반발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금융사들이 정치권에 줄을 대고 윤 전 원장 압박을 사주하는 일도 있었다. 외풍이 거센데도 문재인 정부는 윤 전 원장에게 큰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은행은 물론 금융위원회와 마찰을 빚는 윤 전 원장이 청와대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지지 기반이 약했지만, 임기 3년 내내 뚝심 있게 추진한 분야가 있다. 소비자 보호다. 금감원장 부임 직후 그가 주도했던 일은 외환파생상품(키코) 사태 재조사와 피해 배상 권고였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 판매 사태가 불거졌을 땐 당시 하나은행장이었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우리은행장이었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책임을 묻고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 담당 부원장보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려 조직의 몸집을 키운 것도 윤 전 원장의 결정이었다.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사회 분위기가 차츰 변했다. 금융사가 고객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쌓인 것이다. DLF 사태 이후 금융사에 상품 판매 적합성 의무를 씌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는 2020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윤 전 원장 역시 금융 당국 수장으로서 금소법 제정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윤 전 원장의 공과를 놓고 금감원 직원들의 평은 이러쿵저러쿵 엇갈리지만, 그가 ‘소비자 보호에 진심이었다’는 점에 대해선 모두 수긍한다.

금감원장 퇴임 후 자연인으로 돌아온 후에도 윤 전 원장은 소비자 보호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비자 보호 문제와 더불어 금융감독체계 논쟁이 나올 때면 그는 예봉을 드러낸다. 소비자 보호 문제를 불식시키려면 금융감독체계에 메스를 대야 한다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다. 윤 전 원장은 “금융감독 조직 재편을 다시 논의할 때”라며 “한국은행과 같은 민간공적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민반관 색채를 띤 지금 금감원에서 관을 지우고 독립적인 민간 기관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금감원을 분리하는 카드를 만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4일 강원 춘천에 있는 윤 전 원장의 자택에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다음은 윤 전 원장과 일문일답.

2018년 5월 4일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연수원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윤 교수의 금융감독원장 임명안을 제청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흥식·김기식 전 원장이 줄줄이 불명예 퇴진으로 물러난 직후였다. 윤 교수는 학계 출신으로는 처음 금감원장 자리에 올랐다. /조선DB

―최근 은행법학회 세미나에서 금감원을 100% 민간 기관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원들이 전부 민간인으로 구성된 민간공적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과거 우리 금융 산업은 정부의 육성 정책에 힘입어 덩치를 키웠다. 금융은 어느 수준으로 성장하면 정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힘으로 충분히 성장한다. 이 시점에선 감독이 중요하다. 정부 부처가 감독을 맡는 것보다는 민간공적기구가 독립성을 확보하고 감독 업무를 수행하는 편이 낫다. 비근한 예로 한국은행의 모형이 있다. 금융감독 업무의 중립을 지키는 지름길이다.”

―민간이 금융감독 업무를 도맡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첫째는 독립성이다. 정부 조직은 금융 산업을 진흥시키려는 관성이 있다. 금융 당국 한쪽에서는 규제를 풀고 산업을 지원하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를 만들고 관리하려니 소비자 보호 방안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DLF 사태를 수습할 때도 금감원은 ‘은행이 고위험 상품을 팔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금융위가 반대했다. 둘째는 전문성이다. 미국만 봐도 금융사 임직원 출신이 규제 당국에 곧잘 진출해 감독 전문성 제고에 기여한다. 민관 유착 우려가 제기되겠지만 그것은 당국 내 엄격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면 될 일이다. 전문성이 확보되면 정부 입김에서 벗어날 힘이 생긴다. 금융 선진국들은 이러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금의 금감원은 민간 법인 형태를 띠지만 관치 금융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정권 입맛에 맞는 관료 출신들이 기관장 자리를 꿰차면 관치 금융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은행 총재 선출이 본받을 만한 선례다. 학자와 한국은행 내부 출신이 번갈아 가며 총재를 맡는다. 낙하산 논란이 적고 어느 정도 독립적인 지위가 확보됐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에 걸린 현판. 금감원 현판 아래 금융소비자보호처 현판이 걸려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금감원을 건전성 감독 기관과 소비자 보호 기관 2개로 분리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금감원 내 금소처를 별도 기관으로 빼 독립시키자는 의견이다. /연합뉴스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금감원을 2개 기관으로 분리하자는 쌍봉형 안이 다시 나온다.

“최근 뉴스를 보고 며칠 동안 고민했다. 쌍봉형이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쌍봉형은 건전성 감독 기관과 소비자 보호 전담 기관, 2개의 별도 기관이 금융감독을 맡는 모형이다. 우리는 새로운 금융 지형을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이 뉴노멀이 됐다. 특히 은행들은 기업금융보다는 소매금융에서의 디지털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소매금융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분 소비자 보호 관련 이슈다. 반대로 기업금융의 디지털 혁신은 자본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불공정 거래를 막는 시장 감독의 중요성이 커지는 중이다. 소비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감독은 모두 행위 규제가 수반된다. 디지털 금융 시대 행위 규제가 중요해진 만큼, 이를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소비자 보호 전담 기관이 도맡는 것이다. 영국의 금융감독청인 FCA가 소비자 보호 전담 기관의 대표적 사례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업무를 무 자르듯 분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양 기관 간 협의를 통한 업무 분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각종 규제의 주 책임 기관을 나눠 정하는 것이다. 물론 책임 소재가 애매한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쌍봉형 기구들의 상위 협의체인 금융안정협의회를 만들고 협의회에서 빠르게 교통 정리에 나서면 된다. 영국도 쌍봉형 체제로 전환한 후 처음 1~2년간 업무를 나누는 데 시행착오를 겪었다. 우리도 전환 과정에서 파열음이 들릴 수 있으나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강원 춘천시 그의 자택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윤 전 원장은 은행의 내부통제 개선을 촉구하며 “은행원 성과지표(KPI)에 남북통일을 집어넣으면 다음 날 통일이 된다는 농담이 있는데, KPI에 내부통제 관련 비중을 키우면 자연스레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기자

이날 윤 전 원장은 인터뷰 중 은행의 내부통제 개선 노력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금감원만 뜯어고친다고 금융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 없다는 게 윤 전 원장의 생각이다. 윤 전 원장은 “은행원 성과지표(KPI)에 남북통일을 집어넣으면 다음 날 통일이 된다”는 농담을 들려주며 “그만큼 은행 임직원들은 KPI에 죽고 사는데, 내부통제 관련 KPI의 비중이 커지면 금융사고도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서 수백억원대 부당대출이 발생하는 등 내부통제 부실로 인한 금융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부당대출 문제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은행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리라 본다. 부당대출로 인한 금전 피해는 은행이 진다. 주주들이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지금처럼 문제가 계속 불거지면 주주들이 강하게 의견을 낼 것이고 경영진도 내부통제를 더 신경 쓸 것이다. 해외처럼 내부고발을 활성화한다면 더욱 좋다. 물론 한국 정서상 동료 직원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게 쉽지 않다. 온정주의적인 조직 내부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부당대출보다 더 주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가 소비자 보호다.”

―DLF 사태 이후 금소법이 만들어졌지만 소비자 보호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은행의 내부통제 역량이 제자리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 은행 자체적으로 내부통제 관련 KPI 비중을 늘리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어 고객에게 큰 손해를 끼친 상품을 팔았다면, 상품판매 직원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지금은 고객의 손실이 나든 말든 상품만 많이 파는 게 장땡이다. 올해부터 책무구조도가 시행된다.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경영진에게 분명하게 씌우는 제도인 만큼 내부통제 및 소비자 보호 개선에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내부통제 제고 외에 은행에 바라는 혁신이 있다면.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은행은 우수한 인력과 적은 조달 비용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담보 대출을 늘려 큰 이익을 거둬들인다. 은행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전체 대출 자산 중 중소기업 대출 비율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마저도 우량 기업 위주로 자금을 공급한다.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줄여 자금 여력을 확보하고 신생 기업 혹은 자영업자들이 바라는 금융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고객들이 놀랄 정도로 혁신적인 디지털 서비스 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은행이 자극을 줘야 한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학사 ▲미국 산타클라라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박사 ▲캐나다 맥길대 경영대 조교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교수 ▲한국재무학회장 ▲한국금융학회장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 ▲13대 금융감독원장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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